대만 최고 갑부의 좌충우돌 총통 선거 도전

[대만통신] 준비되지 않은 정치지도자의 위험성

2023-09-30     최강문 대만통신원
최강문 대만통신원(작가, 전 월간 말 기자)

갑자기 한 나라를 이끌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 뛰어든 사람이 있다. 아무런 정치 식견도 민의를 대변해 본 경험도 없이, 단지 이름 석 자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널리 알려져 세간의 관심을 받기는 했다. 그러나 정작 정치인의 자격 요건인 민주주의 원리에는 익숙치 않다. 아니, 민주주의 원리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만의 이야기다.

“저에게 4년의 시간만 주십시오. 기술과 경제를 발전시켜 싱가포르를 제치고 아시아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아시아 최고의 부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나에게 4년의 시간을 주시면,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제거하는 완전한 시스템을 구축하여 가장 정직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싱가포르가 할 수 있다면 대만도 할 수 있습니다!”

 

대만 홍하이그룹 창립자 궈타이밍 총통선거 출마선언. 2023년 8월 28일.

지난 8월 28일 대만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궈타이밍(郭台銘, 72세, 대만 홍하이그룹 창립자)이 내년 1월에 치러지는 대만 총통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밝힌 포부다.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23살의 젊은 나이에 설립한 홍하이정밀공업은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부품을 생산하다가 미국 통신회사 AT&T에 부품을 납품하면서 큰돈을 벌었고, 중국 본토에 투자한 폭스콘(Foxconn)에서 애플 스마트폰을 주문자방식으로 생산하면서 시가총액 50조 원을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덩달아 궈타이밍도 개인용 제트기 3대를 보유할 정도로 큰 부자가 되었는데,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년 동안 6번이나 대만 최고의 부자가 되었으며, 보고된 재산은 미화 62억 달러, 한화로 치면 8조 3천억에 달한다.

대만 최고 갑부와 폭스콘 흑역사

중국의 폭스콘은 오랜 기간 애플의 최대 생산기지였다는 점 이외에도 노동자 집단자살 사건으로 유명한 전자기기 개발 및 조립회사다. 애플 스마트폰이 한창 날개를 달던 2010년에만 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18명이 잇따라 자살을 기도해 그중 1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열악한 노동조건이 원인이었다. 제대로 된 휴일도 없이 하루 12시간씩 일한 대가는 1400위안의 월급. 한화 26만 원 정도의 저임금이었다.

초고부가가치제품을 생산하지만 높은 노동 강도와 열악한 근로환경, 그러나 저임금이라는 굴레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연이 알려지면서 폭스콘의 어두운 구석이 폭로되었고, 세계 곳곳에서 폭스콘에 생산을 의뢰한 애플, HP 등 유명 IT기업에 대한 소비자 비판과 불매운동도 벌어졌다. 당연히 폭스콘의 최고경영자였던 궈타이밍에 대한 비난의 화살도 쏟아졌는데, 이때 그가 노동자의 자살 방지를 위해 내놓은 대책은 황당한 것들이었다. 폭스콘 공장의 모든 창문을 열기 힘들게 바꾸었는데, 노동자가 대부분 창문에서 투신자살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계단 난간마다 투신 방지용 그물을 설치하고, 폭스콘 전 직원에게 ‘자살 금지 서약서’ 서명을 강요하기도 했다. 물론 서약서에는 회사의 면책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홍하이그룹 회장 시절의 궈타이밍(왼쪽)과 2022년 10월 18일 자체개발 전동차 MODEL B 시승식.

이러한 중국의 폭스콘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궈타이밍이기에 출마선언장에서 로이터 기자가 물었다

“만약 총통에 당선되어 중국공산당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홍하이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원래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지 않았고, 중국이 홍하이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한다면 기꺼이 ‘그래, 그렇게 하라!’고 말하겠다. 만약 내 개인 재산을 희생해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지 않을 수 있다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 금형공으로 일할 의향이 있다.”

궈타이밍의 거침없이 답변은 곧바로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다.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 논란의 주요 내용이었다. 첫째, 총통 선거에 출마하기 전 궈타이밍은 이미 홍하이 내의 책임 있는 자리에서 모두 물러났기 때문에 중국 내 자산 몰수 운운할 지위에 있지 않았고, 둘째로 아무리 대주주라고 해도 홍하이의 순자산 85%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투자분 몰수와 같이 주주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 그리고 한 기업 자산의 몰수로 양안관계가 안정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비판 등이었다.

홍하이정밀공업도 곧바로 성명을 내고 ‘회사가 1991년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이후 현재 80만 명 이상의 주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외 모든 투자자가 공동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너무나도 황당한 발언인 까닭에 홍하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서 발언 다음날 2.7% 소폭 하락했다가 금세 다시 회복하는 추세로 마무리되었다.

기업 총수와 정치지도자의 간극

궈타이밍이 대만 총통 선거 참여를 밝힌 것은 2016년부터다. 2016년은 미국의 트럼프가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던 시점이다.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에서 영감을 받고 정치활동을 본격화한 그는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많아 '대만 판 트럼프'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 자수성가로 갑부의 지위에 오른 궈타이밍은 트럼프 못지않은 자신감과 의욕을 보이지만, 정작 대만에서의 지지는 트럼프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싱가포르대학교 정치학과 좡쟈잉 부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궈타이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자들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사업을 잘하면 다른 분야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역량과 부자의 재산은 전혀 다른 영역의 것이라는 지적이다.

 

궈타이밍과 러닝메이트 라이페이샤.

그런 궈타이밍이 최근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총통 선거의 러닝메이트 발표 때문이었다.

대만의 선거관련법 상 내년 1월 총통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후보는 부총통 후보와 함께 후보등록을 해야 하는데, 후보등록 마감일 11월 24일을 한참 앞둔 지난 14일 궈타이밍은 부총통 후보로 유명 예술가 겸 심령강사인 라이페이샤(60세)를 지명했다.

대만 주둔 미군 혼혈 출신으로 18세 소녀 시절에 가수로 연예활동을 시작한 라이페이샤는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연극과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고, 자신의 고단했던 과거를 명상 수행으로 이겨낸 이야기를 담은 책 『집으로 돌아가는 용기』(원제 ‘回家’, 라이페이샤 외 공저, 2012년)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유명하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그를 부총통 후보로 지명한 데 대한 논란은 비단 ‘여성계 표를 의식한 포석’이라거나 ‘유명 연예인의 인기를 빌린 득표전략’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정작 부총통 후보로 지명한 라이페이샤가 미국 국적을 보유한 이중국적자로서 피선거권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궈타이밍 측에서는 서둘러 라이페이샤의 미국시민권 포기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지만, 기초적인 선거 관련 법률 지식조차 갖추지 못한 궈타이밍 측에 많은 대만 민중은 허탈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고, 4년 전의 궈타이밍을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20년 중국 국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한 궈타이밍은 당시 가오슝 시장이던 한궈위에게 큰 표 차로 졌다. 이후 그는 한궈위의 선거운동을 돕지 않은 채 국민당에서 탈당해버렸고, 곧 이은 총통선거에서 국민당은 민진당에게 적지 않은 표차로 졌다. 그해 말 한 텔레비전방송 뉴스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궈타이밍은 총통선거 당시 한궈위 후보를 돕지 않은 이유에 대해 ‘어머니의 건강 때문’이라고 말해서 세간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여론은 준비되지 않은 정치인의 얕은 수를 안다

이처럼 논란만을 거듭해 온 궈타이밍이기에, 출마선언 이후에도 지지율은 되레 가라앉는 분위기다.

 

전자신문 메이리다오가 발표한 2024년 총통선거 여론조사 추이표. 아래 황색선이 궈타이밍.

지난 21일 발표된 전자신문 『메이리다오』의 제43차 총통선거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38.2%로 여전히 1위를 차지하는 가운데 국민당 호우요위 후보가가 18.8%로 약진해서 2위를 차지했다. 한 때 2위에 올랐던 민중당 커원저 후보는 16.3%로 3위를 차지했고 궈타이밍 후보는 7.3%로 하향세를 면하지 못했다. 궈타이밍 후보가 출마선언과 부총통 후보 지명 등의 큼직한 행사를 연거푸 치렀지만, 되려 부정적인 부분을 노출하면서 지지율을 잠식했다는 것이 세간의 분석이다.

 

2024년 대만 총통선거 출마자들. 왼쪽부터 민진당 라이칭더, 국민당 호우요위, 민중당 커원저, 무소속 궈타이밍.

72세의 궈타이밍에게 이번 두 번째의 도전은 어쩌면 마지막 도전이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궈타이밍 후보 측은 즉각 대규모 지지자 연대서명작업에 착수하면서 여론의 반전을 도모하고 있다.

대만의 「총통부총통선거파면법」에 따르면 소속정당이 없는 후보의 등록에는 일정 수의 지지자 연대서명도 함께 요구되는데, 이번 총통선거에는 약 28만 9천 명의 연대서명이 필요하다, 궈타이밍 측은 아예 그 7배에 달하는 200만 명분의 연대서명 확보를 목표로 전국 곳곳에 대책사무소를 열고 대대적인 홍보전도 함께 벌이기 시작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지지 연대서명을 촉구하는 배너 광고도 대거 등장했다. 재력을 바탕으로 선거 판세를 뒤집어 보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광고홍보계에서는 9월 25일 현재까지 궈타이밍 측의 광고비 지출이 4천만 신타이완달러(NTD)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화로 환산하면 16억 원을 넘는 금액이다. 그러나 대만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직 선거비용은 엄격히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지난 9월 12일 선거공보를 통해 공표된 2024년 총통부총통선거 최대금액은 4억 2749만NTD, 한화로 178억 원 수준이다. 궈타이밍 측은 선거일이 100일도 넘게 남은 시점에서 후보 등록 조건만을 갖추기 위해 10%에 가까운 선거 비용을 이미 지출해버린 것이다.

 

온라인 상에서 쉽게 접하는 궈타이밍 후보 홍보물.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지만, ‘경제가 중요하다’는 말 이외엔 뚜렷한 내용이 없다. 집권 민진당과 야당 국민당의 통합이라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어느어느 후보와 차 한 잔 마셨다’는 말 외엔 로드맵이 없다. 단지 민진당보다는 국민당에 가까운 성향으로 볼 때 궈타이밍 후보가 앞으로 기존 야당 후보 두 사람의 표를 잠식할 것이라고 분석될 뿐이다. 그렇다고 민진당 쪽이 궈타이밍의 등판을 마냥 반기는 분위기만은 아니다.

과거 민주진보당이 집권했던 2000년부터 2008년까지 8년 간 부총통을 지낸 뤼쇼리앤(呂秀蓮, 79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 지도자는 자신을 사장이라고 여긴 채 다른 사람들의 복종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표를 얻기 위해 자신을 장식해 줄 여성을 찾아서도 안 된다”고 궈타이밍을 꼬집었다. 과거 "돈 버는 것만 알 뿐 헌법도 이해하지 못한다"며 궈타이밍을 비난한 적이 있는 뤼 전 부총통은 “지금도 헌법에 대해 잘 모르는 정치인들이 있다”면서 총통 후보는 총통 후보답게 행동하라“고 촉구했다. 준비되지 않은 정치지도자가 나라를 이끌면 어떤 위험이 다가올지 불을 보듯 명확하기 때문이다.

“총통 후보는 총통 후보다워야!”

준비되지 못한 궈타이밍의 대만 총통 선거 도전을 지켜보면서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재력 하나로 ‘반값 아파트’ 같은 허황된 공약을 내세웠던, 정치 문외한인 연예인들을 대거 앞세워 표 얻기에만 급급했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자 곧바로 등 돌려 떠나버렸던, 정치철학 없이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만을 등에 업고서 분열을 획책했던…. 부끄러운 기억들이 잇따라 스친다.

그렇다, 그 나라의 정치지도자는 그 나라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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