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으로 실려갔는데…'자해' '잡범' 운운한 한동훈

"인면수심 윤 정권의 법무부 장관 답다"

검찰 영장, 한동훈 발언에 민주당 반발

2023-09-18     김성진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국회에서 본회의 출석을 위해 입장하던 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9.18.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단식 19일째 건강 악화로 병원에 긴급 이송된 가운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 대표의 단식을 '자해'로 규정하고 '절도' '사기' '잡범' 등의 단어를 섞어가며 조롱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냈다. 이 대표가 단식 기간에도 검찰 조사에 자진해서 나서고 그에 앞서 수백 차례의 압수수색에 응했음에도, 검찰은 '증거 인멸'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한 이 대표의 신병을 확보하겠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무리한 영장 청구에 대해 '마녀사냥' '정치수사'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법무부와 검찰은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검찰독재' '정치검찰'이라며 강력 규탄했다.

한 장관은 18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본회의 참석 전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수사받던 피의자가 단식해서 자해한다 해서 사법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앞으로 '잡범'들도 다 이렇게 하지 않겠냐"라고 했다. 이어 "과거에도 힘 있는 사람들이 죄 짓고 처벌을 피해보려고 단식하고 입원하고 휠체어 타고 이런 사례들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단식 중인 이 대표의 상태를 고려하면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낮다는 비판에도 "그렇게 따진다면 절도나 사기로 체포되는 사람이 단식하면 누구도 구속되지 않게 할 수 있냐. 사법시스템이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리부터 그런 (단식) 상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수사를 받고 예정되고 소환통보가 된 이후에 본인 스스로가 만든 상태 아닌가"라고 했다.

한 장관의 발언에 국무위원으로서 지켜야할 정치적 중립이나, 법이 보장하는 무죄추정, 불구속 수사 원칙은 없었다. 사실상 검찰에 구속 수사하라는 '가이드 라인'을 재확인시켜준 셈이다. 그러나 이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 사유가 된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은 뚜렷한 물적 증거도 없이 일부 업자의 증언이나 특정인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증거가 차고 넘친다"던 대장동 사건조차도 유동규의 자기부정, 자기모순, 오락가락 증언으로 검찰 측 논리가 무너진 상황에서, 또다시 증언·진술에만 의존하는 두 사건에 대해 '사법 시스템' 운운하며 범죄로 단정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지, 한 장관 스스로 자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검찰이 400여 차례의 압수수색을 하고도 증거 인멸을 구속 사유로 든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이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을 받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모습. 검찰은 지난 2월16일 이 대표에게 첫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한편 이 대표는 단식 19일째로 이날 오전 건강 악화로 인해 병원에 이송됐다. 2023.9.18. 연합뉴스

검찰도 이 대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한 장관 발언과 비슷한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이날 영장 청구사실을 밝히며 "형사사법이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돼서는 안 되고, 피의자에게 법령상 보장되는 권리 이외에 다른 요인으로 형사사법에 장애가 초래돼서는 안된다는 원칙하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됐다"면서 '원칙론'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자체가 추석 연휴 직전 '여론 환기'를 위해 정치적으로 기획됐다는 의심을 피하기는 어렵다. 검찰은 지난해에도 이 대표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한 바 있다. 게다가 이번 영장 청구의 경우, 야당 대표가 긴급 이송된 상황에서 여론의 비판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점에서 대통령실의 묵시적인 동의를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대표 긴급 이송 약 2시간 뒤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의 이 같은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의 배경에는 한 장관뿐만 아니라, 이 대표에 대해 뿌리 깊은 반감이 있는 대통령실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최근 이 대표의 장기간 단식에 대해 "누가 (단식 중단을) 막았느냐. 아니면 누가 (단식을) 하라고 했느냐"며, 조롱에 가까운 막말성 발언을 했다. 또한 국회와 소통을 담당하는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물론이고, 여당 지도부와 의원들조차 단식농성장을 방문하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이 자신에게 막말을 했다는 이유로 단식 농성을 항의 방문해 아수라장으로 만든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정도가 유일한 사례다. 과거 정치적인 대립이나 교착 상태에서 단식이 있을 경우, 청와대 고위관계자나 여당 지도부가 방문함으로써 출구를 마련했지만, 아무런 대화도 없이 구속영장으로 옥죄는 것은 사실상 죽음을 종용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친박계인 우리공화당의 조원진 대표조차 이날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시간적으로 영장 청구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 장관의 발언과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강력 반발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이 대표가 병원에 실려 간 와중에 검찰은 이 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군사정권도 국민 앞에서 이렇게 인면수심의 행태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장관은 뻔뻔하게도 단식 끝에 병원으로 이송된 야당 대표를 조롱하고 단식의 의미를 폄훼했다. 심지어 잡범들이 따라 할 수 있다는 궤변까지 늘어놨다"며 "인면수심 정권의 법무부 장관답다. 일국의 장관을 자처하는 사람이 참으로 교만하고 악랄하다"고 평했다. 그는 "한 장관은 말끝마다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하면서 왜 구속에 매달리나. 제대로 된 증거 하나도 없으니 구속영장 청구로 괴롭히고 망신 주려는 것이냐"며 "구속영장 청구로 국민의 시선을 돌려 정권의 무능을 가리고, 야당을 분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병원에 실려 간 제1야당 대표를 욕보이는 무도한 윤석열 검사정권과 비열한 법무부 장관을 국민과 함께 심판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단식 중이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8일 건강이 악화돼 국회에서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2023.9.18. 연합뉴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정치검찰은 최소한의 염치도 없느냐"며 "이 대표의 병원 이송 소식을 구속영장 청구 소식으로 덮으려는 노림수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백현동 개발 사업으로 200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데 용도변경을 지시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하라"며 "쌍방울의 대북송금이 이 대표와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기업이 저지른 범죄를 왜 이 대표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하느냐. 쌍방울이 이재명 대표를 위해 북한에 돈을 주었다는 것은 검찰의 망상이다. 소설도 이렇게 엉성하게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 년 반 넘게 야당 대표 주변을 먼지 털듯 털어놓고는 내놓은 결과물이 고작 이런 것이냐"며 "더욱이 도주의 우려가 없는 야당대표를 구속하겠다는 것은 괴롭히기, 망신주기를 위한 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윤석열 검사정권의 폭거"라고 비판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비정한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의 정적제거, 야당 탄압,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부당한 수사, 부당한 영장에 맞서 결연하게 맞서 싸울 것"이라며 "눈에는 눈, 피에는 피, 전면 투쟁"이라고 했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비정하고 잔인한 정권이다. 민생이 어찌 되든 말든, 국민이 죽든 말든 오직 정적제거에만 광분하는 윤석열 정권의 민낯"이라며 "민주당이 할 일은 분명하다. 국민이 피로 일군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윤석열 정권의 불순한 시도를 막아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부당하고 명분없는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고, 윤석열 정권의 폭정에 맞서 일치단결해 싸워야 한다"며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당 사무부총장인 김병기 의원은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영장을 청구했다. 참으로 비정하다"며 "치솟는 분노를 참기 어렵다. 영원할 것 같은 권력에 취해있지만,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용민 의원은 "정권과 여당에게 유리한 정치 일정을 고려한 출석요구, 정치 일정에 맞춘 구속영장 청구, 이런 행태 때문에 정치검찰이라고 하는 것"이라며 "사건조작을 넘어 오직 정치적 목적과 일정에 맞춘 수사는 누구의 신뢰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19일 단식하다가 응급실에 실려 간 이에게 체포 영장을 청구한 윤석열 정부"라며 "얼마나 악랄하고 잔인한 사적 이익 추구 집단들인지 뼛속에 새겨야 (한다)"고 했다. 정성호 의원은 "사람이 죽어 가도 눈물 한 방울 없을 무도하고 비정한 정권과 무슨 대화가 가능하겠는가"라며 "막장권력의 폭정에 의회민주주의 운운하다 그냥 폭망하지 않으려면 국민을 믿고 국민과 함께 더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대표 중심으로 더 강하게 뭉쳐야 살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단식 중이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건강 악화로 국회 인근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이송된 가운데 18일 오전 이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2023.9.18. 연합뉴스

한편 이 대표는 긴급 이송된 뒤에도 단식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이날 오후 이 대표가 입원해 있는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 앞에서 브리핑을 통해 "이 대표가 이송 후에도 병상에서 단식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며 "폭주하는 정권에 제동을 걸기 위해 자신이 앞장서야 한다는 의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최소한의 수액치료 외에는 일체 음식 섭취를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 대변인은 이 대표의 건강 상태에 대해선 "위급한 상황 넘겼고, 하지만 아직은 기력은 전혀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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