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아동·가정폭력 가해자들에 '감형 제조기'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해부] ②문제적 판결들

수사 정보 유출한 '사법농단' 판사들에 무죄 선고

김학의 성접대 사건 피해 여성의 재정신청 '기각'

'서울YMCA 손해배상 사건'서 시대착오적 보수성

들끓는 여성·인권단체 "감형 남발…지명 철회해야"

아들은 20세 대학생 때 김앤장 인턴…아빠 찬스?

2023-09-06     김호경 에디터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이균용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는 현재로서는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야권의 반대표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자의 막대한 재산을 둘러싼 각종 축소‧은폐‧투기 의혹과 함께 여성‧아동‧가정폭력 등에 관한 문제적 판결 사례가 '까도 까도' 계속 나오고 있어 도덕성과 청렴성, 인권 감수성 등 기본 자질이 의심받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가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이고 대표적 보수 판사라는 점은 대법원의 독립성과 삼권분립을 위협하며 사법부의 우경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강한 우려를 낳고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이 후보자의 문제점과 임명동의안 처리 전망 등을 종합 정리해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2023.8.30. 연합뉴스

'사법농단' 판사들에 무죄 선고…"법관 독립보다 법원행정처 권위 우선시"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언이 있는 만큼 이 후보자의 판사로서의 족적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이 후보자는 2019년 백남기 농민이 목숨을 잃은 집회에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으며, 틱장애(투렛증후군) 환자의 장애인등록을 인정해 2017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선정하는 장애인 인권 디딤돌 판결로 선정되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판결이 여럿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적 판결로 거론되는 사례가 훨씬 많아 대법원장 임명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우선 이 후보자가 서울고법 형사8부 재판장으로 있던 2021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현직 판사 3명에 대해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한 사례가 꼽힌다. 대형 법조 비리 사건이었던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 수사가 현직 판사 비리로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고 법원에 접수된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을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신광렬·성창호·조의연 부장판사 등이 재판을 받았던 '사법농단' 사건의 일환이었다.

당시 이 후보자는 판결문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을 받고 있는 법관이 누구이고 그 혐의가 사실인지를 여러 경로를 통해 파악하는 것은 정당한 사법행정사무의 수행일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법행정의 역할 중 하나"라며 "피고인들이 법관 비위 정보를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행위는 공무상 비밀누설죄의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최근 논평에서 "법관의 독립보다 사법행정기구의 권위를 우선하는 사고방식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며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의 자리에 임명된다면 이러한 위법 행위가 사법행정의 일환으로 정당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학의 성접대 사건 피해 여성의 재정신청 '기각'…친검찰 성향 단면

이 후보자가 서울고등법원 재직 시절 '김학의 성접대 사건'에 대한 피해 여성의 재정신청을 기각한 것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유검무죄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김학의 사건은 정치검찰의 부패와 제 식구 봐주기, 권력 유착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한민국 사회에 적나라하게 알린 대표 사례였다. 그럼에도 사건 수사를 뭉갰던 검사들은 그 어떤 징계도, 형사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런 사건의 재정신청을 기각했다는 것은 이 후보자의 보수성과 친검찰 성향을 드러내는 한 단면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사IN 보도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이던 2015년 7월 8일 김학의 사건 재정신청을 기각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였다. 재정신청은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불복한 고소·고발인이 법원에 그 결정이 타당한지를 다시 묻는 절차다. 쉽게 말해 검사에게 기소를 강제하게 해달라는 요청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사건이 처음 불거진 2013년 경찰은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혐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 1차 수사팀이었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윤재필)는 김 전 차관에 대한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한 번 안 하고 2013년 11월 11일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했다. 성접대 동영상 속 피해 여성이 2014년 직접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며 2차 수사가 시작됐지만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강해운)는 이듬해 또다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렇게 두 차례나 김 전 차관에 대한 불기소 결정이 이어지자 피해 여성이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는데, 담당 재판부였던 이균용 당시 부장판사마저 검찰 손을 들어줬던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2019년 대법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각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신청인(피해 여성)이 제출한 자료와 수사기록만으로는 신청인이 고소한 범죄사실에 대한 불기소처분이 부당하여 그에 대한 공소제기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자료도 없으므로, 재정신청을 기각함."

 

뇌물수수·성범죄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10일 오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이 설치된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을 나서고 있다. 2019.5.10. 연합뉴스

여성·아동·가정폭력 사건서 인권·성인지 감수성 부족 드러내

이 후보자가 시민사회계의 뭇매를 맞은 최초의 판결은 '서울YMCA 손해배상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이 후보자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 부장판사였던 2007년 여성에게 총회 회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 제11조 평등 원칙 위반이라며 서울기독청년회(YMCA) 여성 회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의사 결정 과정 등에서 배제하는 것은 성차별적 처우에 해당해 헌법이 규정한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심 판결 이후 2010년 서울YMCA 정기총회에서는 여성도 총회원으로 인정받게 됐다. 서울YMCA 사건에서 이 후보자가 냈던 1심 판결은 그의 시대착오적 인권 감수성과 보수성을 지적하는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이 밖에 그가 여성·아동·가정폭력 사건에서 항소심 재판장을 맡아 성인지 감수성 부족을 나타낸 판결은 부지기수다. 이 부분은 특히 여성·인권단체들이 이 후보자의 대법원장 임명을 거세게 반대하는 핵심 사유가 되고 있다. 주요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12살 아동을 3차례 성폭행하고 가학적인 성적 행위를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던 20대 남성에 대해 피해자 가족들이 엄중한 처벌을 원하는 데도 2심에서 징역 7년으로 감형. "개선·교화의 여지가 남아있는 20대의 젊은 나이"라는 이유.

▲"유흥업소에서 근무했던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해 여성을 6차례 성폭행한 20대 남성의 형량을 징역 7년에서 3년으로 감형. "이 사건 이전까지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이고 개선·교화의 여지가 남아있는 20대의 비교적 젊은 청년"이라는 이유.

▲버스 안에서 처음 본 20대 여성을 뒤쫓아 아파트 안에까지 침입한 뒤 강제로 껴안으려 했던 남성이 1심에서 징역 1년 3개월 실형을 받았으나 2심에서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 "초범으로 술에 상당히 취하여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됐다"는 이유.

▲고3 수험생 여성이 이별을 요구하자 주먹으로 온몸을 때리고 강간했으며 부모에게 알리겠다고 협박까지 한 뒤 아무런 피해 회복 조치도 안 한 20대 남성을 징역 7년에서 5년으로 감형. "강간상해 범행으로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2주간 치료를 요하는 손과 다리 등의 좌상으로 그 정도가 중하지 않으며, 피해자는 당시 만 18세로 성년에 거의 근접한 나이였다"는 이유,

▲가정폭력을 일삼다 끝내 아내의 복부를 여러 차례 밟아 숨지게 한 남편이 1심에서 살인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상해치사 혐의만 적용해 징역 7년으로 감형. "피해자가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피해자가 견딜 수 있을 정도라고 착각하고 평소처럼 폭력을 행사한 것이라 볼 여지가 있어 살해할 고의가 충분히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입장문에서 "감형한 일부 판결들만으로 성범죄나 강력범죄에 대해 온정적인 것처럼 보도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집행유예 기간 중 미성년자 성매수를 했거나 헤어진 연인을 감금해 강간을 시도한 피고인 등에게는 1심보다 높은 형을 선고했다"고 반박했다. 이 후보자는 "개별 사건의 양형은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을 보장해야 하는 항소심 법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신중한 고민 끝에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며 "국민들의 균형 있는 판단을 바란다"고 전했다.

들끓는 여성·인권단체들 "여성 인권 퇴보시킬 것…지명 철회해야"

그러나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대한간호협회, 서울여성회, 인권운동사랑방, 전국공무원노조 성평등위원회 등 57개 여성·인권단체는 연대 성명을 내고 "이 후보자는 그간 여성 폭력 사건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형하고 여성 인권을 퇴보시키는 행보를 보여왔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지명을 당장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도 6일 성명에서 "가정폭력, 성폭력에 상습적으로 감형 판결을 내려온 사람이 대법원의 수장이 된다면 인권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대법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여성 인권의 퇴행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지난 10년간 강력범죄(살인·강도·성범죄)의 피해자 25만 5835명 중 무려 85.57%인 21만 8923명이 여성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 대상 범죄에 온정적인 사람이 대법원장에 임명된다면 여성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후보자의 대법원장 지명은 윤석열 대통령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과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에 이어, 현 정부가 여성 인권을 등한시하고 있음을 보이는 또 하나의 사례"라면서 "이 후보자는 여성 인권과 범죄 피해에 대한 상식 이하의 판결, 부동산·주식 등 각종 비리 의혹으로 이미 숱한 자격 미달 사유를 갖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격 없는 후보자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리지 않도록 이균용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법원 내 다면평가서 최하위권 점수…변호사들 '우수 법관'에 뽑힌 적도 없어

이 후보자는 법원장 근무 시절 법원 내 구성원들이 참여한 다면평가에서도 최하위권 점수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서울남부지법원장(2017년 2월~2019년 2월)과 대전고등법원장(2021년 2월~2023년 2월)으로 재임한 4년간 이뤄진 8차례의 '법원장 이상 다면평가' 결과에서 모두 최하위권 점수를 받았다. 이 평가는 3300명 이상의 법원 공무원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전체 다면평가 대상자는 35~40명 안팎이었다.

특히 이 후보자는 지난해 상반기 전국 법원장 다면평가에서 평점 0.653점을 받아 법원장 40명 중 39등을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 같은 평가에서도 평점 0.552점으로 39명 가운데 38등이었다. 다면평가 항목에는 ▲관리자 적합성 여부 ▲재판권 간섭 여부 ▲대법관 적합성 여부 등이 포함된다.

이 후보자는 재판에 참여하는 변호사들이 매년 선정하는 '지방변호사회의 법관평가'에서도 우수 법관으로 뽑힌 적이 한 차례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 후보자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한 9년 동안 약 6만 건의 변호사 평가를 모아 모두 97명(중복 선정 포함)의 우수 법관을 뽑았는데 이 후보자는 여기에 한 번도 들지 못했다. 이 후보자에 대한 법원 안팎의 평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들은 만 20세 대학생 때 김앤장 인턴 경력…'아빠 찬스' 아닌가

이 후보자의 아들이 만 20세이던 대학생 시절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사실도 뒷말을 낳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도 아닌 학부생 신분으로 김앤장 인턴 경력을 쌓은 것이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 '아빠 찬스'를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 후보자의 아들 이모(34) 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링크드인' 경력란에 2009년 7월 한 달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했다고 적었다. 이 씨는 "독점금지와 경쟁 법률에 관한 문서를 검토하고 편집했다"며 "두 자동차 회사 간의 금융채무 분쟁에 관한 사례 조사에 참여했다"고 자신의 이력을 설명했다. 이 씨는 이번에 의혹이 제기된 뒤 자신의 링크드인을 삭제했다.

김앤장이 운영하는 인턴 제도는 로스쿨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김앤장은 변호사 실무를 교육하기 위해 로스쿨 학생들의 지원을 받고 절차를 거쳐 인턴을 선발해왔다. 김앤장 홈페이지의 인턴 지원 접수 항목에 들어가면 지원 자격으로 '법학전문대학원생 인턴'과 '해외 로스쿨 클럭쉽' 항목만 있을 뿐 대학생 대상 인턴십 공고는 없다. 그런데 로스쿨생이 아니었던 이 씨가 김앤장에서 인턴을 한 것이다.

이 씨는 김앤장 인턴 때 불과 20세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 이 후보자는 광주고법 부장판사였다. 또 김앤장 변호사들이 다수 포함된 민사판례연구회(민판연)의 회원이기도 했다. 민판연은 극도의 엘리트주의와 폐쇄적인 운영 방식, 법원 내 요직 독점으로 인해 '법조계 카르텔' '전관예우의 통로' '사법부 하나회'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법원은 입장문을 내고 "후보자 아들의 기억에 의하면 해당 법률사무소에서 당시 학부생 인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고 자신 외에 10명 이상의 학부생과 함께 인턴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마치 법학전문대학원생만을 대상으로 인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후보자 자녀가 특혜를 받았다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김앤장 측도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인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로스쿨생을 대상으로 한 인턴은 채용과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을 받고, 학부생은 다른 절차가 있다"고 해명했지만, 다른 절차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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