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훈련보다 윤석열 멈추게 하는 게 진짜 국가안보

안보의 이름으로 한반도 안보 위협

지난 주말 미국 캠프 데이비드로부터 날아온 소식은 대한민국이 스스로 안보의 이름으로 안보 위협을 불러들이는 한미일 전쟁동맹 체제로의 본격 진입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맹’이라는 표현은 수사일 뿐,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미일 동맹에 한국은 하위 파트너로 종속되는 관계를 한국 스스로 자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안보 철벽'의 획기적 회담이었다고 자화자찬합니다. 이를 전하는 한국의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를 그대로 받아쓰며 3국 협력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찬사 일색인 가운데 비판적으로 보도한 어느 신문은 그나마 “한국의 외교가 미증유의 미로에 진입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한국 정부에 ‘외교’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3국 협력의 새 장을 연” 것이 아니라 ‘대미 대일 예속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백보 양보해 설령 대외적 안보를 강화시켰다는 평가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안보는 대체 무엇을 위한 안보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밖을 향한 철벽을 쌓더라도, 핵 우산이라는 철갑을 입더라도, 나라의 내부의 삶이 와해되고 민주적 체제가 무너진다면 그 국방과 안보가 지켜야 할 것이 나라에 남아 있기는 하는 것일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지금 '붕괴와 퇴행의 새로운 장의 연속'입니다. 무엇보다 지난주 광복절에 있었던 대통령의 경축사는 경악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이라도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말이 다른 날도 아닌 광복절에 공식 기념식장에서 버젓이 발설됐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아니라 일본 총리가 할 법한 말들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말조차 일본과의 미래 협력을 위해 써서는 안 되는 불순한 표현처럼 ‘암흑의 시기’라는 모호한 말로 덮었던 경축사는 나라의 주권과 자주에 대한 모독이며 일본에 대한 자발적 굴종이며, 한국인들의 자존을 바닥 밑으로 내려앉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친일, 종일(從日)을 넘어 숭일(崇日) 수준의 경축사를 한국 대통령이 자국민들을 향해 내뱉고 있을 때 정작 일본에서는 총리가 전범자들의 위패가 안치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올렸습니다.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정국, 靖國)는 뜻의 야스쿠니 신사에 모신 '일제의 호국 영웅'들 앞에 총리는 공물을 올렸고 일본 각료들은 직접 참배까지 했습니다. 아마도 총리가 야스쿠니에 바치는 공물에 한국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함께 올려도 이상할 게 없었을 것입니다.

언론 붕괴야말로 국가안보의 붕괴 

국가안보의 목적이자 중요한 부분인 민주주의의 핵심 기둥 중 하나인 언론의 근간이 무너져내리는 사태는 지난주에 한 절정을 이뤘습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로 정부에 의한 언론장악이라는 광란의 폭주는 1단계 완료에 임박해 있습니다.

이번주에 언론장악의 질주는 단 하루도 허비하지 않으려는 듯 월요일이 되자마자 오전에 ‘반쪽짜리’ 회의를 열어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이사장 해임안 및 KBS 보궐이사 추천안건 등을 의결하려 합니다. 언론노조와 현업언론단체, 언론시민사회단체의 ‘방송과 언론의 독립을 무너뜨리지 마라’는 규탄의 외침은 이들 귀에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합니다.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과 송부 등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이동관 후보자의 방통위장 취임이 늦어도 9월 초에는 강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방통위장 직무대행인 김효재 방통위원은 임기가 끝나는 23일까지 남은 이틀간 이동관 방통위장 체제를 위한 사전 작업을 온몸으로 밀어불일 것입니다.

공영언론사와 언론 관련 공공기관에는 과거 언론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훼손했던 인물들이 돌아와 속속 기관장으로 입성하고 있습니다.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하루아침에 기습적으로 해촉하자마자 그 자리에 류희림 전 YTN플러스 사장을 앉혔습니다. 그 역시 이동관 후보자처럼 이명박 정부 시절에 언론장악 전과를 세웠던 인물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 의해 TBS 이사장으로 임명된 박노황 전 연합뉴스 사장은 연합뉴스의 불공정 편파 보도의 핵심적 인물이었습니다. '언론 정상화'라는 미명의 '언론종속' '공영언론에 대한 침공'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분명한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 겨우 그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을 것

이번주에는 월요일부터 4일간 을지훈련이 실시됩니다. 한반도에 어느 때보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올해 을지훈련은 ‘흔들림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 나라를 흔들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 흔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입니다. 

'을지'라는 명칭은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 장군을 기리는 것입니다. 을지문덕 장군은 고구려를 침략한 수나라 장수에게 준 시에서 '만족을 알고 그만두라'고, 노자의 도덕경의 한 구절을 빌어 타이릅니다. 그 온유한 말에는 그러나 어떤 격문보다도 무서운 경고가 담겨 있는데, 만족할 줄 모르면 스스로 욕되게 될 것이며 그만둘 줄 모르면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준엄한 경고였습니다. 언론장악을 향해 벌이는 지금의 광란의 폭주는 결국 그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걸 알게 하고 멈추게 하는 게 을지훈련 이상의 국가안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