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참사’도 시민조사하자
정부는 무능해 죽음 방치ㆍ언론은 죽음 모독 '제2의 참사'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24일부터 시작하게 됐다. 국민의힘이 줄곧 반대했던 국정조사가 참사 발생 거의 한 달이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겨우 착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국정조사가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는 낙관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정부여당이 지금까지 보여왔던 태도를 고수한다면 자료 제출과 청문회 증인 선정을 놓고 기피와 지연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반드시 조사 대상에 포함됐어야 할 대통령실 경호처와 법무부가 여당의 반대로 결국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사의 진상과 책임자 규명을 위한 사실상의 첫 출발이라는 점에서 일단 국정조사가 이름 그대로 실질적인 ‘조사’가 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주목과 압박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한 가지 참사 진상 조사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이번 참사의 언론보도에 대한 것이다. 언론은 국정조사를 받을 수 없으니 '시민조사'가 필요하다.
한국언론은 이태원 참사의 발생 순간부터 그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제 역할을 못한 정도가 아니라 또 다른 참사를 만들고 있다.
언론에 의한 참사가 ‘이태원 참사’를 두 번 세 번 일어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29일 밤 이태원 골목에서 첫 번째 참사가 일어났고, 참사 발생 순간에서부터 다음날, 그리고 지금까지 신문의 지면과 방송에서 두 번째 참사가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첫 번째가 정부의 무능에 의한 죽음이었다면 두번째는 언론에 의한 왜곡과 호도의 타살이었다. 정부와 언론에 의한 합작의 참사였다. 정부는 죽음을 방치했고 언론은 죽음을 모독했다.
참사 발생으로부터 3시간여가 지난 10월 30일 새벽 1시 47분, 제 1보를 전하는 연합뉴스의 보도는 ‘이태원 사고 사망 2명, 부상 23명 확인’ 이라는 소방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다. 그 이상의 확인보도는 전혀 없었다. 혼잡한 현장 상황이나 심야에 일어난 사고였다는 점, 일단 재난 당국의 발표를 전해야 할 필요성을 감안하더라도 사고 발생 참사를 전하는 첫 보도부터가 사고의 규모나 실상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마치 2014년 4월 16일 아침, 세월호 침몰 직후 ‘전원구조’ 오보를 냈던 것을 연상케 하는 첫 보도였다.
언론은 30일 새벽부터 오전까지 희생자들의 눈물과 절규 대신 대통령의 지시, 지시랄 것도 없는 공허한 지시를 중계하느라 바빴다. 방송과 신문들은 대통령이 밤새 긴급 대응한 것인 듯, 그 말 한마디 숨결 하나까지 속보로 전했다. '가용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해 지원하라', ‘현장에 구조요원을 제외한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시키라’는 등의 지시를 속보로 내보냈다. 긴급지시라고도 할 수 없는 ‘동정’이라고 해야 할 공허한 지시들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사고 현장에 와서는 “여기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다고?”고 묻는 이를 과연 간밤에 밤새 보고를 받고 지시한 이가 맞느냐고 따지는 언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느 방송은 참사 직후 이를 “한국사회의 문제”라고 했다. 이것이 왜 한국사회의 문제인가. 어느 신문의 논설위원은 “경찰을 더 배치했어도 달라진 건 없었을 것”이라고 한 행안부 장관의 발언을 질타하면서 엉뚱하게도 일본의 경우를 끌어왔다. “일본에선 민간행사 날도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경찰의 유도차와 ‘디제이 폴리스’를 배치한다.” 일본으로부터 배우자는 것인데, 그러나 이게 왜 일본으로부터 배울 일인가. 바로 우리 자신이 이미 5년 전에 보였던 모습이다. 한국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5년 전과 다른, 아니 바로 작년의 모습에서 뒤로 되돌아가버린 2022년 10월의 한국의 문제, 서울의 문제인 것이다. 지난 1년 새, 몇달 새 달라진 그 무엇이 문제인 것이다.
참사 발생으로부터 3일이 지난 11월 1일자 어느 유력 신문사의 1면 머릿기사는 ‘참사 현장의 임시 벽 담장이 참사의 원인이었다’고 참사 원인을 따졌다. 그런가하면 다른 매체는 참사의 원인을 서울 인구 과밀의 문제로 치환시켜 버렸다. “이태원 참사 이후 일상생활에서 ‘압사 위험’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태원 참사의 근본적 원인, 참사를 제2 제3의 참사로 만들고 있는 원인은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 젊음을 표출하러 모인 청춘들의 운집이나 “내려가!” 하는 다급한 외침이 아니라 정부와 최고권력자 무능과 부실, 그런 정부와 대통령을 보호하려 한 언론이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22일 기자회견장에서 “명단 공개가 '2차 가해'라고 진단한 전문가들은 많았지만, 정작 (정부가) 위패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를 만든 게 2차 가해라고 말한 전문가와 언론은 없었다"는 울분과 질타는 정부와 함께 언론을 향한 고발이었다.
한국 언론이 반드시 시민조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회가 할 수 없다면, 언론 자신이 자기반성을 위해,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이 ‘시민조사’를 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