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같은 용기 있는 바보 정치인 또 없나요?”

마석 모란공원서 고 노회찬 5주기 추모제 열려

권력자에 당당하고 힘없는 자와 손잡는 노회찬 정신 기려

일대기 그린 ‘노회찬 평전’ 헌정

“노회찬이라면 어떻게 말할까? 노회찬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젊은 노회찬에게 노회찬 정신 전해야”

2023-07-22     박승철 기자
22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노회찬 5주기 추모제에서 노회찬재단이 5주기를 맞아 출간해 묘소에 올린 평전의 모습. 2023.7.22. 연합뉴스

기득권에 맞서 온몸을 불사르며 싸우는 정치인이 참 귀하다. 고 노회찬 전 의원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의 알권리 실현을 위해 용기 있게 삼성 X파일을 폭로한 정치인 노회찬 전 의원.

바로 이 때문에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법은 만 명한테만 평등하다”는 자신의 말을 직접 입증했던 노회찬 전 의원은 요즘 한국 정치에서 찾기 어려운 ‘용기 있는 바보’였다.

22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는 이런 ‘노회찬 정신’을 기리고자 유족과 정의당 관계자, 경기고 동창, 인민노련에서 같이 활동했던 동지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회찬 5주기 추모제 <같이 삽시다. 그리고 같이 잘 삽시다>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생전 노회찬 전 의원의 활동을 회상하며 새로운 진보의 내일을 꿈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먹글씨 예술가 강병기 선생이 5주기 추모제 슬로건인 <같이 삽시다. 그리고 같이 잘 삽시다>를 붓글씨로 써 영전에 바치는 것으로 추모제 공식 행사가 시작됐다. 강 선생은 노 전 의원 묘비에 글씨를 직접 쓰고 2022년 노회찬재단 달력에도 직접 글씨를 써서 헌사할 정도로 노 전 의원 추모에 공을 들여온 예술가다.

노회찬재단은 노 전 의원 5주기에 맞춰 <노회찬 평전>을 출간했다. 이광호 작가가 2019년부터 4년 동안 200여 명을 직접 만나 자료를 수집한 뒤 집필한 인간 노회찬에 대한 결정판이다. 노회찬재단은 2주기에는 헌정 앨범을, 3주기에는 특별 다큐멘터리 <6411>을 제작했고, 4주기에는 헌정 연극을 상연했다. 이날 노회찬 평전의 작가 이광호 씨는 개인 사정을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조승수 노회찬재단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노회찬에게는 차별 없는 세상, 순환 생태 사회, 복지국가, 한반도 평화 통일이라는 꿈이 있었다”면서 “노회찬 5주기를 맞아 이제는 노회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야 할 5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족을 대표해 연단에 선 부인 김지선 씨는 “(노 전 의원의 죽음이) 5년이 지났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서 “일상 활동은 하는데 현실감이 없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왔는데 천천히 가더라도 확실하게 가는 그런 걸음 내디뎌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 전 의원의 경기고 동창이자 노회찬재단 이사인 김창희 씨는 노회찬 평전을 헌정했다. 김 이사는 “노회찬의 꿈을 이어가서 이 세상을 한 뼘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면서 “더 이상 투명 인간들이 슬퍼하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노회찬 평전을 통해 노회찬이라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노회찬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망 하루 전인 2018년 7월 22일 오후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미국 방문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 2018.7.22. 연합뉴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내년 총선 승리를 다짐했다. 이 대표는 “이제 노회찬을 모르지만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 한 세대 뒤에서 노회찬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위해 객관화된 노회찬을 넘겨줘야 한다”면서 “권력자들 앞에서 당당하고 힘없는 사람에게 한없는 연민을 가진 젊은 노회찬이 새로운 상상력을 갖고 도전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회찬이 당에 남긴 마지막 당부는 당은 당당하게 나아가라는 것이었다”면서 “내년에는 더 많은 노란 꽃이 세상을 뒤덮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덕우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고인과의 인연을 회상했다. 이 이사장은 “1973년 서울 종로에서 고교를 다닐 때 만났고 1999년 진보정당추진원탁회의에서 재회했다”면서 “이후 201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동지로서 같은 꿈을 꿨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정당 창당 원천기술 보유자, 호빵맨의 푸근한 미소 노회찬이 우리를 부른 자리에서 한용운의 시를 읽는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님의 침묵’을 낭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바보’가 없는 정치를 한탄했다. 김 의원은 “노 전 의원은 대학 과(고려대 정외과) 선배로서 평소에 같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후배다”면서 “5년 전 성북구청장을 그만두고 있던 시기에 찾아뵙고 같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용기 있는 정치인이 이제는 더 없구나, 바보가 이 세상에 더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요즘”이라면서 “바보같이 살기가 쉽지 않다고 느끼면서 노회찬 선배가 너무 그리워졌다”고 말했다.

노회찬재단 노래패 ‘6411’과 정가가수 정마리 씨는 노 전 의원이 고교 2학년 시절 직접 작곡한 ‘소연가’를 불렀다. 이어 노회찬재단 부산 지역 회원 노래패 ‘노래오래’가 ‘투명인간이라네’라는 노래를 불렀다.

노 전 의원은 1956년 부산 출신으로 경기고,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8번으로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2018년 사망 당시 창원 성산을 지역구로 둔 정의당 소속 3선 의원이었으며 평화와 정의 의원모임 원내대표를 맡고 있었다.

무당파가 많다면서 제 3지대를 노리고 정치판에서 활동 좀 했다는 사람들의 신당 창당 러시가 이뤄지고 있는 요즘이다. 선거 공학자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을 주판알 튕기듯 계산하고 있을 때 진보정당 창당 원천 기술자 노회찬 전 의원은 무엇이라고 말할까.

노회찬은 유권자를 표 계산의 대상, 또는 정치의 객체로 보지 않았다. 그 스스로 노동자가 되어 자신이 포함된 노동자들을 직접 대표하는 정치를 꿈꿨다. 투명 인간들이 기득권자들에게 ‘나도 좀 보이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정치가 아니라 투명 인간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어 직접 지배와 통치를 할 수 있는 정치를 꿈꾼 노회찬 전 의원, 자본가와 권세가들이 힘으로 겁박할 때 대중을 믿고 용기 있게 나선 ‘바보’ 노회찬 전 의원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게 만든 5주기 추도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내년 추도식에는 노회찬이 간 길을 다시 가겠다는 젊은 노회찬이 국회에 들어간 뒤 참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5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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