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뿐인 문체부 시정령… '검정고무신' 긴 소송전 예고

"미분배 수익 줘라"…불이행땐 과태료 500만원

이우영대책위 “강제력 부족해 해결은 아직 요원”

10년전 유사사례 백희나도 대법까지 갔지만 패소

약자인 작가 저작권 보호하는 법적 조치 마련돼야

2023-07-20     민병선 에디터
경기 파주시 문발동 형설출판사 앞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장례 집회에서 고 이우영 작가의 동생인 이우진 작가가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집회는 검정고무신의 저작권자인 형설출판사에 항의하는 취지에서 열렸다. 2023.5.15. 연합뉴스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에도 결국 저작권 보호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없이 사태는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이하 대책위)는 20일 입장문을 내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시정명령을 환영한다”면서도 “문제는 실효성에 있다”고 했다. 대책위는 “제작사(피신고인)가 시정명령을 지키지 않았을 때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하는 것, 정부 사업에 3년간 공모 금지하는 것밖에 없다. 강제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유명 TV애니메이션 시리즈 ‘검정고무신’의 원작자 고 이우영 작가의 별세를 계기로 한국만화가협회 등 만화계 단체들이 유가족 지원 등을 위해 만든 조직이다. 이우영 작가는 3월 출판사와의 저작권 소송 과정에서 부당한 일을 항의하던 도중 유명을 달리했다.

대책위 입장문은 17일 나온 문화체육관광부의 시정명령에 대한 비판이다. 문체부는 캐릭터 업체에 불공정행위를 중지하고 미분배된 수익을 고 이우영·이우진 공동 작가에게 지급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문체부의 명령은 3월 28일 예술인신문고에 ‘검정고무신’ 관련 신고가 접수되고 특별조사팀을 꾸린지 약 4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시정명령을 받은 형설앤 측은 9월 14일까지 이행 여부를 입증할 자료를 문체부에 제출해야 하며, 미 이행시 문체부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3년 이내 범위에서 재정 지원을 중단·배제할 수 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의 포스터. 대교 제공.

‘검정고무신’의 캐릭터 사업을 맡았던 형설출판사와 형설앤 측은 원작자인 이우영·이우진 작가가 동의 없이 창작 활동을 한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이우영 작가는 자신의 캐릭터를 맘대로 그리지도 못하는 상황에 고통을 호소했다.

대책위가 “검정고무신 사건의 해결은 아직 요원하다”고 했듯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사소송은 아직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았고, 이우진 작가와 유가족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은 아직 불가능하다. 지난한 소송전이 기다리고 있다.

10년 전 출판사와 매절(한꺼번에 일정 금액을 받은 뒤 이후 대가를 받지 않는 방법) 계약 문제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그림책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도 오랜 소송 과정을 겪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문체부는 ‘구름빵’ 사태로 불공정 문제가 불거지자 ‘저작권 양도·이용허락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발표했다. 하지만 표준계약서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권고안이었다.

백 작가는 저작권을 찾기 위한 소송에 나섰지만 2020년 끝내 패소했다. 대법원은 2심까지 패소한 백 작가의 상고를 기각했다.

‘구름빵 사태’ 이후에도 신인 작가와 출판사가 이미 맺은 불공정 계약을 방지할 제도는 마련되지 않았다. 구름빵 사태와 관련한 저작권 보호법안이 국회에서 몇 차례 발의됐지만 관련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하는 등 흐지부지돼 버렸다.

‘검정고무신’ 사태가 사회적 파장을 부르자 3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도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안(문화산업 공정 유통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지식재산권 양도 강제 행위 등 문화산업 분야에서 빈번한 10가지 불공정행위를 금지한다.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5000만 원 이하 벌금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법안의 본회의 통과 소식은 아직 없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문화산업 공정 유통법에 반대했다. 방통위는 이 법의 금지행위가 자신들의 소관 기관에 적용돼 중복 규제 우려가 있다고 했다. 또 방송국 외주 제작사 등에 대해 많은 금지 유형이 포함돼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과기부도 중복 규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법적인 강제 조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검정고무신’ 문제, 즉 신인 작가나 대형 문화기업에 비해 약자인 무명 작가의 자작권 강화는 아직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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