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방' 정권

직을 걸겠다는 장관들…책임의식도 명예심도 안 보여

2023-07-08     강기석 칼럼

(본 칼럼은 강기석 에디터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어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국회에서 “국토부 장관으로서, 정부의 의사결정권자로서 말씀드린다.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해 노선 검토뿐만 아니라 도로 개설 사업 추진 자체를 이 시점에서 전면 중단한다. 이 정부에서 추진됐던 모든 사항을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제가 김건희 여사 땅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인지했다면 장관직뿐만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공언했다. 또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이날 CBS라디오에 출연해 “백선엽 장군을 가당치도 않은 친일파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것을 “직을 걸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백선엽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도 밝혔으므로 앞으로 ‘직을 걸고’ 그리 해 나갈 것이다.

장관들의 잇단 “직을 걸겠다”

나는 여기에서 원 장관이 김건희 여사 땅, 그러므로 자동적으로 윤석열 대통령 땅이 되는 그 땅이 그곳에 있는 것을 알고 고속도로 종점을 옮기려고 했느냐, 모르고 했느냐를 따지려고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니다. 박민식 장관의 역사 인식이 지극히 천박하고 친일반민족적이란 것을 지적하려는 것도 아니다. 일국의 장관이란 사람들이 직장 상사에게 불만을 품고 함부로 사직서를 써서 휘두르는 직장인처럼 마구잡이 행태를 보이는 것이 개탄스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에게서 ‘묻고 따블로 가!’ 도박꾼의 모습까지 엿보인다고도 한다.

지난해 10월 ‘청담동 고급 술집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의혹을 제기하는 민주당 김의겸 의원에게 “(내가 술집에) 갔으면 장관직을 걸겠다. 의원님은 뭘 거시겠나?”라고 강력 반발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 들어 ‘직을 건 장관’이 셋이나 된다. 그러나 이런 언행들이 자신들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겠다거나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결기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의혹을 제기하는 상대방을 겁주며 더 이상 문제 제기를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내기 좋아하는 도박꾼은 패가 나쁠수록 '블러핑', 즉 허풍이 심하다고 하던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강도가 세면 셀수록 긍정일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부동산에는 ‘떴다방’이란 것이 있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 모델하우스 주변에서 부동산 소개업자들이 아파트 시행업자와 구매자 간 여러 판매 대행 영업행위를 하는 임시 점포를 이름이다. ‘떴다방’이 얼마나 많이 성업을 이루느냐가 신축 아파트의 인기를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명칭의 뉘앙스에서 느껴지듯, 한 곳에서 오랜 세월 영업하면서 자신이 소개한 부동산의 품질과 가격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평판까지 의식하며 영업하는 정규 부동산 소개소와는 많이 다르다. 장이 선 짧은 시간 안에 뭔가 한 탕 해 먹고 판을 거두어 사라지는 그런 느낌이 강하다.

나는 특히 이 3인 장관의 언행을 보면서 윤 정권이야말로 ‘떴다방 정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직을 걸겠다’는 허풍에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책임지려 하지 않는, 뭔가 진실하지 않고 뒤가 구리다는 그런 정권의 속성을 느끼는 것이다. 좋은 권력으로 국민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정치권력을, 좋은 아파트를 골라 좋은 조건으로 선량한 고객에게 소개하는 부동산 소개업에 비유하자면, 이들 3인의 장관은 ‘장관직’에 대한 엄중한 책임의식도, 명예심도 없이 그저 한탕 해 먹고 수 틀리면 날아버리면 된다는 의식만 충만한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모든 국가권력이 사적 소유의 대상이고, 따라서 자신이 맡은 공직도 공적 책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보다 어떻게든 사적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절호의 수단으로 여긴다. 오랜 세월 국가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나라를 경영해야 할까, 공직을 맡으면 어떻게 봉사해야 할까, 고민이 있었을 턱이 없다.

 

왼쪽부터 원희룡 국토부 장관, 박민식 보훈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공적 책무보다 사적 이익의 발로

나는 원희룡 장관의 말 중에서 “이 노선이 정말 필요하고 최종 노선이 있다면 다음 정부에서 하라”며 “공무원들 골탕 먹이지 말고 민주당이 처음부터 노선 결정 과정에 관여하기 바란다”고 말한 부분이야말로 ‘떴다방 정권’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무책임의 끝판왕이다. 자기가 참여하고 있는 정권의 책무, 스스로 그 일원이기도 한 공무원의 책무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도 느낄 수 없다. 이 말 끝에 원 장관은 민주당의 ‘날파리 선동’을 사업 중단의 이유로 내세우며 민주당이 간판을 내리라고 부르짖었으나 실제 날파리 날갯짓으로 구름을 일으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은 원희룡 자신 아닌가.

나는 원희룡 등 이들 세 장관이 모두 검사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어제 그제 “검찰이 2017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 29개월 간 총 292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사용했다”는 ‘뉴스타파’ 의 보도를 통해 검찰을 모태로 한 ‘떴다방 정권’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됐다. 292억 중 80여 억 원은 전국 각 급 청⋅지청이 나누어 먹고, 70억이 넘는 돈은 매달 15~17명의 사람이나 기관이 현금으로 나누어 먹고, 또 얼마만큼은 윤석열 같은 검찰총장들이 금고에 넣어두고 마음 내키는 대로 꺼내 쓴 의혹이 있다는 보도였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 운용계획 지침>에 따르면,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안보⋅경호 등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에 해당한다. 따라서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수사 상황이 발생하면 그 목적에 따라 집행돼야 하는 예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예산 편성권을 가진 다른 정부 기관의 장들은 국회에 출석해 예산 사용에 대한 감사를 받는다. 그러나 검찰만은 예외다. 검찰총장은 자신이 임의로 예산을 편성해 특활비를 사용하는데도 국회 등 외부 통제나 감시를 받지 않는다. 그러니 검찰이 특활비를 별도 증빙이 필요 없는 '예산 밖의 예산'이나 '가외의 쌈짓돈'처럼 여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소불위 검찰이 확대 이동한 정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필요한 예산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조직, 그것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아니라면 무엇이 무소불위 기관인가. 대한민국 검찰이 바로 그렇지 아니한가. 이런 검찰의 특활비는 어떻게 쓰였을까? 원칙대로 기밀 유지가 필요한 수사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절차를 걸쳐 집행되었을까? 그중 일부는 검사동일체 원칙이 작동하는 조직에서 우두머리 총장이 일선 검사들, 최소한 특수부 검사들의 충성과 단합을 도모하는 데 쓰이지는 않았을까? 또 누군가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나라당 원내대표 였을 때처럼 현금화된 특수활동비를 집에 생활비로 가져다 주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두르고 특활비를 나누어 쓰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한민국 특권층으로 뼈가 굵은 이들이 드디어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된 것이다. 국가 경영에 있어 최소한의 절도와 품위, 책임의식을 기대하기도 어렵게 된 것이다. 이렇게 검찰 조직이 나라 전체의 조직으로 확대 이동했다고 볼 때, 내 직을 걸겠다는 장관들의 잇단 결기는, 장관이란 막중한 자리를 걸고 국민에게 합당한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자신에게 사적 이익을 준 임명권자 대통령에 대한 충성과 아부의 딸랑이짓에 불과한 것이다. 여차하면 판을 거두어 날면 그만 아니냐는 떴다방의 날파리 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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