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 집단 안락사 사건과 후쿠시마 오염수
카트리나 재난 때 병원 지하서 발견된 시체 45구
진짜 책임자들 빠진 채 희생 정당화한 '전문가'들
핵오염수 방류 앞장서 돕는 한국 정부와 전문가들
강양구 '과학전문' 기자 "윤 정부 싫어서 반대하나"
국민 80%가 반대…진영 아닌 생명과 안전의 문제
지난해 하반기 '애플TV'에서 공개한 8부작 드라마 <재난, 그 이후>는 2005년 여름에 미국 남부를 물바다로 만들면서 1200여 명의 희생자를 낳은 태풍 카트리나와 사회적 재난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드라마는 카트리나 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후 뉴올리언스의 '메모리얼' 병원 지하에서 발견된 45구의 시체에서 시작한다.
검사 결과 이 시신들에서는 모르핀 등 독극물로 안락사시킨 흔적이 발견된다. 이것은 사회적 충격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여기에 책임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수사와 재판을 받는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불기소되고 처벌받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됐는가?
역대급 태풍이었던 카트리나가 덮쳤을 때 메모리얼 병원의 상황은 처참했다. 200명의 환자와 600명의 직원이 있던 병원에 2000여 명의 피난민이 몰려들었다. 물과 식량은 바닥이 나기 시작했고, 전력이 끊기면서 의료기기와 에어컨도 멈췄다. 병원은 찜통이 되기 시작했고, 화장실도 막혀서 지독한 악취가 넘쳐났다.
병원 밖에서는 약탈과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은 공포와 절망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헬스케어로 돈을 버는 민영기업이 운영하던 이 병원은 이런 사태에 대비한 매뉴얼도 없었고, 무엇보다 당시 친시장 정책과 이라크 침공 등에 열심이던 미국의 조지 부시 정부는 구조와 지원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부자들이 자가용 비행기 등을 타고 대피한 뒤에 남겨진 사람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과 유색인종들이었다. 그리고 부시 정부는 이들을 돕는 것에 큰 열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던 일주일 후에 부시 정부와 주정부는 '하루 안에 모두 헬기와 보트로 대피하라'는 최후명령을 내리고 병원의 책임자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먼저 반려동물들부터 안락사시키기 시작한다. 이어서 환자들을 3개 등급으로 분류하고 서로 다른 색깔의 표식을 단다. 1등급은 혼자 이동이 가능한 환자들이었다. 2등급은 대피시키려면 부축이 필요한 환자들이었다. 3등급은 거동이 매우 어렵고 심폐소생술 등을 거부한 환자들이었다. 이 3등급에 해당하는 환자들을 대피시키지 못했고, 나중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드라마는 이것을 단순한 선악 이분법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대피시키려는 선택이 틀린 것일까? 대피하지 못한 환자들이 차오르는 물속에서 고통스럽게 죽게 하는 게 옳았을까? 비극에 책임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단순한 타고난 악당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문제는 그런 악조건과 선택을 강요한 사람들에게 있으니 말이다.
나아가 그 의사와 간호사들이 불기소 판결을 받는 과정에 어떤 사회적 논리와 이해관계가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 증거'가 아니었다. 그런 비극적 선택을 낳게 된 사회시스템과 진정한 책임자들은 처음부터 빠져 있었고, 앞으로도 예기치 못한 재난 상황에서 그런 일은 반복될 수 있기에 그 의사와 간호사들만 처벌할 수는 없었다.
안락사는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주장하는 의사나,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판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검사는 고립된다. 수많은 의사와 의사단체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그 결정은 문제가 없었고 불가피했다고 옹호한다. 결국 유일하게 체포됐던 애나 포(안락사를 주도한 의사)도 처벌을 피할 것이 분명해지자 검사는 이렇게 분노한다.
"증거만으로는 이길 수 없어요. 애나 포를 제외하고 체포되지 않은 것은 기업 사람들이고, 민영 병원 경영자들이고, 정부 사람들이고, 주지사와 시장이에요. 그들이 리더이고 망할 책임자이지만 처벌받지 않죠.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그런 것들이에요."
이 드라마를 보고서, 지금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하려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그것을 돕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한국 정부를 떠올리게 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사회적 대재앙으로 만든 것은 돈벌이가 우선인 민영회사 도쿄전력이었다. 도쿄전력은 대참사가 벌어진 당시에 노심이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숨기다가 나중에 들통났다. '뇌물, 은폐, 위조, 안전불감증, 거짓말' 등이 도쿄전력을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그래서 후쿠시마 원전 1호기 밑에 구멍이 뚫려서 핵연료 잔해와 지하수가 섞이고 있는데 도쿄전력이 숨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돼 왔다. 사고 당시에 쏟아진 핵연료들을 식히느라 사용된 냉각수는 위험한 오염수로 쌓여있고, 오염수 저장탱크 바닥에는 얼마나 고농도의 슬러지(찌꺼기)들이 쌓여있을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것을 여과하고 제거한다는 알프스(ALPS: 오염수 처리장치)에도 문제가 많다. 알프스의 고장 발생 건수가 최소 30건이 넘었고, 2년 전에 알프스 여과 필터의 상당수가 손상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사회적 재난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정부가 이 결정을 지지하고 IAEA가 검증한다고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무분별한 핵실험으로 주변 국가들에 피해를 줘온 장본인이다. 강대국들의 핵실험과 핵발전, 핵무기 독점을 옹호해 온 IAEA가 이 문제에 대한 공정하고 믿을 만한 심판인지도 의문스럽다. IAEA는 특히 미국의 이라크 침공 초기에 명분을 제공하는 구실을 하면서 크게 신뢰를 잃었다. 그 밖에도 핵발전과 핵무기 개발에 앞장서 온 강대국들의 태도는 대체로 소극적이다.
반면, 미국의 핵실험으로 피해입은 태평양 섬들이 포함된 '마셜 제도 공화국'의 트레거 알본 이쇼다 주한 마셜제도 대사는 "현재까지도 마셜 제도는 인구당 암 발병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고, 임산부들이 기형아를 낳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며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고 있다. 태평양 중·서부와 남태평양에 있는 총 18개 국가의 협의체인 태평양도서국포럼(PIF)도 일본 정부의 주장과 IAEA의 '검증'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지적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과 재난에서 시민들을 보호해야 하는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작업을 앞장서 거들고 있다. 방류를 반대하고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를 '괴담'이라고 낙인찍으며 탄압하고 있다. 족벌언론들은 위험을 경고하는 학자를 '괴담 유포자'라고 비난하고, 후쿠시마 인근에서 최근에도 기준치 180배가 넘는 세슘에 오염된 우럭이 발견됐다는 사실들은 외면한다.
이런 현실이 더욱 기막힌 것은 바로 2~3년 전만 해도 족벌언론들과 국민의힘은 당시 집권하고 있던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서 오염수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규탄과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교수와 학자 등 수많은 '전문가'들이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와 한국 정부의 방조가 가능할 수 있도록 '과학적 증거와 논리'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도 서글픈 일이다.
'전문가'들이 교수에서 관련 기구의 연구원으로, 다시 원전 사업자와 수출 대리인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원자력 분야에서 이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지 모른다. 이런 '전문가'들은 흔히 '우리나라나 중국의 핵발전소도 냉각수를 바다에 버리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정상적으로 운전 중인 원전의 냉각수와 사고가 나서 핵연료와 섞인 오염수를 비교하는 것은 물타기이다.
더구나 정상적으로 운전 중인 원전의 경우에도 인근 주민들의 갑상샘암 발병률이 다른 지역의 몇 배가 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들이 존재한다. 또 '조국 흑서'의 공동저자 중 한 명으로 윤석열 '신검부' 정권 탄생에 기여한 강양구 '과학전문' 기자는 후쿠시마 대지진 초기에 이미 "사고 핵발전소로부터 방사성 물질이 대량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며 다가오는 방류도 큰 위협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예기치 않은 화재로 공장건물이 붕괴하면서 일시적으로 오폐수가 강에 쏟아진 적이 있었으니, 앞으로 30년 동안 정식으로 오폐수를 강물에 대량 투기하겠다는 공장주의 계획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상식적이라면 2011년 대참사 때 오염수가 무방비로 쏟아진 것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제기하며,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없는 핵발전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맞을 텐데 말이다.
그러면서 강양구 기자는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이유가 "일본이 싫고, 윤석열 정부가 싫고, 국민의힘이 싫고, 핵발전이 싫고, 민주당이 좋고 등등등"의 "편견" 때문일 것이라고 넘겨짚는다. 하지만, 지금 여론조사에서 80%가 넘는 반대가 보여주는 것은 진영과 정파에 따른 '편견'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에 대한 수많은 이들의 걱정을 보여준다.
일본의 어민과 어업 단체들의 강력한 반대는 민족이나 국경의 문제도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오히려 강양구 기자의 이런 태도야말로 '윤석열 검찰'에 대한 우호적 입장 때문에 핵발전에 대한 평소의 태도와도 어긋난 주장을 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이제 곧 어떤 유독한 핵종들이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는 오염수가 우리 모두의 바다로 흘러 내려올 것이다.
이를 끝까지 반대하고 막아내는 것은 무슨 '반일감정' 때문이거나, 특정한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해서도, 단지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도 아니다. 누구의 것도 아니고 전부 연결돼 있는 바다를 이용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할 일본 사람과 미국 사람과 태평양 지역 사람과 전세계 모든 사람과 바닷속 생명을 위한 우리 모두의 과제와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