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중국과 소통 끊은 윤 정부, 한반도 문제서 '소외'
윤 "북한만 쳐다보고 중국에 무시 당했다"지만
자신은 한반도 정세 급변에도 미국·일본만 쳐다봐
중‧러 "한반도 문제 논의"…'북한 우려' 해소 촉구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인데도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소외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지속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이 대화 모드로 급선회하고 일본이 납북자 문제 등을 고리로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서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급변을 예고하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는 미국, 일본만 쳐다보는 모양새다.
남북 대결 정책으로 일관한 탓에 북한과의 소통 채널이 전면 차단됐고, 이분법적 '가치 외교'를 표방하며 미국 주도의 반중국, 반러시아 전선에서 행동대를 자임하다 보니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도 수교 이후 최악의 국면에 놓여 있어 날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역대 정부 같으면 북한과 만나 압박도 설득도 하면서 한반도 위기를 관리하는 한편, 미국은 물론 전통적 우방으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지닌 중국과 러시아를 '직접'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나누며 간곡히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구체적 성과로 이어졌다.
대북‧대중 소통 단절 윤 정부, 한반도 문제서 '소외'
그러나 지금 윤 정부는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주도적인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해온 일이라곤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한‧미, 한‧미‧일 군사 훈련을 강화하는 대북 압박에만 치중하고 있을 뿐이다.
극단적 대치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에는 관심 자체가 없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중국에 협조를 구하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직접 나서지 못하고 미국에 '메시지' 전달을 부탁하고 미국을 통해 답변을 듣는 종속 변수로 전락했다. 한반도 문제의 '키'를 쥔 미국을 설득해 현실적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생각은 윤 정부의 그림엔 없다고 봐야 한다.
윤 정부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불만'을 엿볼 계기가 있었다. 26일 베이징에서 있었던 중국의 류샤오밍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러시아의 안드레이 루덴코 외무부 차관의 회동이다.
중국과 러시아 외무부는 두 사람의 회동 이튿날인 27일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발표했다. 얼핏 보면 통상적인 회동 같지만, 차제에 양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공동 입장을 마련하겠다고 '작심'하고 추진한 회동이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들이 발견된다.
먼저 루덴코의 방중 시점이다. 용병 그룹의 무장 반란 직후였다는 점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확인하려는 다급한 행보였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당장 절박한 이슈가 아닌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려고 양국이 굳이 별도로 시간을 낸 것이다. 양국 모두 다음 날 차관급 회동 내용을 상세하게 공개한 것도 전례로 보면 흔치 않은 일이다.
중‧러 "한반도 문제 논의"…'북한 우려' 해소 촉구
발표 내용도 사뭇 날이 서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 한반도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은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미국과 한국에 화살을 돌렸다. 북한을 비판하는 내용은 일절 없었다. 일방적인 북한 감싸기로 보일 정도다.
중국 외교부는 류-루덴코 회동 내용을 한반도 문제의 근본 원인, 실현해야 할 목표, 그리고 그 실현 방법 등 세 부분으로 나눠 정리해 발표했다.
첫째, 한반도 긴장과 대립의 근본 원인이자 핵심과 관련해 "정전 70년이 됐지만,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관계 당사국의 우려들, 특히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가 균형 있게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둘째, 실현해야 할 목표로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 비핵화 실현, 평화체제 구축"을 제시한 뒤 이런 목표는 "지역과 국제사회의 공동이익에 부합된다"고 말했다.
셋째는 실현 방법이다. 우선 관련 당사국이 "공동의, 포괄적이고, 협력적이며, 지속가능한 안보"란 관점을 공유할 것을 촉구했다. 그 위에서 '쌍궤병진'(비핵화와 북미평화협정 동시 추진) 접근법과 단계적·동시적 행동 원칙을 따르고, "각 측의 우려를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 균형 있게 해결하며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을 하루빨리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외무부의 발표도 비슷했다. 다만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미국과 동맹들에 의한 불균형한 군사 활동의 전례 없는 증가와 공동 핵 계획 실행으로 인해 지역의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말해 연합 군사훈련을 벌이는 한‧미‧일을 겨냥했다.
윤 "북한만 쳐다보고 중국에 무시당한 우리 외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지난 18~19일 중국을 찾아 시진핑 국가주석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친강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 중국 수뇌부에 대북 영향력 행사를 강하게 요구했는데도, 중국과 러시아는 차관 회동을 통해 보란 듯이 요구를 일축한 셈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블링컨은 지난 20일 공개된 미 CBS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중국 대화상대에게 말한 것은 미사일 테스트를 그만두고 핵 프로그램을 다룰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김정은을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데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중국이 어떤 이유에서든 북한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움직이지 않을 땐 우리 스스로 방어 조치를 하게 될 것이란 점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해 한반도 및 주변 지역에 미 전략자산의 수시 전개, 한‧미‧일 연합훈련 강화 등의 조치를 지속해 나갈 것임을 경고했다.
윤 대통령은 28일 현직 대통령으론 24년 만에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 직접 참석, 축사를 통해 북한에 대해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소환하면서 남북 대결 정책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분명히했다.
또한 전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듯 "북한만 쳐다보고 중국으로부터 무시당한 우리 외교"라고 비난한 뒤 "국제 규범을 존중하는 오대양 육대주 모든 국가와 긴밀히 협력하는 글로벌 중추 외교로 발돋움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에 맹종하고 일본만 쳐다보며 반중 전선에 앞장서면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부른 '자해 외교'란 대체적 평가와는 동떨어진 인식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