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 COP 27, 그래도 탈탄소로 간다

27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손실과 피해’ 기금 창설

석탄 퇴출 등 구체적 탄소삭감 진전 없어

그럼에도 탈탄소 청정 에너지로의 전환 지속

탈탄소 꼴찌 수준의 한국 제품 유럽 추가관세 걱정해야

2022-11-22     한승동 에디터
슈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이 20일 이집트 홍해 휴양도시 샤름엘셰이크 국제컨벤션센터에서 COP27 기후회의 폐막 세션을 주재하고 있다. 2022.11.22.  샤름엘셰이크 AFP연합뉴스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7)가 20일(현지시각) 2주일 남짓의 일정을 끝내고 폐막했다. COP 27 폐막은 원래 18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개도국에 대한 선진국들의 탈탄소 지원 방안인 ‘손실과 피해’ 기금 마련을 놓고 격론이 벌어져 이틀 간 연장한 끝에 기금 창설에 합의하고 폐막했다.

대기 온도 상승 허용치를 1800년대 산업화 이전 수준의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목표치는 이번 총회에서도 재확인했다. 하지만 석탄 퇴출과 구체적인 국가별 탄소(온실가스)배출 삭감 목표치 설정 등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해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 26에서 더 나아간 것이 없다는 비판을 받은 이번 총회가 그나마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기금 창설에 합의한 것이다. 1992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이래 선진국들이 약속한 개도국 탈탄소 지원 방안이 30년만에 비로소 좀 더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추게 됐지만, 이는 그러나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기금을 위한 자금 출연방식이나 규모, 지원 대상 선정 등 내년의 COP 28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될 ‘손실과 피해’ 지원 기금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놓고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번 COP 27 폐막 때 채택된 ‘샤름엘셰이크 실행계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4~6조 달러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유엔은 추산하고 있다.  2030년까지 개도국의 탈탄소 전환에 필요한 자금이 5조 8천억 달러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다.(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

지금 투발루와 몰디브 등의 섬나라들은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가뭄 등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으나, 산업화 이래 온난화 가스를 대량 방출해 온 선진국들이 그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국들에게 보상하는 대규모 탈탄소 지원방안에는 인색했다. 온난화에 대한 책임을 인정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지게 되고 장기간에 걸쳐 천문학적인 돈을 ‘보상(배상)’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 300억달러에 이르는 홍수 피해를 입었다는 파키스탄과 나이지리아 등 아시아아프리카와 도서지방 개도국들의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크게 부각되고 협약 탈퇴를 무릅쓴 그들 의 항의와 요구가 거셌다. 유럽연합(EU)이 더는 이를 외면할 수 없게 되고 미국도 이에 동조함으로써 ‘손실과 피해’ 기금 창설이 막판에 성사됐다. 세계 전체 탄소배출량의 80%를 G20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선진국들은 여전히 ‘손실과 피해’ 기금이 가해자로서의 보상(배상)이 아니라 인도적인 지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원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선진국 그룹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2020년까지 100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10여년 전의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경제대국들간의 이해 상반과 갈등도 장애가 되고 있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경제 대국들은 온난화 가스 배출 책임의 대부분은 유럽과 북미 등 서방 선진국들이 져야 한다며 기금 출연을 거부하거나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조만간 최대의 탄소배출국이 될 중국과 미국등 온난화가스 배출 1, 2위 나라들간의 정치경제적 갈등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다.

화석연료 퇴출을 둘러싸고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방 선진국 등 부국들은 석탄뿐만 아니라 석유 천연가스 등 모든 화석연료의 전면적인 퇴출을 주장하고 있으나 산유국들과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중국 등 개도국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최대 배출국 중 하나인 중국이 배출 제한을 크게 받지 않는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한 비판도 많다. 결국 COP 27은 COP 26에서 합의한 ‘석탄의 단계적 감축’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50%의 확률로 섭씨 1.5도 기온 상승을 피할 수 있는 탄소예산(Carbon Budget. 지구 대기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5도 또는 2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는 범위 안에서 배출 가능한 온실가스 총량)은 2조 8900억톤이다. 이 가운데 약 2조 3900억톤은 2019년까지 이미 탕진해 버렸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남아 있던 탄소예산은 5000억톤. 그 뒤 매년 400억톤씩을 썼다.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탄소예산은 대충 4000억톤도 안 된다.”(<이코노미스트> 2022년 11월 5일)

따라서 기껏해야 10년 정도 남았다. 그래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지금보다 45% 이상 더 줄이고, 2050년까지는 산업화 이전 수준, 즉 순배출 증가분을 0(제로)까지로 줄여야한다.(탄소 중립). 그래야 이번 세기까지 대기 온도 상승을 섭씨 1.5도 내로 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예측되고 확인된 것이다. 섭씨 1.5도 상승 한계치 설정은 그것을 넘어서면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동이 일어나 지구 생태계가 인류가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돌변한다는 티핑 포인트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도 비관했듯이, 지금 상태로는 그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탄소배출량은 유럽연합의 경우 2025년 무렵에 그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나 중국과 인도는 2030년쯤에 가야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각국이 약속한 탄소 삭감 계획을 충실히 지키더라도 2030년까지는 총량 45%가 아니라 1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유엔 환경프로그램은 추산한다.

그럼에도 탈탄소를 향한 인류의 노력이 중단되거나 역전될 가능성은 없다. 너무 느리거나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온난화를 완화하거나 막는 진 지구적 노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것 외에 다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샤름엘셰이크의 COP 27 합의문도 세계의 지정학적인 상황이나 에너지 위기 등이 “기후변동 대책을 후퇴시키는 구실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공정한 이행을 가속해 가자고 촉구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글로벌 차원의 에너지 수급 차질이나 가격 폭등 등으로 에너지 부족국가나 지역들에서 석탄 등 화석연료들 삭감계획을 축소하거나 오히려 늘리는 등의 역행 현상이 일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둔 지적이다. 그럼에도 그런 지역에서도 대규모 역전 현상이 일어나거나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2010년에서 2020년까지 태양광과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보면, 독일의 경우 10%가 못되는 수준에서 35% 가까이로 크게 늘었다. 영국도 5%도 되지 않았으나 거의 30%까지 늘었다. 유럽연합(EU) 27개국 평균은 5% 남짓에서 약 20%로 늘었다. 중국도 10% 가까이로 급증했다. 그런데 한국은 5%에도 못 미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12개 법안 입법 패키지인 ‘피트 포 55’(Fit for 55)를 보면, 유럽연합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기존 목표는 40%)로 높이고, 2050년 탄소중립을 법으로 명시한 기후기본법을 제정했다.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화석연료 경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좋은 일자리와 성장뿐만 아니라 건강한 행성을 남겨주고 싶다. 유럽 그린딜은 탈탄소화한 경제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성장 전략”이라고 밝혔다.(<한겨레> 2021년 12월 28일)

12개 법안은 제조업, 에너지, 운송 부문 등의 온실가스 감축을 다루는데, 이 가운데서 한국 산업계와 연관 있는 부문은 배출권거래제(ETS),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유럽 제품과 유럽이 수입하는 제품 생산지의 탄소배출량을 비교해 그 차이만큼 추가로 관세를 물리는 것이다. 유럽 수준 이상의 탄소를 배출하는 나라가 그 생산품을 유럽에 수출할 때 추가관세로 제품 가격이 올라가 수출하기 어려워진다. 한마디로 기업도 탈탄소로 나아가지 않으면 장차 살아남기 어렵다는 얘기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유럽연합과 저토록 큰 폭의 차이가 나면, 3년간의 전환기를 거쳐 2026년부터 실시되는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장벽을 뚫을 수 있는 한국 기업이 얼마나 될까?

11월 12일 찾아 가 본 삼척 맹방의 ‘명사십리’ 해변은 절반 이상이 그곳에 건설 중인 석탄화력 발전소 삼척블루파워 건설로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삼척화력은 총 발전용량이 2100메가와트(2.1기가와트)로, 건설 공정 80%를 넘겨 2024년에 가동된다. 그 석탄화력 건설에 반대하는 현지 주민들은 발전소가 하루 1만톤의 유연탄을 태우는데, 그 수입 석탄 양륙 부두를 짓느라 맹방 해변이 다 망가졌다고 했다. 그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는 포스코가 유럽의 ‘핏 포 55’를 의식하지 않을 리 없을 텐데, 그 공사를 누구의 의지로 강행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두산도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 유럽연합만이 아니라 트럼프 정부 때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했던 미국도 바이든 당선 뒤 바로 재가입했다. 장차 미국인들 한국 제품들에 탄소배출량 잣대를 들이대며 추가관세를 요구하지 않을 리 없을 텐데, 대규모 화석연료 발전소 건설이 전망이 있는 사업일까. 현지 주민들 사이에는 지금이라도 건설을 중단하는 것이 남아 있는 공정 20%의 비용을 절약하고, 포스코와 두산의 장기전망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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