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겨눈 언론 참상…"정경심이 도피 지시" 또 오보

1·2심 "기사 내용 확인했다고 볼 아무 자료 없어"

청문회 전날 음해성 허위 보도, 심각한 명예훼손

검찰, 도피 4인 중 조범동만 기소…나머지는 덮어

칼춤 따라 추던 세계일보 포함 언론들의 책임은

2023-06-24     박지훈 IT 전문가
 조국 전 장관이 4월 1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쿠무다 콘서트홀에서 열린 '조국의 법고전 산책 저자와의 대화'에서 책 설명을 하고 있다. 2023.4.11. 연합뉴스

2019년 조국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정경심 교수가 조범동 등에 대해 해외 도피 지시를 했다는 허위보도를 냈던 세계일보 측에 대한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서 2심에서도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6월 23일 서울고법 민사8-3부(부장판사 최승원·김태호·김봉원)는 세계일보와 기사를 작성한 배민영, 정필재 기자에 대해 정정보도 및 각 500만원씩 총 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 부장판사 서보민)의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세계일보의 두 기자는 2019년 9월 5일 저녁 “[단독] 펀드 관련자들 해외 도피 조국 아내 지시 따른 것”이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정경심 교수가 코링크PE의 조범동, 이상훈, 익성 부사장 이창권, 신성석유 우국환 등 4인에게 ‘해외로 나가 있으라’는 ‘지시’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계일보 측은 이 같은 기사 내용에 대해 1심, 2심 과정에서 아무런 실질적 근거도 대지 못했고, 이미 마무리된 조범동과 정경심 교수 재판 등 형사재판에서 사실로 인정된 증언들과도 상반됐다.

지난해 8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 부장판사 서보민)는 “출국이 정 전 교수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를 확인했다고 볼 아무런 자료도 없다”며 “기자들이 제보의 경로와 배경을 다각도로 조사하지 않았다”, “기사에 적시된 사실은 허위”라고 판시했다.

아울러 “정 전 교수의 도덕성과 청렴성은 청와대 비서관이자 법무부 장관 후보였던 조 전 장관의 도덕성, 청렴성과 동일시되는 게 사회통념이고 이 사건 기사가 보도돼 조 전 장관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도 침해됐다”고 판단했다.

조 전 장관 측은 2020년 8월에 세계일보와 두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총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같은 해 9월에는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형사 고소했으나, 서울 방배경찰서는 10개월이 지난 2021년 7월에 이들을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한 바 있다.

 

문제의 세계일보 허위 보도. (세계일보)

세계일보의 허위보도 내용은

당초 세계일보가 냈던 허위 보도의 내용은 “세계일보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조씨 등과 친분이 있는 한 소식통”이라는 등 모호한 출처를 인용한 형식이었다. 핵심은 아래의 두 단락이다.

5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정 교수는 사모펀드 운용사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가 ‘주가조작세력’이라는 의혹이 불거지자 해당 운용사 실소유주 조모씨와 바지사장 이모씨, 2차전지 업체 WFM 전 대표 우모씨, 자동차 부품업체 익성 부사장 이모씨한테 ‘해외로 나가 있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조씨 등은 지난달 중순 무렵 가족들을 데리고 필리핀으로 동시에 출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들이 도피성 출국을 했다고 보고 있다.

조씨 등과 친분이 있는 한 소식통은 “조 후보자 측 펀드 투자 의혹이 본격화하기 전에 빠르게 출국했다”면서 “정 교수가 해외로 나가 있으라고 해서 모두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또 “(조씨 등이) 국내에 남아 있으면 검찰에 불려갈 텐데, 이 과정에서 정 교수가 자기 약점도 드러날까 봐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조국 전 장관은 2020년 8월 26일에 세계일보와 두 기자에게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세계일보의 보도가 허위임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관계를 제시했다.

 

조국 전 장관, 세계일보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 (조국 페이스북)

검찰이 확보한 증거에 따르면 조범동은 정 교수에게 "외국에 나가니 며칠 연락이 안 될 것입니다. 외국에서 070 전화기를 개통해서 전화를 할 텐데, 070으로 전화가 오면 받으세요"라는 메시지를 발송했다. 즉 정 교수가 조범동에게 출국을 지시한 것이 아니라 조범동이 출국한다고 정 교수에게 알린 것이 전부였다. 또한 정 교수는 익성 이창권, 신성석유 우국환 등과 전혀 연락한 바가 없었다.

또 코링크PE 명의상 대표 이상훈은 법정 증인석에서 자신의 출국 당시 정 교수와 통화를 했다면서도 정 교수에게는 휴가를 간다고 했을 뿐 해외로 나가는 사실은 알리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세계일보 허위 보도의 심각성

만약 세계일보의 보도 내용이 사실이었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도피 지시 자체에 그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보도에서 정 교수가 도피를 지시했다는 익성의 이창권과 신성석유 우국환은 코링크PE와 WFM를 둘러싼 불법 작전들의 실질적인 주역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정 교수가 ‘도피 지시’까지 할 수 있는 지위였다면, 정경심 교수의 ‘코링크PE 실소유설’의 상당한 정황이 될 수도 있었다. 도무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닌 매우 심각한 오보였던 것이다.

특히 이 보도가 나온 시점은 조국 당시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일정이 당초 9월 2~3일로 확정되었다가 증인 채택 문제로 한 차례 무산되고, 2일에 청문회를 대신하는 기자간담회까지 거친 후, 9월 5일 오후에 다음날인 6일에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재합의한 직후에 나왔다. 청문회에서의 조국 견제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정작 수사를 마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는 이 같은 ‘도피 지시설’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조범동 공소장은 물론이고 정 교수의 공소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범동의 공소장에서는 “예정되어 있던 출국 일자를 이틀 앞당겨 출국”했다고 하고 이를 “도피”라고 지칭했을 뿐, 누가 지시나 종용을 했다는 주장은 전혀 없었다. 또 정 교수의 공소장에는 조범동 등의 도피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요컨대 조국 부부는 물론이고 그 주변을 샅샅이 훑은 검찰도 기소 단계에서는 ‘도피 지시’라거나 그와 비슷한 말은 전혀 꺼내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 봐도 세계일보 기사가 얼마나 허황된 내용이었는지 알 수 있다.

허위 보도의 출처는 어디였을까

문제의 세계일보 기사에서는 앞 단락에서는 ‘정 교수가 지시했다’라고 기자가 확언한 반면, “소식통”을 인용한 뒷 단락에선 “정 교수가 해외로 나가 있으라고 해서 모두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불분명한 ‘전언의 전언’을 기재했다.

뒷 단락의 ‘전언의 전언’이 ‘도피 지시’ 주장 출처의 전부라면 앞 단락과 같은 확언은 교묘한 독자 기만이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 재판 과정에서 이 기자들의 출처가 “조 씨의 동업자로서 신빙성 있는 이”라는 해명이 나왔다. “취재 결과를 종합”했다는 앞 단락의 확언과 달리, 실제 기사의 출처는 익명의 조범동 지인 1인의 ‘전언의 전언’이 전부였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기막히게도 이 ‘전언의 전언’의 내용도 조범동에게서 직접 들었다는 것조차 아니다. ‘~으로 알고 있다’는 발언은 곧 이 ‘소식통’이란 사람 역시 어떻게 알았다는 것인지 그 출처를 밝히려 하지 않은 것인데, 이런 몇 겹의 책임 회피 정황을 볼 때 그 ‘소식통’ 자신도 여러 단계의 전언을 거치며 크게 왜곡되었을 얘기를 들은 것이거나, 혹은 애초에 ‘소식통’ 스스로 꾸며낸 거짓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출처와 관련해 의심을 더 증폭시키는 것은, 이 기사를 쓴 세계일보 배민영, 정필재 기자가 조범동 주변의 코링크PE 관련자를 접촉해봤을 만한 경제부나 일반 사회부 기자가 아닌 법조팀 기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두 기자는 이 단독 보도 외에 다른 기사들에서도 검찰을 가리켜 ‘법조계에 따르면’,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등의 출처 불명의 엉터리 인용을 남발했었다.)

이와 관련된 유력한 힌트는 이 허위 보도의 앞 부분에 있다. “(도피 지시의) 단서가 포착될 경우 증거인멸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신병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라는 것이다. 검찰에 출입하며 검찰로부터 흘러나오는 정보들을 받아쓰는 법조기자들이 검찰 쪽의 최소한의 언급도 없이 이렇게 과감하게 검찰의 다음 행보를 짚기는 힘들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해당 ‘도피 지시설’의 실제 주인공이 검찰 관계자가 아닌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슬쩍 ‘조범동 지인 중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더라’라며 흘려주는 식으로 말이다.

조범동 등 도피 4인 중 조범동만 기소

한편 이들 세계일보 기자들이 정경심 교수의 지시를 받아 도피했다는 인물로는 소위 ‘5촌 조카’ 조범동만이 아니었다. 익성의 이창권 부사장, 코링크PE 명의상 대표 이상훈, 신성석유 회장 우국환 등이 더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2019년 8월에 도피했던 이 4인 중 조범동만을 구속기소했고, 나머지 3인은 구속은커녕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조범동의 재판에서는, 판결에서 검찰이 공범으로 엮으려 애썼던 정경심 교수가 아니라 익성의 이봉직 회장과 이창권 부사장이 정면으로 “공범”으로 조목조목 적시되었고, 우국환 역시 이들 익성 일당과 공범으로 봐야 할 여러 중요 정황들이 제시됐다.

이 핵심 3인 중 매출 수백억 대의 회사 오너로서 단시간 내 도피가 쉽지 않았을 익성 회장 이봉직을 제외한 2명이 도피했다 돌아온 것이다.

당초 검찰은 익성의 이봉직과 이창권을 피의자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었으나, 코링크PE 관련 의혹의 실질적인 범죄 혐의가 이들 익성 일당으로 모여지면서 정 교수의 혐의가 벗어나게 되자, 검찰은 돌연 익성 관련 수사를 접으면서 WFM 등 다른 방향으로 수사를 틀었다.

 

2019년 9월 20일 익성 관련 동시 압수수색 (MBC 뉴스)

검찰은 한참이나 뒤늦게 2021년 8월에 다시 익성 일당을 ‘재조사’ 한다고 나섰으나, 이후 조국 수사팀에 대한 감찰이 서울고검에서 무혐의 처분되자, ‘익성 재조사’ 역시도 소리 소문 없이 덮여졌다. 또 그나마 강제 수사라도 받았던 익성 일당과 달리 우국환은 아예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르지조차 않았다.

또한 검찰은 이들 ‘도피 4인방’ 중 코링크PE 이상훈 대표에 대해선 웰스씨앤티의 최태식 대표와 함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는데,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되자 아무런 후속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후 수사를 보강해서 영장을 재청구하지도, 불구속 기소를 한 것도 아니었다. 검찰은 후속조치를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다.

이처럼 ‘도피 4인방’ 중에 조범동 한 사람만 기소하고 덮어버린 데 대해, 2019년 당시 ‘도피’라며 대서특필 했던 법조기자들 중 누구도 다시 이들을 문제 삼지도 주목 하지도 않았다. 마치 ‘5촌 조카’ 조범동 1인을 잡아넣었으니 다 끝났다는 식이었다.

검찰과 언론들이 함께 도피했던 나머지 3인을 그냥 덮어버린 이유는 자명하다. 검찰은 2019년 8월 27일 일제 압수수색 당시부터 소위 ‘조국 펀드’라고 불렀던 사모펀드 의혹을 최우선 정조준 했었다. 사모펀드 의혹을 파면 반드시 결과가 나온다는 확신에 찬 수사 행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수사 결과 밝혀진 사모펀드 범죄의 실제 혐의자들은 익성 일당과 우국환 등이었고, 정경심 교수는 그런 코링크PE 등의 주요 범죄 사실들과 무관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조범동 1, 2심 판결문에 조목조목 기재되어 있다.) 당시 윤석열 검찰로서는, 조국을 겨냥해 벌인 대규모 수사에서 ‘엉뚱하게도’ 익성 일당이 진범으로 기소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세계일보 비롯한 언론들의 책임은?

이런 이유로, 애초에 정치적 목적으로 수사를 벌였던 검찰은 그 목적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반면 언론들은 어떠했는가.

같이 도피했다던 공범들이 조범동 판결에서 공범으로 적시됐어도 침묵, 검찰이 이들 중 코링크PE 이상훈 대표에게 영장을 청구한 후 기각 당하고도 불구속 기소조차 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침묵, 검찰이 익성 일당을 재조사 한다고 발표하고는 2년 가까이 감감무소식인 데 대해서도 또 침묵하고 있다.

이들 언론은 조국 수사 과정에서 도대체 누구의 편이었는가. 이들은 일순간이나마 과연 정의나 법 질서를 추구하기는 했는가. 윤석열 검찰의 입맛과 이익에 맞는 보도만 내놓다가 검찰이 자세를 바꾼 후로는 갈 길을 잃어버린 언론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후로 이들은 과연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한번 잘못 끼운 단추는 처음부터 전부 다 풀어 바로잡지 않는 이상엔 끝까지 맞지 않는다. 억지로 단추 하나를 두 구멍에 밀어 넣으려 하는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과오로 얼룩진 과거를 바로잡지 않으면 이 나라 언론의 미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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