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이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발의…하향 평준화’ 의심

‘정규직 힘 빼기’ 윤 정부 노동정책 연장선?

동일가치노동 기준은 사용자가 정해

근로자대표는 의견 제시만

초기업적 산업별 직무 임금 책정 필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포괄해야

2023-06-23     박승철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오른쪽)이 3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확대회의에 참석하며 이정식 노동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2023.5.31. 연합뉴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동일가치노동 동일 임금’ 법안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그동안 노동계의 숙원 사업이었지만 보수 세력의 반대로 인해 입법화되지 못했던 ‘동일가치노동 동일 임금’을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이 먼저 발의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2018년 개헌을 추진하면서 개헌안에 “국가에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수준의 임금이 지급되도록 노력할 의무”를 명시하면서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논의가 촉발됐다. 그런데 여당인 국민의힘이 먼저 이를 제기하면서 관련 논의가 촉발됐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에서는 “허를 찔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안 발의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이 지금껏 동일 노동 동일 임금 구호를 외쳐온 만큼, 여당 법안이라고 정파적으로 보지 말고 21대 국회 내 통과시킬 수 있도록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노동력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라고 본다면 동일 가치의 노동을 수행하고도 임금이 다른 경우 부당한 처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공장에 들어가는 석유는 국제 거래 시장 가격으로 사업장과 관계없이 동일한 조건에서 들여오지만, 노동자의 노동력은 각종 고용계약의 차이, 원/하청 여부에 따라 동일한 가치 제공에도 다른 가격이 매겨졌다.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이 지속적으로 주장돼 온 이유였다.

문제는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정규직 노동자의 권한을 줄이려는 방향으로 노동정책을 추진해 왔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김 의원의 발의에 대해 비정규직의 임금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는 ‘하향 평준화 전략’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은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실현할 수 있지만 반대로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낮추는 방법도 가능하다. 김형동 의원의 제안이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다는 의구심이 나오는 것이다.

특히 앞서 2018년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명문화한 ‘일하는 방식 개혁법’을 공포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전철을 밟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대두됐다. 정경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에서도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이 정규직 처우 악화를 통해 비정규직과 차별을 해소하려는 기업들이 나타나 하향 평준화 문제가 제기됐다”고 말했다.

지난 5월 31일 김형동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살펴보면 제안 취지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정책과 맥을 같이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 2023.4.11. 연합뉴스

김형동 "윤 대통령이 노동가치 존중 필요성 강조"

김 의원은 “최근 대법원에서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 분야에서 근로자를 차별하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고, 연공형 임금체계(호봉제)에서 직무 형태별, 성과 중심의 세대 상생형 임금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가치 존중은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위한 원동력’이라며 노동 가치 존중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현 정부의 주요 정책과제로 노동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라면서 “또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하청의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원론적으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의 정규직 처우 개악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평가된다.

유정엽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 사회적 직무 가치 평가와 보상기준 마련, 차별에 대한 구제 절차 등 제도의 실효성 확보 수단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선언적 수준의 법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김형동 의원 발의안 6조2의 2항은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은 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 등으로 하고 사용자가 그 기준을 정함에 있어 근로자대표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을 사용자가 정하는 것이고 근로자대표는 의견 표명 정도의 역할로 한정된 것이다. 따라서 김 의원 발의안에 대한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하향 평준화’ 가능성의 길을 열어 준다. 그 기준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으므로 사용자 마음대로 정규직 처우 악화를 통한 동일 임금을 실현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김 의원 발의안에서 ‘고용 형태’를 차별금지의 한 요소로 추가한 것은 일정 부분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의원은 6조에서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고용 형태를 추가해 ‘국적·신앙·고용 형태 또는 사회적 신분’으로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무기계약직, 공무직 처우 개선 근거될수도

고용 형태를 추가함에 따라 민간기업에서 무기계약직, 공공부문에서 공무직에 대한 차별을 없앨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에 더해 고용 형태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문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기간을 정한 노동자(기간제, 파견)와 단시간 노동자 등을 구체적으로 명기해 차별금지와 균등 처우를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임금뿐 아니라 휴가 등 복리 후생에서도 차별받지 않을 근거가 될 수 있다.

김형동 의원 발의안의 또 다른 문제점은 ‘원하청 노동자 임금 격차’,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에 대한 해법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고용주가 왜 동일 노동에 대해 차등 임금을 지급하려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같은 고민 부족이 실질적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 원칙 구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 2010년 11월 17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울산 3공장을 점거한 채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변에 관리직 직원들이 생산라인을 지키고 있다. 2023.6.15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용주는 일단 지급해야 할 임금 총액이 결정되고 나면 최대한 노동 산출량을 늘리려는 유인을 가진다. 일단 임금 자체를 낮추는 방도를 찾겠지만 일단 임금이 근로계약을 통해 고정되면 지급된 금액 대비 노동자로부터 최대한 많은 노동력을 뽑아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더해 개별 노동자 단위뿐 아니라 사업장의 노동력 투입 구조를 정규직/ 비정규직, 원청/ 하청, 도급/ 하도급, 파견 노동 등으로 이중 구조화하면 동일한 임금 총액을 지급하고도 더 많은 노동력 투입을 끌어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동일 노동 가치에 대해 동일 임금 지급”과 같은 원칙은 법 규정 위반을 통해 페널티로 고용주에게 실질적 타격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고려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개별 사업장 단위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미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8조 1항에는 “사업주는 동일한 사업 내의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27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 기업에서 근무 개시 시점부터 근로자 상호 간 다른 업무를 수행할 것을 업무 기술서 등을 명시해 놓으면 실제로는 같은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동일노동’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고용주, 노동자 임금을 시장에서 주어진 것으로 여겨야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개별 기업을 넘어서는 산업별 동일임금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주가 노동자의 임금을 이미 시장에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실제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단체협약에 의한 집단적 임금 결정이 초기업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어서 동일임금 원칙은 초기업적 단위에서 적용될 수 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는 “노동 영역에서의 불평등은 주로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에 기인한다”면서 “업종별 등 단체협약의 확장제도 도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산업별 동일임금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직무가치 평가도 필요하다. 업종별로 특정 직군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책정하고 이를 초기업적 산업별 노사협상을 통해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8년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각 시도 교육청, 교육부와 함께 실시한 직무가치 평가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평가를 통해 정규직인 교사·공무원보다 교육공무직의 임금이 낮아 인상될 필요가 있다는 합의가 도출됐다.

임금의 투명한 공시도 필요하다. 노동자가 옆에 있는 동료 노동자와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면서 동일한 임금을 받고 있는지 평가하려면 각 노동자의 임금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국회에서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경영계의 완강한 저항으로 도입되지 않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근로기준법 바깥에 있는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일이다.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원/하청 구조에서 하청 노동자나 파견 노동자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소속돼 있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적용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이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용 형태만이 아니라 원하청 관계 내에서 그리고 특수고용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판매하는 노동력 가격의 인상 기회를 향유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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