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친미도 친중국도 아닌 ‘제3의 길’ 선택하나

총통 선거 7개월 앞두고 군소정당 후보 ‘돌풍’

민중당 커원저 전 타이베이 시장 여론조사 1위

‘대만해협 위기론’과 ‘전쟁필연론’ 모두 거부해

20·30대 젊은 층과 고학력층서 압도적 지지

“미‧중의 볼모 안 돼…오히려 가교 역할해야”

대만 미래 스스로 결정하자는 중도‧실리 노선

2023-06-23     최강문 대만 통신원
최강문 대만 통신원(작가, 전 월간 말지 기자)

대만에는 세 가지 색이 있다.

청색, 녹색, 그리고 흰색. 대만 정가의 대표적 정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 민주진보당(민진당)이 각각 청색과 녹색을 상징 색으로 사용한다. 흰색은 국민당과 민진당 양당의 틈새에서 제3정당 역할을 하는 민중당을 뜻한다. 2023년에 접어들면서 이 세 가지 색을 더욱 자주 접하게 되는데, 불과 7개월 뒤인 내년 1월에 치러지는 대만 총통 및 입법의원 선거 때문이다. 특히 총통 선거는 작금의 대만해협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와 맞물리는 분수령 역할을 하기에 더욱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집권여당 민진당 후보 라이칭더(賴清德, 대만 부총통) 후보, 국민당 후보 허우유이(侯友宜, 현 신베이 시장) 그리고 민중당 후보 커원저(柯文哲, 전 타이베이 시장, 현 민중당 총재) 등 3인이 총통 후보로 열심히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주말 하나의 이변이 발생했다. 2019년 창당해서 전체 의석 113석인 입법의회에서 고작 5석을 차지하고 있는 군소 정당 민중당 후보가 2024년 총통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거대 양당 후보를 모두 젖힌 채 선두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돈도 없고 조직도 없는’ 민중당 후보의 여론조사 1위 등극은 대만 정가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만 민영뉴스전문방송인 TVBS가 지난 6월 14일부터 사흘간 1080명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집전화 및 휴대전화 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7개월 뒤 치러질 2024 대만총통선거에서 민중당 후보 커원저 지지율이 33%로,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30%),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23%)를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타 및 미결정 14%, 95% 신뢰수준 및 표본오차 ±3%)

 

커원저 후보는 동일 매체에서 동일하게 진행한 지난 5월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율 23%보다 무려 10%포인트나 약진했고,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3%포인트 상승한 반면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는 7%포인트 하락한 결과를 보였다. 기타 및 미결정 비율은 지난 5월 20%에서 14%로 6%포인트 줄어들었다.

젊은 층과 고학력층에서 나타난 변화

군소 정당 후보의 약진을 드러낸 이번 TVBS 여론조사에서 주목할 점이 세 가지 있다.

첫째, 커원저 후보의 지지율은 20대와 30대 유권자 층에서 획기적으로 상승했다는 점이다. 20대와 30대 지지율은 각각 58%와 55%로, 이는 지난 5월의 조사 결과보다 15%(20대)에서 19%(30대)까지 높아진 수치다. 라이칭더 후보는 연령대별 교차분석에서 유의미한 수치를 나타내지 않았으며, 허우유이 후보는 이들 연령층에서 대폭 하락한 결과를 나타냈다.

 

이러한 양상은 비슷한 시기 치러진 ‘중국라디오방송공사(中國廣播公司)·갤럽 2024년 정부총통선거여론조사’(2023년 6월 16일~20일, 표본 1,083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각 후보 별 지지율은 TVBS 조사 결과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커원저 후보가 20대(46.76%)와 30대(33.36%) 연령층에서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음이 다시 확인되었다.

둘째로는 교육 정도에 따른 지지율의 변화다. 커원저는 대졸 이상의 학력층 지지율이 대폭 상승해서 50%에 육박했다. 지난 5월 이들 계층에서 30%대 지지율에 머물렀던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변화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커원저의 지지율 상승의 배경에는 기타 정당 지지자 중 상당수가 커원저 지지로 돌아섰다는 사실이다. 입법의원 3석을 보유한 또 하나의 군소정당인 시대역량 지지층의 커원저 지지율 상승은 물론이고, 최대 야당인 국민당 지지층에서도 유의미한 수치를 보였다. 국민당 지지층에서 국민당 허우유이는 전월 대비 7%가 줄어든 73%를, 반면 민중당 커원저는 8%가 늘어난 19%의 지지율을 보였는데, 앞서 언급한 중국라디오방송공사·갤럽 조사에서도 같은 수치인 19.16%의 국민당 지지자들이 커원저를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30대 젊은 층과 대졸 이상 고학력자의 절반 가까이, 그리고 심지어는 일부 국민당 지지자들까지 커원저를 선택하는 이유에 대해 TVBS 관계자는 “커원저의 정책노선을 들여다보라”고 조언했다. 특히 최근 뜨겁게 달아올랐던 양안 문제를 중심으로 한 커원저의 정책노선이 이들 지지를 끌어왔다는 의미였다.

친미냐, 아니면 친중국이냐?

2022년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촉발된 양안관계의 위기는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간의 군사적 긴장으로까지 치달았다.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은 또 중국대로 전쟁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천명했다. 해협이 봉쇄되고, 군사훈련을 핑계로 항공모함과 군함, 전투기가 숱하게 급파되었다. 대만 현지의 언론매체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를 연일 보도했고, 대만인들의 불안감 또한 극에 달했다. 2024년 총통 선거를 앞둔 대만에서 팽배해진 불안과 긴장은 친미 아니면 친중국이라는 양자택일을 사실상 강요하는 지경까지 초래했다.

집권 민진당 후보인 라이칭더는 ‘평화로 대만을 지킨다(和平保台)’ 노선을 천명했다. 내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 기존의 ‘중국에 맞서 대만을 지킨다(抗中保台)’라는 노선에서 명칭만 달라졌을 뿐 실질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세간의 분석이다. 당선 이후 강경한 대만 독립 입장을,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친미 노선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는 민진당 라이칭더의 노선에 대해 ‘전쟁필연’ 노선이라고 비판하며 “대만이 (외세에) 조종당해서 더 많은 대결을 조장하고 전쟁의 공포 속에 눈물의 나날을 보내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92합의’-1992년 중국과 대만이 반관반민 성격의 비외교적 채널을 통해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 합의하였으나, 불명확한 규정과 함께 양국 간의 공식적인 합의가 아니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를 계승하는 그는 ‘중화민국이야말로 하나의 중국이며, 독립주권국가이므로, 일국양제나 대만 독립 주장은 반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허우유이 후보의 이러한 입장은 최근 지속된 양안관계의 위기 속에서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힌다. (아래의 메이리다오 총통선거후보 여론조사표 참조)

 

그 사이에 커원저가 있다.

‘중국에 맞서 대만을 지킨다’는 민진당의 노선을 ‘또 하나의 의화단’이라 폄하하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워렌 버핏이 TSMC 주식을 팔고 투자를 철회하는 조짐이 없는 한, 미국 고위층 인사들조차도 대만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비지니스 세계만큼 민감한 것은 없다. 사업가들이 투자를 철회한다면 위험하다는 신호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만에는 전쟁은 없을 것이고 단지 위기 촉발 가능성만 여전히 있을 뿐이다.” (2023년 5월 28일, 아태청년연맹·국립대만대학교 정치학과 공동주최 좌담회 발언)

친미도 친중국도 아닌 제3의 선택

미국과 집권 민진당이 불을 지피고 있는 대만해협 위기론, 국민당이 주장하는 ‘전쟁필연론’ 모두 동의하지 않는 그는 오히려 ‘중국과의 교류 확대를 통한 평화 조성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지니스적 입장에서 실용적으로 양안관계를 개선해나가자는 입장이다.

일찌기 “양안문제는 외교관계나 국제관계의 문제가 아니며, 지정학적 독자성이 있는 관계”(2019년 한 언론매체와의 간담회 발언)라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는 커원저는 “당연히 대만은 미국 편에 서겠지만, 그렇다고 중국에 맞서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중국과 미국의 가교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일종의 중도 실리노선인 셈이다.

젊은 층과 고학력층의 커원저 지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숱한 전쟁 위기와 그에 따른 대만 미래의 불확실성 그리고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해야만 하는 외세의존적 노선에 대한 염증이 자주적이고 실용적인 커원저 노선을 지지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대만 총통 선거는 앞으로도 아직 7개월가량 남았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강국의 대결 틈바구니에 낀 대만의 미래를 대만 스스로 결정하자는 커원저의 제3의 길이 성공을 거둘지는 더욱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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