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안보전략서엔 '전략' 이 없다
가치와 체제가 다르다고 중국을 제2위협 꼽아
편협한 진영외교를 글로벌 중추국가로 포장
안보전략서 집착 말고 균형 잡힌 외교 전개해야
지난 6월 7일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 청사진을 읽을 수 있는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자유, 평화, 번영의 글로벌 중추국가'(이하 안보전략서)가 발표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안보전략서가 지향하는 목표는 자유세계와의 연대, 원칙과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수호이다. 당초 3월 초 발간 예정이었으나, 윤 대통령의 한·일 및 한·미 정상회담의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 3개월가량 늦게 나온 것이다.
한국 정부가 종합적 안보정책 구상을 처음 발표한 것은 2004년 3월 노무현 정부 때이다.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과 국가안보'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공동번영을 강조하였고, 이명박 정부의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의 비전과 전략: 성숙한 세계국가'(2009)는 상생·공영의 남북관계와 실리 외교 지향을 내걸었으며, 박근혜 정부의 '희망의 새 시대 국가안보전략'(2014)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통일시대 준비를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의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전략'(2018)은 한반도 평화·번영을 목표로 삼았다.
국익 따라 서로 다른 한·미·일의 위협인식
작년 10월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 안보전략서의 발간에 이어, 12월 기시다 내각의 일본 안보전략서, 그리고 가장 늦은 금년 6월에 윤석열 정부의 전략서가 발표되었다. 윤 정부의 안보전략서를 미국과 일본의 안보전략서와 비교해 볼 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이나 일본은 물론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자유, 평화, 번영의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국가상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성숙한 세계국가'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를 닮았다.
한·미·일 3국의 안보전략서에 나타난 위협요인의 순서는 각국의 국익에 따라 서로 다르다. 미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능력을 갖춘 유일한 국가"로 평가한 중국을 제1순위로 놓고, 우크라이나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긴급한 위협'으로 제2순위, 그리고 제3, 4순위에 이란과 북한을 거론하면서 북한을 이란과 함께 불안정을 야기하는 소규모 독재국가로 규정하며 "불법적인 핵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고 간단히 언급했다.
일본의 안보전략서 역시 중국을 위협의 제1순위로 놓고 '일방적인 현상변경 시도 강화, 지금까지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 도전' 국가로 규정했고, '종전보다 한층 중대하고 긴박한 위협'으로 부르며 북한을 제2순위에 놓았다. 2013년에 발표됐던 첫 안보전략보고서에서는 북한이 제1순위, 중국이 제2순위였지만 이번에는 바뀌었다. 2013년 보고서에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 국가로 규정했던 러시아는 '중국과의 전략적 연계와 맞물려 방위상의 강한 우려'라면서 새롭게 제3순위 위협요인으로 올랐다.
윤석열 정부의 안보전략서는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고도화하며 위협하는 북한을 제1순위, 군사력을 계속 증강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제2순위, 그밖에 경제안보, 신흥안보를 제3, 4순위에 올려놓았다. 북한의 위협을 한·미·일 안보협력의 필요성과 한·일 과거사 문제를 봉합하는 근거로 삼았다. 중국에 대해서는 미국 측의 시각에 따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간 대결'로 대변되는 가치와 체제 대결의 관점에서 견제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중국은 구단선 내해의 영해화와 도련 전략을 통한 제해권 확보 등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시도하고 있고 이로 인해 우리의 해상교통로 안전에 위협을 주고 있다. 또한 중국의 무력에 의한 대만 통일 언급으로 동북아정세가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가치와 체제가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중국을 제2위협으로 놓은 것에 대해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중국은 직접적으로 우리 주권이나 국토에 야욕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외교청서, 방위백서에 이어 국가안보전략서에서도 한국의 고유영토인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우리 국토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북한에 대한 우리의 영토고권(領土高權)을 인정하지 않는 등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반하는 주장을 펴고 있다, 2027년에 종료되는 제주 남방의 제7광구에 대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공동개발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일본은 우리 주권과 국토, 국익에 잠재적 도전요인이 되고 있지만, 윤 정부는 이를 도외시하고 있다.
편협한 진영외교를 글로벌 중추국가로 포장
윤 정부의 안보전략서는 '자유와 연대의 협력외교'를 내세우며 한·미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강화하고 새로운 수준으로 한·미·일 협력을 제고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안보전략서에는 '한미동맹의 지리적 외연을 글로벌 범주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것이 고작 한국이 미국 국익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겠다는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윤 정부가 내세운 한·미·일 협력의 근거는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의 공유이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일 공조에 의존하는 대북 압박만으론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한 세계 유수의 자원보유국이자 제2의 시장인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는 이룰 수 없다.
이번 안보전략서는 국가안보 목표의 하나로 "동아시아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고 글로벌 역할을 확대한다"를 제시해 글로벌 중추국가 구상을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동아시아 번영의 기틀'과 '글로벌 역할 확대'를 위해 자유·민주·인권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고 규범에 입각한 공정한 국제협력을 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아시아에는 한국과 체제와 가치가 다른 중국·북한·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국가들이 있다. 북한은 그렇다고 쳐도 주요 무역파트너인 중국·베트남을 빼고 어떻게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 정작 윤 대통령은 양국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베트남을 국빈 방문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역할은 '가치를 공유하는 선진국들이 식량 및 보건 취약국인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역량증진에 기여하겠다'는 것으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진영외교의 일환일 뿐이다. 이처럼 국익을 외면한 가치외교를 전면에 내걺으로써 글로벌 역할은 축소되고 동아시아 번영의 기틀이 흔들리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국가와의 연대는 한미동맹으로 족하다. 다른 나라들의 관계에서는 국익에 기초한 실사구시 외교가 필요하다. 각국의 이해에 따라 합종연횡하는 국익 중심의 국제 외교무대에서 가치를 내세워 모든 나라와의 관계에서 섣불리 편 가르기, 줄 세우기를 하면 안 된다. 진영외교는 미·러 대립 격화와 미·중 전략경쟁과 맞물리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구도를 심화시켜 한반도 평화에 불리한 국제환경을 만들어낼 뿐이다.
윤 대통령은 보편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체제와 가치가 다른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 관계를 격상하는 '원칙 없는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안보전략서 구애받지 말고 균형 잡힌 외교를 전개해야
이번에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안보전략서에는 한반도 평화통일로 가기 위한 좌표가 빠져 있다. 안보전략서에는 '자유민주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국내외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밝히면서도, 당사자인 북한과의 대화와 공감대를 위한 방안 제시도 없이 "한반도통일에 대한 주요국들의 지지와 협조를 이끌어내고 국제사회와 공감대를 형성"하겠다고 밝히면서, "자유·민주·인권에 기반을 둔 통일비전"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는 안보전략서에서 밝힌 좁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제외한 사회민주주의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자유민주주의(free democracy)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안보전략서는 헌법의 내용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말하면서도 평화통일로 가는 징검다리이자 평화가 지속되도록 제도화하는 평화체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전쟁의 국제법적 해결을 통해 정전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도 평화체제에 대한 제시도 없이 오로지 힘에 의한 평화만 강조하면서, 정치적 화해, 군사적 신뢰, 경제적 교역, 사회문화적 교류 등 다방면에 걸친 평화공존의 방안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고 회색지대 갈등이나 독도 영유권 수호를 위해서도 자주적인 국방력이 필요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외부의 무력공격'이나 '현재 영토'에만 적용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러시아 전투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 또는 미국이 '리앙쿠르 암초'라 부르며 한국영토로 공식 인정하지 않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침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주적인 국방력은 첨단전력과 함께 군사력의 운용능력이 중요하다. 이번 안보전략서에는 '과학기술 강군 육성'을 다루기는 했으나 군사력의 운용능력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다. 우리 군이 작전통제권 행사를 통해 군사력 운용능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한·미가 합의한 3단계 가운데 제1, 제2단계의 검증평가가 끝나 마지막인 제3단계 완전임무수행능력(FMC) 검증평가만 남았다. 그런데도 이번 전략서에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한국은 1996~97년과 2013~14년에 이어 2024~25년 세 번째로 2년 임기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되었다. 비록 과거보다 기능이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유엔안보리는 집단안보체제로서 체제와 가치를 뛰어넘는 세계 평화의 보루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세계와의 연대' '굳건한 안보를 통한 평화'를 내건 윤석열 정부의 안보전략서는 유엔안보리 이사국의 역할과 부합되지 않는 점이 많다. 정부는 이미 발간된 안보전략서에 구애받지 말고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이끌어나가는 균형 잡힌 외교를 전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