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당원들, 정당 대중정치운동에 시동 걸다
"정당의 주인은 국회의원이 아닌 평당원"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각 정당의 평당원들에게는 지금껏 정당의 위계질서 및 관료주의와 대의제의 한계에 묶여 실질적으로 당내 주요 정책에 관한 의사결정이 배제돼 있었다. 때때로 민심이라는 여론을 당의 주요정책으로 수용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대부분 당원들은 실질적으로 당내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며 정당 운영상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알리바이 수단으로 전락해 왔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떤 정당이든 당대표가 결정한 정책에 당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순종적이며 수동적으로 잘 따라주기만을 바라는 것이 대한민국 정당정치의 역사였고 문화였다. 원인을 찾기 위해 그 뿌리를 파다 보면 우리나라 정당이 오랫동안 당대표 일인 체계로 수직적 구조 하에서 운영됐던 보스정치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다수결을 원칙으로 한 민주주의 시스템 국가에서 권력형성기관으로서의 정당은 집권이 최종 목표이지만 평당원의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결집하기 시작한 평당원들
최근 정당정치 역사에서 새로운 사회현상이 꿈틀거리고 있다. 2023년 들어 민주당의 평당원들이 자신들이 당의 주인이라며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평당원들의 힘으로 민주당을 혁신하겠다며 결집하면서 조직을 시작했다. 이와 같은 사회현상은 민주당의 개혁과제와 맞물리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우리는 이 당원들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고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평당원들의 결집력의 정도가 내년 총선과 맞물리면서 후보 경선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주당의 평당원들이 결집하며 행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우선 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에 실패한 이후에 2030청년들이 민주당에 대거 입당하면서 당원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자칭 ‘개혁의 딸’이라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명확히 한 청년당원들의 결집력은 대선이 끝난 직후에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22년 대선과 지선에서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해 왔던 중장년층 평당원들이 민주당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개딸들의 목소리와 중장년층 평당원들의 문제의식이 결합하면서 그동안 민주당에 잠재해 있던 개혁에 대한 열망이 행동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평당원들의 문제의식
개혁적 성향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개딸이라 칭하는 2030청년 당원들이 국회의원들과 미디어를 통해 공격을 당하면서도 조직과 역량의 한계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모멸감이 문제의식을 키워왔다. 이들은 지금까지 정치 훌리건, 팬덤정치를 그만두라며 혐오감을 조장하는 국회의원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오면서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대중조직에 결합하는 이유는 정당정치 영역에서 일여년 동안 난생 처음 당원으로 참여하면서 겪어왔던 시행착오 및 미숙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들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성격을 가진 것이기도 하다. 특히 개딸로 프레임을 구성해 보수진영의 태극기 부대와 동일시하며 민주당 영역에서 개딸의 활동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항하려는 목적도 함께 가지고 있다.
민주당 평당원들이 당을 개혁해야 한다며 직접 정치의 주체로 나서게 된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크게 대선패배 이후 윤석열 검찰 정권이 1년을 경과하면서 민주주의가 무력화되고 우리의 삶이 더 이상 피폐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지난 2월 이재명 당대표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부결되는 과정에서 보인 민주당 일부 국회의원들의 조직적인 해당행위를 실시간 확인하면서 가진 분노의 감정이 누적된 결과다. 셋째 돈봉투 사건을 통해 드러난 대의원제의 폐해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절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민주당을 개혁하지 못하면 차기 대선에서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두려움과 공포감이다. 그래서 조직 결성에 참여하는 당원들은 민주당의 개혁을 시대정신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차기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민주화 실현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공개적으로 당원을 혐오‧멸시하는 기이한 현상
작년에 지선 전후로부터 공개적으로 자신을 대표수박이라 지칭하는 국회의원이 등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신조어를 만들어 불특정 다수의 당원들을 향해 ‘정치훌리건’ 혹은 ‘팬덤정치’라며 폭력적 이미지를 덧씌우며 언어폭력을 휘둘러 왔다. 표현 방식이 조금 다를 뿐 민주당의 일부 국회의원들은 이에 동조했다. 또 다른 의원들은 당원들이 언어폭력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방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원들을 공격하는 일부 국회의원들과 개혁적 성향의 당원들 사이에서 대립과 갈등이 유발되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자당의 평당원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혐오발언을 배설하듯 내뱉는 이러한 행태는 어떤 정치적 신념과 가치에 근거한 발언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치권력에 중독된 일부 국회의원들이 민주당을 둘러싸고 변혁을 요구하는 당원들의 시대적 요구에 견강부회하는 낡은 행태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또한 당원 다수의 의견을 대변하지 않는 혐오발언으로 반민주적 언어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하루도 쉬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당원들에 대한 혐오발언이 증폭 확장되고 더 노골적으로 의미가 변형되면서 당원들이 느끼는 저항감은 점점 더 고조되고 그런 만큼 절망과 상처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훌리건과 팬덤의 어원
우선 ‘훌리건(hooligan)’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훌리건이란 ‘불량배의’, ‘건달 같은’, ‘불량배’, ‘깡패’ 등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이 단어는 19세기말 영국의 뮤직홀에서 난동을 일으킨 훌리건 집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재는 스포츠 등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관중이나 팬을 의미한다. 좁게는 영국 등 유럽에서 경기 중인 축구장을 찾아가 난동을 부리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훌리건은 경기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지거나 경기가 불만족스러울 때 집단적으로 운동장으로 내려가 난동을 부리거나 물건을 부수며 패싸움을 한다. 그래도 스트레스가 다 풀리지 않으면 가두에 나가 집단적으로 난동을 부리는데 때때로 유혈참사로 이어지거나 전쟁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훌리건은 하위문화의 층위를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같은 유형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및 장신구 등을 착용하고 그들만의 언어를 구사하며 독자적인 특질과 정체성을 보여주면서 소집단의 문화를 형성한다. 때로는 사회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지배적인 문화체제를 부정하고 적대시하며 집단적으로 저항한다.
두 번째로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팬덤정치’라는 합성어에서 ‘팬덤(fandom)’이 뜻하는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팬덤은 광신자를 뜻하는 ‘패내틱(fanatic)’ 혹은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fan(팬)’과 영토, 관할 구역 등을 의미하는 ‘dom(덤)’으로 구성된 합성어다. 오늘날 이 단어는 일반 대중이 연예인이나 혹은 특정한 대중문화 상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팬덤이란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해 문화적으로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공간 즉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집단을 가리킨다.
훌리건과 마찬가지로 팬덤문화 역시 하위문화의 층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지배문화에 이르기는 어렵다. 팬덤문화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상징적인 영토를 차지하고 있더라고 현실에서 그들 대부분은 주로 대중문화상품을 소비하는 두터운 소비자층이다. 그렇기 때문에 팬덤문화 영역에서 벗어나 각각의 영토로 돌아가면 그들은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조직화된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남거나 직장과 같이 자신이 속한 그 계층의 사회적 정체성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다.
또한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파산해 더 이상 그 문화상품을 생산하지 못하거나 열렬하게 좋아하는 대상이 해체되는 상황이 도래하면 팬덤문화는 그 영역에서 해체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랬고, 그룹 빅뱅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팬덤문화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아무리 공고하게 구조화 하더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구조 안에서 지배문화 층위에 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또한 ‘팬덤’이란 단어는 ‘대중’이란 단어의 어원을 배제하고 생각할 수 없다.
뼛속까지 인텔리겐차로 오만의 절정
단어에 대한 설명이 너무 길었다. 다시 되돌아가서 왜 국회의원들이 정치 훌리건 또는 팬덤정치라는 단어를 사용해 당원들을 공격하고 혐오하는지 살펴보겠다. 첫째, 정치 훌리건이라는 단어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당원을 대놓고 공격하며 혐오하는 것은 너무나도 직설적이고 패륜적이다. 손쉽게 영어를 한국어로 변역해 말하면 ‘당원들은 건달이고 난봉꾼에 깡패다’라고 말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누군가와 대면하는 자리라면 상대에게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이 얼마나 오만방자한 행위인가. 당원에 대한, 아니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를 갖추려는 자세조차 내버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감히 당원들에게 이렇게 발언할 수 있는 국회의원에게 최소한의 정치적 신념이나 소명의식을 가지고 는 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둘째, 누군가를 열렬하게 좋아하는 의미를 지닌 팬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심리적 배경에는 이재명 당대표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계급이 돼버린 최고 학벌이라는 문화권력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소년공 출신 당대표를 인정하기에는 문화적으로 너무나 우월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차기 대선주자로 인정받는 이재명 당대표에 대한 당원들의 공고한 지지율에 대해서는 그들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은 지지율로 열등감과 소년공 출신에 대한 뒤틀린 패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을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이재명 당대표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이유는 직접적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기필코 공천을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간접적으로는 분명 이재명 당대표에 비해 자신들이 학벌자본을 가졌다는 문화적 우월감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정작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훌리건과 팬덤문화가 태생적으로 지배문화의 지위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두 문화현상은 지역문화 혹은 일상생활문화로 하위문화의 층위에서 청소년 문화 등과 같이 다양성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국회의원 입장에서 보면 당에서 자신의 지위는 공고한 위계질서에 따라 선출된 공무원이며 권력자로서 지배문화의 절정에 있는 사람이다. 상대적으로 정당에서 당원은 하위문화 층위에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당원에 비해 항상적으로 지배적 지위를 갖는다.
즉 그들은 당 안팎으로 구조적으로 지배문화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당원을 대상으로 우월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 훌리건과 팬덤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지배문화에 도달할 수 없듯이 당원들도 마찬가지로 지배문화에 도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찰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자신의 자아와 지배문화에 속한 사회적 지위로 인해 분리 불가능한, 뼛속까지 인텔리겐차 혹은 권력자로서 끊임없이 비주류문화와 하위문화에 구별짓기를 시도하면서 지배문화의 정점에서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당원이 주인이라고!
지난 6월 14일 송갑석 의원은 민주당의 혁신위 구성과 활동에 반발하며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 아니라 국민"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당원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희석시키면서 실은 ‘민주당의 주인은 국회의원들’이라고 말하는 반어법일 뿐이다. 또한 민주당이 당원의 참여와 의사에 따라 의사결정을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일반 여론의 향방에 따라 혁신위 활동을 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국민은 각 정당의 당원들도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실은 혁신위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현행 당헌당규를 그대로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민주당의 개혁을 요구하는 평당원들은 즉각 반발하며 송갑석 의원을 비판했다. 이들은 “민주당의 주인은 당원이 아니라 국민입니까? 그럼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전 세계인입니까?”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SNS 등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중이다.
반개혁파 입장에 선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당이 개혁되면 지배문화의 정점에서 지금까지 누려왔던 막강한 권한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은 국회에서는 국민의 대리인이고, 당내에서는 지역구 위원장으로서 지역에서 패권적인 정치권한을 마음껏 누리며 활동해 왔다. 국회의원들의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과 중독은 당원에게 거침없이 혐오 발언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당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발언할 수 있는 이성의 마비상태를 초래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 평당원들은 기존의 민주당 질서에 저항하며 과연 정당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동 걸린 평당원들의 대중정치활동
한국사회가 개혁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개혁을 바라는 진보적인 사람들은 양당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당 만들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정당은 지역정당을 허용하지 않는 등 중앙당 중심으로 전국적이며 중앙 집중적인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3의 신당을 창당하더라고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만든 신당은 가치를 중심으로 창당되기보다는 인물중심으로 급조되기 때문에 이미 그 한계를 조직과정에서 내포하게 되면서 창당 이후의 활동에서도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경험을 해 왔다.
앞서 말한 바대로 민주당 개혁의 필요성 이외에도 평당원들은 창당보다는 민주당을 혁신하는 쪽으로 활동의 방향을 잡은 것이다. 차기 대선에서 집권할 수 있는 수권정당은 오직 민주당뿐이라는 인식을 하면서 말이다.
우선 지난 3월부터 현재 안산 상록갑에 출마의사를 밝힌 양문석 당원을 대표로 민주당의 권리당원들이 시민단체의 형식으로 연대 결사체인 ‘민주시민행진’을 만들었다. 이 평당원 조직은 당원 10만인 모집을 목표로 만든 당원네트워크이다. 현재 이 단체는 SNS 활동을 통해 회원을 모집 중이며 각 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한편으로 평당원들이 중심이 돼 3월부터 조직 활동을 시작한 단체는 가칭 ‘더 좋은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 당원의 권리를 실천하는 당원 모임(이하 더민실)’ 이다. 더민실은 제안문을 통해 민주당 개혁이 시대정신이라 밝히며 자신들이 민주당 개혁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더민실은 21일 발기인 대회를 하고 창립대회는 7월 중으로 계획하고 있다. 더민실은 현재 각 지역에서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와 수산물 수입 반대 서명운동에 동참 중이다.
평당원들이 모여 대중정치를 하겠다며 행동하는 것이 민주당 개혁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예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평당원들이 정당이 갖는 권력의 칸막이를 부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의 지배문화 층위에서 개혁을 시도하는 것 못지않게 평당원 다수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지극히 환영할만한 일이다. 민주당 평당원들의 대중적 정치활동이 성과를 낸다면 타 정당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