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석 큰 절'이 보여주는 민주당·한국언론의 현실

불체포특권은 특권 이전에 방어권이며 의무

고개 숙여 부탁할 일 아니라는 것부터 알아야

2023-06-13     이명재 에디터

민주당, 정치, 한국언론의 현실 보여주는 장면

오늘(13일) 아침 여러 신문에 일제히 실린 한 장의 사진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른바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무소속 윤관석 의원이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민주당 의원총회에 들어가는 이재명 대표에게 고개를 거의 직각으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 사진 속의 장면에는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현실, 우리 정치의 현황, 한국정치와 관련된 한국언론의 현주소가 집약돼 있다. 민주당에 어떤 혁신이 필요하며 또 그 혁신은 왜 어려운지, 정치적 우군까지 포함해 180석의 압도적 의석으로도 왜 국민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지를 복합적으로 보여주며, 야당을 넘어서 한국 정치의 주요한 문제 중의 하나를 드러내며, 야당과 정치에 대해 성토하는 유력 언론 자신이 정치를 어떻게 그 같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는지를 거듭 확인시켜 주고 있다. 

윤 의원은 무엇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가. 그가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에 대해 온전한 이해를 하고 있다면 그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됐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회기 중 불체포특권은 특권이라기보다는 '방어권'이다. 그것은 의원 개개인에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힘의 불균형에 있는 행정부 등 다른 권력기관에 대한 국민의 대표기관의 대변자이자 입법자인 국회의원의 역할과 직무에 주어진, 헌법적 권리이자 그만큼의 의무다. 

 

무소속 윤관석 의원이 12일 오전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하는 이재명 대표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는 이른바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무소속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있었다. 2023.6.12 연합뉴스

검찰과 언론의 공세 앞에 민주당에 필요한 것

특히 지금처럼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검찰권의 전횡적이며 편파적인 국면에서는 더더욱 방어권으로서 행사돼야 할 필요가 높아진 상황에서 그같은 민주정치에서의 헌법적 법률적 의미는 한층 무거운 형편이다. 윤 의원은 이날 체포동의안 부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동료 의원들의 현명한 결정에 감사드린다”고 했지만, 표결 전 그가 했어야 할 일은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을 헌법기관인 동료 국회의원들에게 '요청'하는 것이었지 큰 절로써 '부탁'하거나 '읍소'할 일은 아닌 것이다. 고개를 숙이는 순간 그는 자신의 국회의원직과 불체포 방어권을 사적 직분, 사적 권력으로 만들어버렸다. 또 그럼으로써 다른 헌법기관으로서의 의원들의 결정이 ‘현명한’ 판단이 아닌 사적인 부탁과 정리(情理)에 의해 이뤄지는 것처럼 비치게 만들어버렸다.

윤 의원의 태도나 인식이 윤 의원 한 명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는 이들이 민주당엔 적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의 상대 정당에는 그런 의원들을 찾기가 오히려 훨씬 더 쉽겠지만, 민주당에 국한해 본다면 그 같은 현실이 민주당에 혁신이 필요한 이유, 또 혁신이 그만큼 어려운 이유가 되고 있다.

이 사진을 가장 크게 실은 곳은 '역시' 조선일보였다. 민주당에 대한 이 신문의 높은 '관심'이 보인다. 다만 그것은 지극히 이중적이며 편향적인 관심이다. 조선일보에 이 사진은 환호할 만한 장면이었다. 야당을 조롱하고 비하하기에 딱 좋은 장면이었다. 조선일보가 자신과 거의 한몸처럼 돼 있는 여당이 보이고 있는 모습, 부탁이나 읍소를 공개적으로 할 필요조차 없는 주종 관계이며 명령과 일사불란으로 이뤄지는 당정 간이나 당내의 의사결정 행태에 대한 보도들에 비춰보면 조선일보의 그 철저한 이중성이 다시금 나타난 사진의 선택과 배치였다.   

쫓기는 자는 쫓는 자보다 더 바쁘게 뛰어야

국부적인 장면을 전체로 제시하는 데, 표적으로 삼는 대상에 대해서는 신체의 한 부분에 극단적인 현미경적 렌즈를 들이대는 ‘춘화(春畫)’ 그리기와 같은 보도에서의 이 신문의 비상한 열의와 능력이 다시금 확인됐다.

이 신문에 대해 이런 비판과 지적을 하는 것은 사실 이 '1등 매체'의 반성과 개선에의 기대에서가 아니다. 야당의 행태를 비판하는 이 신문이야말로 스스로 맹비난하는 한국 정치와 국회, 정당들의 지금의 수준과 현실에 머물러 있게 하는 데 스스로에게 가장 큰 책임을 물어야 할 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신문에 그같은 물음에 대한 대답을 바라는 것은 바라기 힘들다. 야당에게, 그리고 한국정치의 발전을 바라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 즉 이 같은 극단적인 비대칭적 시각과 철두철미의 면밀함으로 정치에 대한 대중의 혐오를 야당에 대한 혐오로 귀착되게 하는 이 신문의 현미경적 관찰과 주시 앞에 늘 노출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과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을 둘러싼 환경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번처럼 검찰의 대대적 표적 공세는 민주당에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난국이랄 수도 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날 본회의장에서 체포동의안 제출 이유를 설명하면서 했던 발언이다. 그는 “돈 봉투를 받은 것으로 지목되는 약 20명의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여기에 있고 표결에도 참여하게 된다”며 “돈 봉투 돌린 혐의를 받는 사람들의 체포 여부를 돈 봉투 받은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관의 입에서, 그것도 법을 관장하는 법무부의 장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법에 대한 한편의 무지와 한편의 오만을 드러낸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발언들이 예사로 여겨지는 상황이 이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쫓기는 자는 쫓는 자보다 더 바쁘게 뛸 수밖에 없다. 불리한 처지와 상황에선 더욱 많은 분발이 필요하다. 그리고 민주당이 항상 쫓기는 자, 절대약자인 것만은 아니다. 압도적 의석의 우위도 그렇거니와 강약의 위치는 늘 바뀌는 것이다. 국면과 사안에 따라 때로는 약자가 되지만 때로는 강자가 된다. 오히려 민주당에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다면 민주당은 권력과 검찰과 언론의 대대적 압박과 공세 속에서도 강자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의석 수의 절대우위를 불체포특권에서만이 아니라 더욱 많은 사안에서 제대로 보여주는 모습을 보일 때 약자는 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혁신, 기본과 기초에서부터

윤 의원은 표결 부결 후 “정치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는 부당하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윤 의원 자신이 할 말은 아니다. 또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떠나서 표결 부결은 부당하다는 입증의 확정이 아니라 부당하다고 보는 국회 다수의 의사가 표출된 것일 뿐이다. 윤 의원과 함께 표결에서 부결된 이성만 의원은 “당당하게 재판에 임하고 만약 내가 일정한 혐의 사실이 있어서 문제가 된다면 그때 중대 결심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대결심'은 특별한 때에, 특별한 결심으로 할 게 아니다. 매 순간의 국회의원의 직분에 충실하고 거대야당에 맞는 '거대'한 모습을 보이도록 자기역할을 하려는 노력과 의지가 다름아닌 중대결심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같은 중대결심의 항상적 실천, 거기에서 민주당의 혁신도 나올 것이다. 검찰과 권력과 언론에 의한 극단적 불균형에도 맞설 태세가 갖춰질 것이다. 그것이 민주당에 필요한 '기본'과 '기초'일 것이며, 그 기본에 충실할 때 오늘 아침 윤 의원의 사진과 같은 장면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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