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갈등 '임계점'으로…김기현 "우리 침략한 중국" 극언

싱하이밍 "중국 패배 베팅 후회"…정부는 강력 항의

중국 "대사로서 할 일 했다"…시진핑 의중 반영한 듯

'한‧중 관계 4불가 방침' 윤 정부에 통보 사실상 시인

여당 "굴욕, 사대 DNA" vs 민주 "수출 부진에 죽을 맛"

2023-06-11     이유 에디터

 

3월 들어 10일까지 반도체 수출이 41%나 감소하고, 대중국 수출도 35%가 감소한 영향으로 연간 기준 무역적자가 230억 달러 수준을 기록했다. 사진은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서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2023.3.1.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들어 촉발된 한·중 갈등이 1년 남짓 만에 '임계점'에 다가섰다.

작정하고 윤 정부의 중국 정책에 불만을 제기한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의 발언을 계기로 서로 간에 반감이 쌓이면서 한·중 관계는 복원은커녕 더 꼬여만 가는 형국이다. 한국이 지난 9일 싱 대사를 불러 항의하자 중국은 11일 정재호 주중대사를 초치해 맞받아쳤다.

특히 국정을 맡은 여당인 국민의힘은 한·중 갈등의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양측에 냉정과 자제를 촉구하고 해결책을 내놓기보단 정략적 차원에서 외려 갈등을 부채질하는 모양새다.

문제의 싱하이밍 발언은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만찬 자리에서였다. 싱 대사는 이날 성북구 중국대사 관저로 이 대표를 초청해 저녁을 대접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대표를 친구로 생각하고 몇 가지 솔직히 말씀드리겠다"면서 한·중 관계와 공급망,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국제 문제 등에 관해 의견을 밝혔다. 이재명 대표는 무엇보다 악화일로의 대중 무역적자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중국의 협조를 요청했다.

중국 대사, 윤석열 정부 과도한 대미 편승 경고

싱 대사 발언을 살펴보면, △ 탈중국화 추진 시도가 대중 무역적자의 더 중요한 원인이다 △ 두 나라의 산업망과 공급망은 뗄 수 없다. 대중 협력에 믿음을 가져달라 △ 대만은 중국의 핵심 중 핵심 문제이고 중·한 관계의 기초다. 중국의 핵심 문제를 존중해달라 △ 현재 어려움에 놓인 양국 관계의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 등이 그 핵심 내용이다.

그리곤 윤 정부의 과도한 대미 편승을 '경고'하는 문제의 발언이 나왔다. 싱 대사는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을 하고 있다"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자 역사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발언 현장은 취재진에 공개되고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윤 정부는 거세게 반발했다. 외교부는 다음날인 9일 싱 대사를 불러 강하게 항의했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사실과 다른 내용과 묵과할 수 없는 표현으로 우리 정책을 비판한 것은 외교사절의 우호 관계 증진 임무를 규정한 '비엔나 협약'과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한국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내정간섭에 해당할 수 있다고도 했다.

장 차관은 이어 싱 대사가 외교사절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처신해야 할 것이며, 모든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외교부 경제안보외교센터 개소 1주년 기념 포럼에 참석한 뒤 취재진에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저녁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고 있다. 2023.6.8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싱하이밍 발언이 '객기'?…시진핑 의중 반영됐을 수도

상황이 간단치 않은 것은 싱 대사가 '객기'로 이번 일을 벌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 외교부 본부의 지시 또는 위임에 따르거나, 나아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의중이 실렸을 수도 있다.

이런 낌새는 한국 외교부가 싱 대사를 초치해 "외교사절의 본분을 벗어났다"고 강하게 항의한 후에 나온 중국 외교부의 공식 대응을 보면 얼마든지 포착이 가능하다.

중국 외교부는 정색하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왕원빈 대변인은 9일 홈페이지에 싱 대사 발언과 한국 정부의 항의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글을 올렸다.

이틀 뒤인 11일에는 눙룽 외교부 부장조리(차관)가 정재호 주중대사를 초치하고 "심각한 우려와 불만"을 표명함으로써 시비를 따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먼저 왕 대변인은 홈페이지 글을 통해 "싱 대사가 한국 정부와 정당, 사회 각계각층과 폭넓게 접촉해 양국 관계와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중국의 입장과 우려를 소개하는 것은 그 직무 범위 안에 있다"고 감쌌다. 대사로서 충분히 할 일을 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는 "현재 중한관계는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고 말해 싱 대사의 견해에 동조했다. 나아가 "한국의 유관 부문은 (상황을) 정확히 바라보고, 어떻게 문제를 직시하고 중·한 관계의 안정과 발전을 실현할지에 주안점을 두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지 말고 문제의 본질인 달을 보라는 식이다.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이래 최악이다. '가치 외교'를 내건 윤 정부의 과도한 대미, 대일 밀착과 반중 행보에 따른 결과다. 지난해 11월 프놈펜에서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이 잠시 만난 후 양국 간 소통 채널은 사실상 끊겼다. 최근에야 소통 채널 복원 시도가 가시화됐다.

 

북한, '실패한' 위성 발사 장면 공개(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지난달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의 발사 장면을 1일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했다. 이 로켓은 엔진 고장으로 서해에 추락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발사 후 2시간 30여분 만에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2023.6.1. 연합뉴스

중국 외교부 '한‧중 관계 4불가 방침' 통보 사실상 시인

중국은 5월 22일 류진쑹 외교부 아주사 사장(아시아 국장)을 서울로 파견했다. 류 국장은 최용준 외교부 동북아 국장과 만난 데 이어 윤 정부 외교안보 실세인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비공개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류 국장은 한‧중 관계와 관련해 '4불가(不可)' 방침을 통보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 한‧중 협력 불가 △ 한국이 친미‧친일 일변도 외교정책으로 나아갈 경우 협력 불가 △ 현재와 같은 한‧중 관계 지속 시 고위급 교류(시 주석 방한) 불가 △ 악화된 정세 아래 한국의 대북 주도권 행사 불가 등이다.

'4불가' 방침 통보가 사실이냐는 질문에, 이날 왕 대변인은 "중·한 국장급 협의에서 중국 측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입장과 우려를 표명했고, 한국 측은 잘 알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시인했다. 그는 "한국은 응당 문제의 소재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모습은 '점입가경'이다. 한·중 관계가 지금처럼 엉망이 된 데는 정부 못지 않게 여당도 책임이 있는데도 엉뚱하게 싱 대사와 식사를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야당인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다.

원래는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으로서 한·중 관계 복원을 위해 중국 측과 먼저 접촉했어야 하는데도 손을 놓고 있으니 야당인 민주당이 나섰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 탑승에 앞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등 환송객들과 인사하고 있다. 2023.4.24. 연합뉴스

'6·25 멘탈리티' 김기현 "우리나라 침략한 중국" 극언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중국을 향해 '침략국'이란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 대표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틈만 나면 호국영웅들에 대한 폄훼와 비하에 급급한 민주당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중국의 대사 앞에서는 다소곳하게 두 손 모아 오만불손한 발언을 열심히 받아 적으면서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비난했다. "우리나라를 침략한 중국"이란 표현은 6·25 전쟁 당시의 멘탈리티를 지녀야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여권에서는 이재명-싱하이밍 만찬을 두고 '삼전도 굴욕'이니 '사대주의 DNA'니 비난을 하는 한편, 국회 국방위 여당 간사인 신원식 의원은 싱 대사가 사과하지 않을 경우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고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정면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박성준 대변인은 9일 국회 브리핑에서 "대중국 수출 부진에 우리 기업들은 죽을 맛인데 정치적 사안으로 중국을 자극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중국과 불편한 관계를 자청하는 게 당당한 외교인가"라고 반문했다.

박 대변인은 "경제를 책임져야 할 집권 여당이 나라 경제에 보탬이 되지는 못할망정 손해만 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싱 대사는 '미국은 앞에서는 중국을 비판하지만, 물밑에서는 (중국)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고, 실리를 챙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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