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윤석열에게 '충(忠)'은 무엇인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현충일은 '충(忠)'을 선양하고 기리는 날이다. 나라에 목숨으로써 충성을 바친 이들을 추념하고 애도하는 이날, 호국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와 애도를 표하는 이날, 현충은 무엇을 기리는 것인가에 대해, ‘충(忠)’은 무엇인가에 대해, 무엇이 돼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게 된다. 그 어느 해보다 올해 더욱 더 많이 생각게 된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들이 속해 있는 이 나라, 국가에 대한 애국과 충성의 마음을 호국의 영령들에 올리는 꽃과 눈물과 함께 여느 날과는 다른 심정으로 오늘 더욱 각별하게 다지게 된다.
그러나 나라를 위한 국민의 충성을 되새기는 날로서 우리의 옷깃을 여미는 현충일이 더욱 더 현충의 날이 되기 위해서는, 그 ‘충’이 더욱 기리고 다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와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현충은 단지 국민의 나라에 대한 헌신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충(忠)은 또한 나라의 국민에 대한 것이어야
국민의 나라에 대한 충성과 희생을 기리는 이날, 그것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니 그보다 더욱 우선돼야 할 것은 오히려 국민에 대한 나라의 충(忠)의 의무를 새기는 날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충’은 국민의 나라에 대한 일방적인 복종과 헌신이 아니며 오히려 나라가 국민에 대해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먼저 되물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의 나라에의 충성을 요구하는 것에서만 이날의 의미를 찾는다면, 그건 실은 현충이랄 수도, 또 그런 나라를 진정한 나라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비극적인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에서든 외적에 맞서는 구국독립 투쟁에서든, 또 나라를 지키려 한 다른 어떤 투신과 항거에서건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그것은 나라에 지킬 것이 있어 지킨다는 것이어야 한다. 나라를 나라로서 지키는 것 이전에 그 나라가 나라다운 나라인지에 대한 것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왜 있는지, 그 국가는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 나라를 위해 죽은 이들은 나라에 지킬 무엇이 있어 귀중한 목숨을 던진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호국'이라는 것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나라를 세우는 마음인 것이고, 나라를 앗겼을 때 나라를 되찾으려는 광복의 의지인 것이며, 외침을 당했을 때 나라를 지키려는 수호의 한마음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에 젊음이든 생명이든 소중한 뭔가를 던지는 이들의 순정한 마음인 것이다. 진정한 호국과 국방은 결국 병력과 무기 이전에 나라에 대한 믿음의 문제이며 신뢰로부터 출발하고 이룩되는 것이다.
그 호국은 오늘 많은 호곡과 눈물을 자아냈던 현충원 묘역의 넋들, 그들이 목숨을 내던진 비장한 결의이기도 하나 오늘의 하루하루를 사는 이들의 평범한 일상의 삶을 지켜내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살아서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지키고 싶은 나라, 그 나라의 일원으로서 속해 있고 싶은 마음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실은 호국의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오늘 현충일 추념식에서 대통령이 얘기한 ‘국가의 품격’의 근간이며 토대가 돼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국민에게 보여야 할 현충은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모하는 국가의 최우선의 소명, 그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호국의 영령들의 헌신과 희생이 바랐던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전쟁의 방비와 평화의 염원이었다는 데서 비롯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현충의 추념사를 한 최고권력자, 기이하기 짝이 없고 일방적인 폭주로써, 그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국민을 적대시하는 것으로써, 치명적인 오염수를 안전하다고 윽박지르며 나라의 주권의 일부를 자진헌납하다시피 함으로써 지하와 천상의 호국 영령들을 욕되게 하는 그에게 과연 호국 영령들의 비탄과 진노가 들렸던 것일까.
진정한 호국은 지켜낼 만한 나라를 만드는 것
'현충'은 죽은 이들의 죽음을 살아 있는 우리 속에 살아 남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살아 있는 이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살아서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더욱 삶으로 피어나게 함으로써 그 죽음을 삶과 연결짓는 것이다.
지금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있는 이들, 외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부에 의해 가족과 소중한 것들을 잃고 앗기고 있는 이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현충일인 오늘의 현충이며 호국이다. 그 호국의 심정과, 그런 나라여서는 안 된다는 결의가 있을 때 그것이야말로 강력한 한미동맹만큼의, 아니 오늘 대통령이 말한 '철통같은 안보 태세' 이상의 안보이며 국방이 될 것이다.
그럴 때라야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아니 그 이전에 국민들로부터 ‘나라다운 나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라야만 호국 영령과 선열들이 ‘국권’을 회복하려 했던 것은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오늘의 후손들이 대한민국이든 ‘자유’ 대한민국이든 간에 그 자유를 지켜내려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지에 대한 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죽음을 통해 가족과 이웃들의 삶을 있게 해 준 이들, 그렇게 죽음에의 투신으로써 삶을 살고자 한 이들을 추념하는 오늘, 어느 해보다 절절 절박의 심정으로 다시금 생각해보는 국가의 존재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지극히 자명하고 당연한 사실, 그걸 모르는 자, 감히 현충과 호국을 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