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친정권'으로 새판 짜기…권-언 합작 거대한 구상

'시민사회 재편' 친권력 지형 조성하려는 권력과 언론

'민간단체 비리' 프레임, 친정권 언론과 함께 착착 진행

비판 견제해야 할 언론들 경각심은 미흡…시각 안이해

2023-06-06     이명재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시민단체는 범죄 파렴치 집단?

권력이 표적을 정하면 산하 기관이 그에 대한 공격을 수행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 뒷받침해주는 윤석열 정부판 마녀사냥이 한국사회의 곳곳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펼쳐지고 있다. 특히 정권과 이른바 '보수' 언론의 화력이 집중되는 곳이 시민단체다. 지난 4일 대통령실이 발표한 3년간의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감사 결과는 횡령과 리베이트 수수, 사적 사용, 서류 조작 등의 부정투성이였다는 결론으로 요약된다. ‘범죄 파렴치 집단’으로 몰아간 이 발표를 언론은 충실히 중계했다.

‘민간단체들 눈먼 보조금’ ‘尹퇴진 강의가 민족영웅 발굴?…이런 보조금 비리 314억’ ‘줄줄 샌 민간단체 보조금’ ‘정부 보조금은 먼저 타 먹는 게 임자, 틀린 말 아니었다’ 등등의 보도가 거의 모든 신문의 지면을 덮었다.

이번 민간단체에 대한 비리 적발 발표는 현 정부 출범 후 집요하게 펼쳐진 시민단체에 대한 매도와 공격의 일환이며 한 과정이다. 이를 그대로 받아 쓰기하는 것은 물론 그 같은 공격을 응원하고 여론몰이를 하는 언론은 시민단체들에 대해 '마녀사냥'을 하듯 호응하고 있다. 언론들은 이번에 드러난 민간단체의 비리를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빙산의 일각인 것은 그 같은 정부와 언론의 시민단체,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다. 정부와 언론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시민사회의 역할과 기여, 민주제 발전과 성숙의 한 결과이며 동력인 시민사회에 대한 무지라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2023.6.4 연합뉴스

어떤 기관이든 단체든, 특히 스스로 공적인 감시자 역할을 자임하는 단체라면 부정과 비리를 경계하는 엄격성은 더욱 높은 기준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에 대한 비판과 교정은 그만큼 엄격해야 한다. 그럴 때 시민단체의 발전과 성숙, 그를 통한 그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기여가 더욱 내실을 다지게 된다.

그러나 한국언론은 이를 제대로 따져보려 하지 않는다. 민간단체들의 반박을 들어보면 이번 발표에는 상당한 과장, 과장 이상의 의혹이 있다. 한겨레 신문은 특히 여러 신문이 집중 보도한, 한 통일운동단체의 ‘숨은 민족 영웅 발굴’ 사업 보조금 6800만 원이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적 강연 등에 쓰였다는 발표에 대해 이 단체회장 인터뷰를 통해 "정부에서 실제 지급된 돈은 1500만원에 불과했고, 강의 내용도 윤석열 정권 퇴진과 관련한 것은 없었다"는 반박을 싣고 있다. 비리의 규모는 물론 비리의 실체 자체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지만 이 같은 반론의 전달은 언론 전체에서 극히 예외적이었다.

비리 실체, 규모 의문투성이지만 짚는 언론 없어 

설령 대통령실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비리의 규모가 과연 ‘부정투성이’였는지 의문이다. 3년 간 전체 보조금 6조 8000억 원 중 부정 사례는 314억 원인데, 이는 전체 대비 0.46% 정도다. 시민단체들을 각종 비리 집단으로 매도하며 대대적인 감사를 벌인 결과가 이 정도라면 오히려 이는 부정투성이인가 하는 의문은 물론 그 반대의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지점이다.

정부와 한편이 돼 시민단체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유력 언론들의 보도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있는 곳은 그나마 한겨레와 경향신문 정도다. 그러나 과연 이들 신문의 비판과 지적이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경향은 ‘비판적 목소리까지 위축되나’라는 기사에서 “정부의 대대적인 보조금 감사로 인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사설에서는 “정치적 목적을 띤 ‘표적감사’ 아니냐는 의심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일각에서 우려‘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며, 표적감사라는 의심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시민단체 자율성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쓰고 있는데, 불가피해 보인다며 '담담한 전망'을 하고 있다.

한겨레의 사설은 ‘시민단체 옥죄기’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보조금 사업의 타당성을 구체적으로 따지지 않고 전 정부에서 늘어난 만큼 삭감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정략적이라는 인상마저 준다”고 비판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정략이 확인돼야 ‘정략적이라는 인상마저 주는’ 이상의 비판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정부의 시민단체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는 '시민사회' 지형을 바꾸려는 전쟁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시민사회, 이른바 ‘제3섹터’를 정권에 유리한 지형으로 전면적인 새판 짜기를 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국민의힘이 지난달 29일 ‘보수’ 언론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대한 악의적 보도에 호응해 발족시키겠다던 ‘시민단체 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아예 ‘시민단체 선진화 특위’로 격상한 것도 시민단체 전반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해 '친정부적 시민사회'로 재편하겠다는 발상이다.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대일역사정의 운동과 시민단체 탄압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6.1 연합뉴스

이런 움직임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7일 국무회의에서 "보조금 사업의 회계 부정을 철저히 점검하고 과감하게 사업을 정비하라"고 지시한 것의 충실한 이행이다.  

정부만이 아니라 서울시의 오세훈 시장이 이미 그에 앞서 2021년 9월 기자회견까지 열어 박원순 시장이 재임하던 10년간 시민단체에 1조 원을 지원하면서 전용 현금지급기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시민단체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서울시 산하기관과 대학 등에 지원된 보조금까지 끼워 넣어 1조 원으로 부풀린 것으로 ‘민간단체 보조금’이 곧 ‘시민단체 보조금’으로 오해되기 쉽다는 점을 악용한 왜곡이란 게 드러났지만 그 자신은 물론 언론의 바로잡기는 없었다.

한편으로 우호적 시민단체 육성 의도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시장의 이 같은 시민단체 '죽이기'는 엄밀히 말하면 우호적인 시민단체 육성에 다름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시민단체들을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로 분류해 비판적 단체에 대한 국고 보조는 끊고, 친정권 보수 관변단체들에는 국고에 더해 기업 후원까지 몰아주도록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시민단체에 대한 공세와 재편은 전방위적으로 더욱 일사불란하게 펼쳐지고 있다. 대통령실 발표에 앞서 지난 5월 16일 감사원이 대통령실 발표의 ‘전편’처럼 “국고보조금 횡령 등 혐의로 10개 비영리민간단체 대표·회계담당자 등 73명을 수사의뢰했다”고 발표했다. 이때도 해당 비영리민간단체가 어떤 곳인지, 혐의는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 설명도 없었던 감사원의 발표를 언론은 충실히 보도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이 발표와 언론 보도를 분석한 결과 언론은 ‘비영리민간단체’를 ‘시민단체’로 일반화해 비판했다. 민언련의 구분대로 ‘비영리민간단체’는 비영리 목적 민간단체를 총칭하며, 각종 법령에 의해 설립된 단체부터 기업 협회, 비영리 연구소, 비영리 시민단체, 사회적 기업 등까지 포함하는 것이며, 시민단체는 비영리민간단체의 한 일부일 뿐, 비영리민간단체가 바로 시민단체를 뜻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이 감사원 보도자료의 ‘비영리민간단체’를 자의적으로 시민단체로 바꿔 보도했다. 특히 부정 사용이 가장 큰 사례로 제시된 ‘10억 5000만원 횡령’의 경우 국방부 보조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1억 1000만 원을 횡령했다는 단체는 한류사업 일환으로 PC케이스 주문제작 사업을 했다고 나오는 등 통상적 시민단체 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렇게 심각한 비리라면, 단체명을 공개할 법도 하지만 감사원과 언론 모두 철저하게 익명 처리한 반면 유일하게 단체명이 공개된 사례는 세월호 지원사업 일환으로 열린 주민 인문학 강좌에서 북한 제도 관련 강좌를 열었다며 문제 삼은 안산청년회 사례뿐이었다. 횡령금액이라고 인정해도 380만원에 불과하다. 10억 5000만원을 횡령했다는 단체는 익명 보도되고, 380만원을 횡령했다는 단체는 실명 보도된 것이었다.

시민단체를 주요 표적으로 삼은 정권과 이른바 '보수' 언론 합작의 시민사회 재편 작업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언론과 함께 또 다른 여론의 한 축인 시민사회 새판 짜기 작업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단계일 뿐이다. 아직 빙산의 99각은 수면 밑에 있다. 그러나 수면 위로 밀고 올라오는 그 빙산의 치고 올라오는 기세를 견제하고 막아야 할 일부 비판언론의 시각은 매우 안이해 보인다. 빙산의 몸체가 물 위로 떠오를 때는, 그때는 이미 막기 힘든 상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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