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의 나라, 검찰의 시대 ②] 고위공직자 철밥통 없애야
고시출신 고위직 특권세력화…국가를 자기 소유로 착각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대체로 관료집단은 자신들이 이 국가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주체이며, 자신들이 아니면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관료세력이 이 사회에서 이미 특권세력화했기 때문에 조장된 것이다. 특히 고시출신 고위 관료들의 집단이기주의는 국가보다 우선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하여 자신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과대망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국가를 자기들 소유로 생각하게 된다. 이들이 퇴직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각 부처 산하기관은 그들의 튼튼한 노후보장책으로 충실하게 이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출직 공직자들은 항상 교체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안정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약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시험에 의해 임용된 ‘시험 권력’ 관료집단은 신분 보장이라는 제도적 장치에 기대어 그 권력을 확대재생산해왔다. 이렇게 하여 결국 ‘시험 권력’이 우리 사회의 실질적 힘을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공무원의 신분 보장은 국가와 국민에게 충실하게 봉사하기 위한 것이지 거꾸로 공무원의 신분 보장을 위하여 국가와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공무원 신분 보장은 박정희 군사정권을 거치며 정비되어 전두환 정권 시기에 완성되었다.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참사를 통하여 관료들의 심각한 무사안일주의와 직무유기 그리고 참으로 어이없는 책임회피의 행태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이 나라 관료집단에 나타나는 이러한 심각한 폐단에는 여러 까닭이 있지만, 그 핵심적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철밥통으로 상징되는 공무원의 신분 보장에 존재한다. 이러한 관료집단에 일정한 경쟁 체제와 최소한도의 도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국민에 충실하게 봉사하는 ‘공복(公僕)’으로서의 위상과 직책 수행이 실현되고 그리하여 정확한 신상필벌이 작동될 수 있는 중대한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시험 권력’ 관료집단으l 권력 확대재생산
미국이 고위 공무원단 제도(SES, Senior Executive Service)를 도입한 것도 바로 고위 공무원의 신분 보장을 완화시켜 집권층에 저항하거나 비협조적인 혹은 성과가 낮은 고위 공무원을 해직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짐으로써 고위 공무원을 통제하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2012년 현재 미국 고위 공무원단은 8004명으로서 언제든 탈락시킬 수 있다. SES에는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정무직도 포함되는데, 정무직은 전체의 1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본래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은 이 SES 상위에 있는 최고위층 공무원으로서 약 4000명 정도로 구성된다).
또한 미국의 연방공무원은 근무성적평정의 결과 ‘불가(unacceptable)’ 판정에 의해서도 강임이나 면직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와 같은 완전한 신분 보장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이 나라에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이들은 비단 친미에 그치지 않고 미국을 숭배하고 무조건 모방하며 따라한다. 하지만 그런 미국으로부터 진정으로 배워야 하고 따라야 할 것은 정작 배우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
독일에서도 고위 공직자에 대한 해임이 제도화되어 있다. 독일에서 정부의 정치적 의도 및 목표와 지속적으로 일치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관직에 취임하는 정치적 임용직 관료는 언제든지 이유를 명시하지 않고도 해임(Einstweiliger Ruhestand)할 수 있다. 독일에서 이렇게 고위공직자에 대한 해임 제도가 도입된 것은 바이마르공화국 수립 후 이전 시대에 임명되었던 행정부의 ‘왕당파 공무원’들을 통제하고 장악하기 위한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임시 해임’된 고위 공직자에 대해서는 일반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절차는 적용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임용된 관료는 해임에 대한 불복 신청의 권리가 없으며, 이에 대해 연방정부 인사위원회 및 연방의회는 관여하지 않는다.
공무원 신분 보장의 유연화, 세계적 추세
전통적으로 많은 국가에서는 공무원에게 일반 근로자에 비해 훨씬 더 직업적 안정성을 보장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1980년 후반부터 확연히 변화되어 공무원과 일반 근로자의 차이점이 점차로 약해져 왔다(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2004), Policy Brief Public Sector Modernisation: Modernising Public Employment, Paris: OECD Publishing.). 노동관계 법령은 더욱 유연화되었고, 종신고용보다는 기간을 정하고 이를 명시한 임용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보다 일반화되고 있다.
OECD 16개 회원국을 보면, 공무원의 지위와 일반 근로자의 지위가 점점 비슷하게 변화해 가는 추세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 내에서 종신고용을 보장하는 특별한 규정을 폐지하고 공무원에게 일반 근로자와 같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고 있다. 전략적 인적 자원관리에 대한 OECD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13개 회원국은 이미 지난 10여 년에 걸쳐 공무원의 신분을 점차 변화시켜 왔다. 스위스의 경우, 공무원 지위는 모든 연방공무원이 일반 근로자 신분과 동일하다(박희정, 라희문 '지속가능한 정부를 위한 공직개혁 과제' 「감사논집」 2015년, 제24호)
고위공직자 신분보장의 특권적 관료시스템, 이제 바뀌어야 한다
미국의 고위 공무원단은 4가지의 임용종류가 있다. 경력직(Career Appointment), 비경력직(Non-career appointment), 계약직(Limited appointment, 3년), 임시계약직(Temporary appointment 또는 Limited emergency appointment, 18개월)이다. 이러한 임용은 모두 대외 개방이며 처음 임용된 경우 외부 임용자 중에서 외부 임용자는 30%로 제한한다.
미국의 고위 공무원단 제도에서는 본래의 목적인 전문 능력의 폭넓은 활용을 위해 여러 장치를 준비해 놓고 있다, 먼저 고위 공무원단이 되기 위해서는 임용자가 선발조건을 구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행정부에서는 해당 공무원의 전문성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중 하나가 고위 공무원단이 되기 위한 표준적 요건이 되는 핵심역량으로서 Strategic vision, Human Resource planning, organizational representation, liaison 등을 들 수 있다. 그밖에도 고용기관에서 결정하는 기술적 자격 요건이 있다. 이러한 여러 과정과 검증을 통해 고위 공무원단이 임용된다. 또한 이렇게 선발된 후에는 성과관리 및 측정 시스템이 작동되어 계속 평가되게 된다. 미국은 평가의 단계를 ES1부터 ES6까지 구분하여 성과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게 된다. 정치적인 요소를 배제시키고 인력의 능력을 중요시 여기며 이를 통한 행정의 능률을 높이려 하는 것이다.
미국 공직 시스템은 이동성이 자유롭고 신분 보장이 지속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동성은 고위 공무원단의 중요 원칙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직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비슷한 직위로 임용된다. 신분 보장은 공무원 신분일 경우에만 가능하며 해임된 이후에는 신분 보장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고위 공무원단 제도는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의 저항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 정치적으로 급진적이거나 이념적인 정책 의제 실현을 추진하는 정치지도부가 집권해 있을 경우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위정(爲政)’의 요체는 좋은 인재의 등용에 있다”
공무원이란 말 그대로 ‘public servant’로서 국민을 위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한자어로는 ‘국민의 종’이라는 뜻의 ‘공복(公僕)’이다. 우리 헌법 제7조에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공무원의 신분 보장과 정년 보장은 권력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정파를 초월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를 하라는 의미에서 제공되는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특히 공무원의 신분 보장이 강조되었던 이유로는 독재 정권하에서 공무원에 대하여 권력을 남용했던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측면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무원 신분 보장은 그와 함께 오히려 독재 권력이 공무원 조직을 활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무원 조직에 대한 특혜를 제공해온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공무원에 대한 신분 보장과 정년 보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오히려 이제 공무원의 이러한 신분 보장과 정년 보장이 헌법이 규정한 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를 게을리하게 만드는 제도적 온상이 되지는 않았는지에 대하여 진지하고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때다.
공자가 노나라 애공을 만났을 때 애공은 위정(爲政)의 도리를 공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위정의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신하를 뽑는 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계강자 역시 위정의 도리를 물었을 때 공자는 “정직한 사람을 기용하여 사악한 사람을 고쳐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악한 사람도 정직한 사람으로 변합니다”라고 하였다.
지극히 간단한 말이지만, 이 세상의 진리를 명징하게 함축하고 있다. 동서고금 어느 국가든 한 나라의 경영에 있어 좋은 인재의 기용은 핵심 중의 핵심이다.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특권세력화를 위해 국가와 국민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공무원 조직은 국가의 근간 조직이다. 명백한 사실은 관료집단의 신분 보장과 특권세력화를 위해 국가와 국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무원에게 신분 보장을 부여한 목적은 국민에게 성실하게 봉사하라는 것이지, 그 신분 보장을 배경으로 하여 특권을 행사하는 특권세력화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공무원에 대한 철저한 신분 보장으로 인하여, 즉 공무원의 ‘철밥통’ 시스템이 고착화되는 그 순간, 주인으로서의 국민들이 공무원에 대하여 필요불가결한 통제를 하고 관리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견제 받지 않는’ 공무원이 대중의 위에 군림하게 되는 관료주의의 폐단과 나아가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와 무능 그리고 비효율이 초래되게 된다. 대중을 위한 ‘공(公)’을 실현하자는 취지에서 제도화되었던 신분 보장이 오히려 바로 그것으로 인하여 ‘공(公)의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 요인으로 변모하게 된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즉, ‘공(公)’을 실현하는 목적을 위한 수단, 또는 성실하고 묵묵히 대중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부여된 공무원의 ‘신분 보장’ 제도는 이제 거꾸로 ‘신분 보장’ 그 자체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신성불가침의, 별도의 증명이 필요 없는 공리(公理)처럼 변질되어 버렸다. 철저하게 독점적이고 외부에서 진입할 수 없도록 장벽을 높다랗게 둘러친 정부 공무원 조직의 경직되고 폐쇄된 시스템은 시급히 변화되어야 한다.
KBS 보도에 따르면 최근 국회 인권센터에 국회 입법조사처 소속 고위공무원 A씨(기재부 출신으로 알려졌다- 필자 주)가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을 저질렀다는 내부 신고가 접수됐다. A씨가 자신의 소변을 빈 주스병에 담아 직원들이 쓰는 설거지통에 놓고 갔고, 이를 본 직원이 성적 수치심을 호소한 것. 이외에도 보고를 하러 온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벗지 않을 거면 나가라”라고 말하거나, “일개 사무관 따위가”, “조사관들이 무슨 전문성이 있나” 등의 폭언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2023.5.11 YTN).
기사 내용은 물론 특수한 사례로서 모든 고위 공무원의 모습은 분명 아닐 터이다. 하지만 동시에 오늘 이 나라 관료 문화의 한 단면이라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한동안 공무원은 이 땅 젊은이들의 가장 큰 꿈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급속하게 인기가 떨어지는 원인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렇듯 그릇된 고위 공직자들이 빚어내는 관료주의의 공직사회 분위기가 핵심적인 요인이리라.
공무원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사회 경험이 부족하다. 그래서 흔히 “우물 안 개구리”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정작 그 ‘개구리’들은 ‘우물’이 자기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거꾸로 생각한다. 외부와의 경쟁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있고 그러면서도 아무런 견제 장치가 없는 관료 사회는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 만연된다. 공무원들의 꿈은 오직 승진으로서 승진 지상주의의 문화로 충만되며, 또한 “가장 나쁜 놈이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간다”라는 조직문화의 표본을 보여준다. 이렇게 하여 공직 사회는 마땅히 지녀야 할 공공성으로부터 이탈하여 사적 이익 추구의 적나라한 모습을 노정시키고 있다.
이렇듯 오도된 관료주의 문화로 충만되어 있는 관료들이 국가의 대부분 고위직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것은 이 나라의 미래를 대단히 어둡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구체적으로 이제 3급 미만 공무원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신분 보장을 유지하되, 2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에 대한 신분 보장 폐기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점이다. 그 직위는 외부에 전면 개방하여 각 분야 우수 인력에게 국가 관리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이 나라의 앞날을 밝히는 길이며, 뛰어난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 사회와 국가에 봉사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박탈’된 많은 사람들에게 ‘패자 부활전’의 장(場)을 열어 주는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