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전세 세입자, 국가는 어디에 있나?

사기 덫 방치해두고 "사적 영역"이라는 정부

2023-06-04     주영 경제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주영 경제경영 칼럼니스트

빌리는 쪽이 ‘갑’인 이상한 전세제도

세상물정을 잘 몰랐던 어린 시절이었다고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전세 제도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로 돈 없고 집 없는 사람이 집주인에게 엄청나게 큰돈을 빌려준다니, 때론 전 재산을 빌려준다니,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놀랍게도 ‘사금융’이라니… 비록 그런 현실을 아는 어른일지라도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하지 못할 일이다.

‘사금융’이다 보니 집주인, 즉 돈을 빌려가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거의 알 수가 없다. 거의 전 재산을 빌려주는데도 돈 빌려가는 사람의 경제 사정이 어떤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가격 결정 구조도 이상하기 짝이 없다. 돈 빌려가는 사람이 얼마를 빌려갈지 가격을 정한다. 그러니 적정 가격을 알기가 어렵다. 특히 빌라나 다세대 주택은 더욱 알기 어렵다. 더욱 이상한 건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쩔쩔맨다. 돈 빌리는 쪽이 ‘갑’이고, 돈을 빌려주는 쪽이 ‘을’이다. 누가 봐도 사기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구조다. 그런데도 800~900만 명이 이 ‘사금융’을 이용하며 큰돈을 빌려주고 있다. 정말 이상한 제도다.

 

24일 인천시 미추홀구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인 40대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A씨가 살던 미추홀구 아파트의 모습. 2023.5.24.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엄청난 돈을 풀었다. 돈값이 싸지니 역사상 가장 낮은 저금리가 만들어졌다. 심지어 금리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금융 역사상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전 세계 자산시장이 들썩거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집값이 폭등했고 전세가격도 급등했다. 그러자 이번엔 정부가 전세대출 규제를 풀었다. 전월세 시장 안정화와 높은 전세가로 고통 받고 있는 서민들을 위한 것이라 했다.

그런데 전세가는 돈 빌려 받는 사람, 즉 집주인이 정한다. 은행 빚이 가능해져 돈을 빌려줄 사람들의 주머니가 넉넉해졌다. 이를 가장 빨리 눈치챈 사람들이 바로 집주인들이다. 이젠 돈 빌려 가는 사람, 집주인들이 다시 전세가격을 올린다. 여기에 언론이 가격을 더욱 부추기는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낸다. 이렇게 전세가격은 또 다시 올라간다.

가진 자들을 위한 전세대출 규제완화

이렇게 오른 전세가격이 다시 집값을 끌어 올린다. 이젠 오른 전세가만 이용하면 3천만 원으로 3억 원짜리 집을 살 수 있다. 이른바 ‘갭투자’라는 신종 투자(투기?) 방법이 판을 친다. 집값은 자고 나면 또 올라간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분명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 전세대출 규제를 풀었는데 오히려 집주인이 편안하고 여유 있게 더 큰 돈을 빌리고 있다. 그리고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결과만 보면 정부의 전세대출 규제 완화가 집주인을 위한 것인지 집 없고 돈 없는 서민들을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은행이 전세대출로 돈을 더 풀었음에도 전세 수요자는 똑같이 돈이 모자란다. 그 사이 부동산 버블과 가계부채 위험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듯 임계치를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닥쳤다. 빅 스텝, 자이언트 스텝, 울트라 스텝 등 처음 들어보는 어색한 단어가 등장하며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른다. 미국 기준금리는 불과 1년 만에 0.25%에서 5.25%까지 올랐다. 심지어 한두 차례 더 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기준금리도 0.50%에서 3.50%까지 무섭게 올랐다. 전 세계가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긴축 정책으로 빠르게 돌아섰다.

이젠 집값이 떨어진다. 경매물건도 계속 쌓인다. 집 주인이 전세값으로 빌려 간 돈보다 집값이 더 떨어져 이른바 ‘깡통전세’가 나오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진짜 문제가 터진다. 돈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빌려간 사람의 정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정부의 관리감독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사금융’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전세 사기 범죄가 판치기 딱 좋은 구조가 만들어 진 것이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그런데 그 피해도 오롯이 돈을 빌려준 사람 몫이다. 이상한 일이다.

범죄 부추기는 정부 관리감독

인천 미추홀구의 전세 사기범죄도 이런 환경에서 조직적으로 벌어진 범죄다. 전세 사기 피해가구가 3000세대가 넘고, 피해금액도 수천 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임대사업자, 공인중개사, 건설업자, 대출브로커 등의 불법 행위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러니 인천시에 한정된 문제도 아니다. 전국적으로 전세 사기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사기를 당한 개인의 책임도 아니다. 전세 사기 범죄를 벌이겠다고 작정하고 덤비면 부동산 그 어떤 전문가도 피해갈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정부의 책임이 매우 크다.

전세 사기를 당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가슴 아프다. 대부분 청년층, 신혼부부, 은퇴한 노령층 등 대부분 주거 취약계층에 속한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이 전 재산을 잃었다. 전 재산을 잃었는데도 은행 빚만큼은 높은 대출 금리를 먹고 무럭무럭 커져만 간다.

전세 사기 죽음은 사회적 타살

결국 전세 사기 피해자가 생활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통한 소식들이 들려온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사실상 사회적 타살이다. 정부의 책임이 매우 컸다. 정부는 그 책임의 무게만큼 형식적인 대책이 아닌 국민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이고 긴급한 대책을 내놨어야 했다. 최소한 ‘최우선 변제금’이라도 회수할 수 있는 대책이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뒤늦게 내놓은 대책이라곤 다시 빚을 내주겠다는 게 전부였다. 이미 빚에 허덕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 남은 인생을 빚의 구렁텅이로 내몰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피해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임대차계약 관계에서 발생한 피해는 사적 피해여서 정부 재정이 들어가는 공적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4일 인천시 미추홀구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인 40대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A씨가 살던 미추홀구 아파트의 모습. 2023.5.24. 연힙뉴스

지난 몇 년간 고분양가로 엄청난 수익을 챙겼던 건설사들의 미분양 아파트도 정부가 시세보다 높게 고가로 매입해줬다. 또 ‘특례보금자리론’을 만들어 40조 원을 쏟아 부었다. 집값이 9억 원 이하면 누구에게나 3~4%대 저금리로 5억 원까지 대출해 주는 제도다. 부자들의 집값 하락을 정부 재정으로 막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벌, 부자들 감세 규모도 향후 5년간 50~6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재벌과 부자들 주머니에 50~60조 원을 공짜로 찔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에도 공적 영역은 없다. 오히려 사적 영역을 넘어 개인 영역에 가깝다. 그러는 사이 올해 4월까지 국세는 이미 34조 원이나 펑크가 났다.

분식회계 범죄를 저질러 천문학적 성과급 잔치를 벌였던 파산 직전의 사기업에도 약 10조 원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레고랜드 ABCP 사태가 터졌을 때에도 50조 원으로도 부족해 200조원+α 지원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무려 169조 원에 이르는 국민 혈세를 공적자금으로 쏟아 부었다. 그 돈은 지금도 71%밖에 회수되지 않고 있다. 모두 사적 영역이었다.

정부 설명은 거짓말, 국가는 어디 갔나?

그러니 정부의 설명은 틀렸다. 아니 거짓말이다. 지금까지 사적 피해 구제를 위해 정부는 천문학적 재정을 쏟아 부어 왔다. 단지 그 대상이 서민들이 아닌 부자들이었고, 재벌 기업들이었을 뿐이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같은 사적 피해일지라도 부자들, 재벌들에게 쓸 재정은 있고 서민들을 위한 재정은 없다는 소리다.

지난달 24일 또 한 명의 전세 사기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벌써 다섯 번째 비극이다.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은 대부분 피땀 흘려 모은 전 재산일 가능성이 높다. 생명만큼 소중한 돈이다. 그러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 거짓말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사람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민유방본 식위민천(民惟邦本 食爲民天),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고 먹고사는 것이 백성의 하늘이라 했다. <세종실록>에 여덟 번이나 나오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의 삶을 돌보지 못하면 나라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쓰러져 간다. 국민들이 쓰러져 간다. 국민이 묻는다. 지금 국가는 어디에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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