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조작·패륜보도 침묵하는 언론의 ‘동업자 카르텔’
MBC·경향 제외한 다수 주류언론 보도에 소극적
언론간 상호비평 꺼리고 권력 눈치보기 작용한 탓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노동절인 지난 1일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 노조 탄압에 항의하다 분신한 양회동 씨 죽음은 충격적이다. 군사독재 시절 벌어진 숱한 죽음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조선일보의 느닷없는 ‘분신방조 의혹 제기’ 보도였다.
“분신 노동자 불붙일 때 민주노총 간부 안 막았다”(조선일보, 5월17일, 최훈민 기자)
“‘분신 사망’ 민노총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 유서 위조 및 대필 의혹”(월간조선, 5월18일 김광주 기자)
조선일보의 이 충격적인 보도는 모두 거짓이었다. ‘분신 방조’ 보도는 현장 목격자와 경찰 증언에 의해 단 하루 만에 거짓으로 판명났다. 조선일보가 기사에 갈무리한 현장 영상의 출처도 거짓이었다. ‘유서 대필’ 보도 역시 전문가 필적감정을 통해 일주일 만에 허위로 확인됐다.
조선일보 기자는 현장 취재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영상의 출처도 속였다. 유서의 필체 검증도 없이 ‘눈으로 보니 대필’이라는 식으로 쓴 엉터리 기사였다. 이는 언론의 보도윤리 위반과 오보 비판을 넘어 한 사람의 죽음을 정치적 의도와 목적으로 이용하려 한 패륜적 왜곡 보도였다. 조선일보의 이번 조작보도는, 32년 전인 1991년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보도’를 냈던 그 조선일보였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한국 언론사에 또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될 조선일보의 이번 조작보도, 패륜보도에 대해 다른 언론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이는 한국 언론이 진실추구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주요 언론은 조선일보의 ‘분신방조, 유서대필’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는 데 적극 나서지 않았다. 2~3개 정도의 매체를 제외하고는 다수 언론이 조선일보의 조작보도, 패륜보도를 ‘방조’했다고 볼 수 있다. 언론이 상호 보도비평, 매체비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동업자 카르텔’이 작용한 데다, 윤석열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검색 사이트인 ‘빅카인즈’에서 조선일보의 ‘분신 방조’ 기사가 보도된 16일부터 필적감정으로 ‘유서대필’ 보도가 허위로 판명된 24일까지 ‘분신+방조’ 및 ‘유서+대필’ 키워드로 10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와 3개 경제지, 지상파 3사가 보도한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분신+방조’ 뉴스 검색 결과, 모두 56건이 보도되었는데, MBC 기사 15건, 경향신문 기사 15건, 한겨레 기사 8건, YTN 기사 7건이었다. 다른 일간신문은 0~2건이었고, 3개 경제지에서는 관련 기사가 단 한 건도 확인되지 않았다. 공영방송인 KBS는 2건, SBS 1건이었다.
‘유서+대필’ 뉴스 검색 결과도 비슷했다. 총 27건 중에 MBC 뉴스 11건, 경향신문 6건, 한겨레 5건이었으며, 다른 매체에서는 관련 뉴스를 발견할 수 없다.
경향신문과 MBC의 집중보도가 눈에 뜨인다. 경향신문은 조선일보의 ‘분신 방조’ 보도가 허위임이 밝혀지자 19일자 1면과 ‘조선일보 분신방조 프레임 보도’ 제목의 2면 전체, 그리고 사설을 통해 조선일보 보도를 적극 비판하고 나섰다.
“‘노동 혐오’ 드러낸 섬뜩한 ‘보도폭력’”(경향신문, 5월19일 1면)/“살인보다 더한 낙인...근거 없이 나를 죄인몰이 한 방식 똑같아”/“‘악재’ 돌파구 필요한 여권/보수 언론발 의혹 재확산”/ “취재 경위 부정확, 사진에 시너통 합성...보도 윤리 어겨”/“한술 더 뜬 원희룡, SNS로 음모론 제기”(2면)/“건설노동자 분신 악마화한 조선일보야말로 ‘언폭’이다”(사설)
MBC도 ‘분신방조’와 ‘유서대필’이 허위조작이었음을 집중 보도했다.
“악의적 왜곡보도...언론폭력 비판 잇따라”(5월17일)/“분신장면 담긴 조선일보 CCTV사진..검찰·경찰 ‘제공사실 없다’”(5월18일)/“죽을 일 아니다...10분 넘게 처절한 설득”(5월19일)/“마지막 유서 추가 발견...노조탄압 중단시켜 달라”(5월23일)/“건설노조, 조선일보·원희룡 고소..패륜 되풀이 말라”(5월23일)/“모든 유서 동일 필체..유서대필 일축”(5월24일)
한겨레도 기사와 사설을 통해 조선일보의 조작 보도를 비판적으로 다뤘으나 경향신문과 MBC 보도와 비교하고 ‘진보매체’라는 이름을 감안하면 적극적인 비판에 나섰다고 하기는 어렵다.
“분신 배후 보도 맞장구·경찰 물대포, 제정신인가”(한겨레, 사설, 5월19일)/“역사의 퇴행 실감나게 하는 ‘분신 배후 의혹’ 보도”(아침햇발, 5월22일)/“분신 양회동씨 유서 ‘글씨체 동일’..월간조선 대필의혹 반박”(5월24일)
다른 언론들은 이번 사안을 거의 다루지 않거나 건설노조의 조선일보 고소 및 기자회견 등 발표 위주의 뉴스를 건조하게 보도했다. 건설노조 탄압에 따른 노동자 분신과 조선일보의 조작 · 패륜 보도 문제가 제기되는 중에도 중앙일보는 “건설노조 광장 노숙 날...‘약주 해야지’ 돗자리 술판에 잔디 흡연”(5월17일) 제목의 기사를 통해 노조에 대한 혐오 보도를 생산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