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G7 주제는 ‘글로벌 사우스' 내편 만들기’
'자유민주주의 vs 권위주의' 철 지난 구도
우크라 지원조율 + 글로벌 사우스 끌어안기
나토와 아시아태평양 연계 강화도 노림수
“중국에 지고 있다”는 초조와 전략수정 논의
구매력평가기준 GDP 브릭스가 G7 추월
‘민주주의 정상회의’ 단독개최 한국 모델은?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에 관한 한 서방은 중국에게 지고 있다.” 이 말은 19일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G7 의장국 일본의 관료와 외교관들이 요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하는 말이라고 <이코노미스트>가 전했다.(5월 16일)
여기에서 말하는 ‘서방’은 곧 G7이다. 이 잡지가 꼽은 이번 G7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우크라이나 지원 조율과 러시아 제재 방안 논의다. 이번 회담에서 이들이 결속을 과시하면서 “러시아의 핵위협에 관한 분명한 메시지” 즉 핵무기 사용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는 인류 최초의 피폭 도시 히로시마라는 도시가 지닌 상징성을 통해 ‘비핵 평화국가 일본’이라는, 일본 재무장을 추구하는 자신의 정책방향과는 모순되는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기시다 후미오 정부의 계산에도 부합할 것이다. 초청 8개국 중 하나인 한국 대통령과 함께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가겠다고 밝힌 것도 그런 ‘장치’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히로시마 G7 핵심의제는 ‘글로벌 사우스’ 끌어안기
그러나 이번 G7 정상회담의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의제는 “서방이 중국에게 지고 있다”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어떻게 서방 쪽으로 더 많이 끌어들이느냐, 즉 글로벌 사우스 ‘포섭’ 방략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기존 국제질서가 요동하면서 서방이냐 중국·러시아냐는 양자택일식 편가르기를 거부하면서 독자적인 생존과 활로를 모색하는 국가와 지역들이 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주권국가를 침공한 러시아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미국 등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도 가담하지 않는다. 그들 중 다수가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다. 이들 중에는 지금까지 ‘개발도상국(개도국)’이나 ‘신흥국’으로 분류된 나라들이 많다. 하지만 ‘글로벌 사우스’가 그런 개념과 상당부분 겹치기는 하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인 글로벌화(세계화) 영향 속에서 격심한 부의 집중과 양극화(격차확대)가 진행되는 가운데 기후변동과 대량 이민처럼 국제문제와 국내문제의 경계가 모호한, 국경을 초월하는 사회적 위계(계층)와 불평등의 문제를 포괄하는 개념이 글로벌 사우스다. 쉽게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글로벌화로 손해를 본 나라들과 지역, 사회의 여러문제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에 속하는 나라나 지역들은 글로벌화의 수혜자들이라 할 수 있는 G7 등 서방에 반감 내지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주권국가 침해, 즉 ‘현상변경’을 감행한 러시아도 지지하지 않는다. 특히 러시아의 침공으로 교란된 곡물(식량)과 원유 석탄 등 에너지와 광물 시장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어 러시아에도 호의적일 수 없다.
중국의 약진
그런데 예전 같으면 그런 공백을 미국 등 서방이 메워 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 일극체제는 무너진 지 오래고 국내정치와 경제조차 위기에 처해 있는 미국의 힘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대표하는 서방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나토를 두고 말했듯이 “빈사상태”였고, G7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말했듯이 “낡았다.” 글로벌 사우스에게 서방은 그들을 끌어들일 매력적인 경제지원이나 안보지원 방책을 제시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런 틈새를 중국이 파고들어 나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반목하던 이슬람 수니파 수장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수장국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중국이 중재하고, 인플레 억제를 위해 사우디에 석유 증산을 요청하러 갔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냉대를 받은 예에서도 보듯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줄어들고 있고 중국은 힘을 키우고 있다. 중동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남미, 인도태평양 도서국들에서도 이런 추세변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G7을 넘어선 브릭스의 GDP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G7의 경제적 우위는 이미 기울고 있고, 그에 따라 국제적인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다. G7 회원국 전체 GDP(국내총생산)가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명목상의 비중은 1980년대에 약 70%에 도달한 것을 정점으로, 2021년에는 45% 아래로 급락했다. 구매력평가 기준(ppp) GDP는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가 G7의 그것을 이미 넘어섰다. 서방은 이처럼 힘이 약해졌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G7 등 서방이 만들어 놓은 지금의 국제질서가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믿음을 주는데 실패하고 있다.
일본의 임무
G7 의장국인 일본이 이번의 히로시마 G7 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자청 타청 부여받은 임무는 그런 서방에 대한 글로벌 사우스의 실망과 불만을 두루 들어서 중국으로 쏠리는 그들의 ‘민심’을 차단하고 다시 서방 쪽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는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에 정식 멤버 외에 초청되는 8개국과 7개 국제기관의 면면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초청받은 8개은 한국과 인도, 호주, 동남아국가연합(ASEAN) 의장국 인도네시아, 아프리카연합 의장국 코모로, 태평양도서국포럼 의장국 쿡아일랜드, 브라질, 베트남이다. 7개 기관은 유엔, 국제에너지기구(IEA),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무역기구(WTO)다.
‘글로벌 사우스 내편 만들기’ 임무를 위해 지난 몇 달간 시기다 총리는 인도, 이집트, 모잠비크, 가나, 케냐, 싱가포르 등을 찾아갔고, 하야시 요시마사 외상은 중남미 지역을 돌았다.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국임을 자처하는 인도에 기시다 총리는 지난 3월까지 4번이나 찾아가 모디 총리를 만났다.
자유민주주의는 “빈약한 구호”
그렇게 해서 확인한 것이 “글로벌 사우스에 관한 한 서방은 중국에게 지고 있다”는 현실이었다. 그들은 찾아간 나라들의 리더들로부터 특히 서방을 대표하는 미국의 무능, 분열된 국내정치, 대안 부재의 경제, 타국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오만한 외교정책 등에 대한 우려와 불만을 청취했다. 경제적 곤궁과 서방에 대한 그런 불만 때문에 글로벌 사우스의 지배 엘리트들 다수가 중국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걸 파악하고 일본 관리들은 초조와 불안을 느꼈다. 글로벌 사우스 엘리트들은 중국이 서방보다 더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도로나 다리는 서방보다 더 많이 제공하면서도 잔소리(간섭)는 더 적게 한다고 했다. 미국의 민주주의 ‘설교’나 ‘전도’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일본 관리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자유민주주의는 빈약한 구호임이 드러났다.”(<이코노미스트> 5월 16일)
‘일대일로’ 등을 통한 중국의 과도한 글로벌 사우스 포섭전략이 다수의 관련국들에서 부채 과잉과 부실공사, 현지 노동력 배제 등으로 인한 부작용 등 적지 않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음에도 그 효과가 부작용보다는 더 크다는 것을 글로벌 현실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이번 히로시마 G7 회담에서 겨냥하고 있는 또 하나의 노림수는 유로-나토 중심의 G7과 일본이 대표한다고 일본 스스로 믿고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연결하는 것인데, 중국견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토와 인도태평양의 연계 강화를 통한 중국견제라고도 할 수 있다. 예컨대 일본은 안보면에서 대만문제를 염두에 둔 '현상변경' 반대를, 그리고 경제적인 면은 희토류 수출 통제와 같은 "경제적 강제" 반대를 천명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양자택일 싸움 기피
어쨌든 일본이 줄곧 주장해 온 국제질서의 법치 원칙이 주요 의제가 될 이번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강조해 온 민주주이와 권위주의(전제주의) 사이의 싸움이라는 담론이 억제 내지 자제되기를 일본관리들은 바라고 있다고 이 잡지는 지적했다. 그런 추상적이고 모호한 가치들보다 국경 불가침(현상변경 불가) 지지나 경제적 지원 등이 글로벌 사우스의 잠재적 파트너들에게 훨씬 더 어필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관리들조차 자유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는 양자택일식 이분법 강요는 피하는 게 좋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새로운 블록 만드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철지난 한국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주최?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이 열린 이후 여기에 참여한 윤석열 정부는 지난 3월 말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미국과 공동으로 주최했고, 다음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한국 단독으로 주최하기로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이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주제이자 목표가 바로 세계를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전제주의)로 나누고 자유민주주의가 해법임을 ‘설교’하고 ‘전도’하는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 나라들이 싫어할 뿐만 아니라, 일본관리들도 현장에서 효과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한 것을 하겠다는 것이다. 원조를 받던 가난한 글로벌 사우스 처지에서 원조를 주는 G7 초청국이 된 한국의 ‘성공’사례는 미국이나 서방에게는 글로벌 사우스를 끌어들이는데 매우 유효한 모델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겠지만, 이제 그런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트럼프의 표현을 쓰자면 “낡았다.” 지금의 국제질서를 지키는 것이 이득이라는 G7의 ‘설교’가 글로벌 사우스에게 이미 잘 먹혀들지 않게 된 시대에 G7급 ‘선진국’이 되는 ‘막차’를 탔다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설교와 전도는 철지난 것이 될 수도 있다.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은 이런 면에서도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