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의 마지막 ‘우행(愚行)’

2023-05-23     이명재 에디터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명재 에디터

5월은 생명의 계절, 그러나 우리의 현대사에서 5월은 어느 때보다도 죽음의 계절이니, 광주에서의 죽음에 더욱 애를 끊는 것은 그 죽음이 생명이 약동하는 때에 겪은 죽음이라는 비통한 역설에서부터도 비롯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5월의 죽음이 있었다. <민들레>가 내보내고 있는 그의 생전 친필 기록의 글씨를 보며 다음 주에 맞는 그의 죽음, 노무현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한다.

14년 전 5월의 어느 화창한 주말, 한 사내가 물러서지 않는 불굴과 비범한 투지를 수행해 왔던 자신의 몸을 스스로 꺾으려 할 때 철저히 혼자였을 그의 마지막 시간을 생각한다. 그가 절벽에서 뛰어내려 그 육신이 땅에 부딪칠 때 났을 쿵, 소리를 들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가혹한 형벌을 집행할 때 그는 홀로였다. 그는 그 절대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소멸시켰다.

그러나 그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늘 고독 속에 있었다. 가장 충실한 지지자들조차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그는 혼자 부엉이 바위를 오르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늘 자신의 행동을 말과 일치시키려는 데서 지극히 철저했던 그는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그의 유서의 대목의 진심을 사소한 행위로써 보여줬다. 죽음을 작정하고 유서를 남긴 그는 집을 나서서 뒷산으로 향하는 길에 불쑥 몸을 굽히더니 길가의 잡초를 뜯었다. 그 몸짓, 그것이 내게는 유언을 행동으로 보여준 ‘유행(遺行)’이었다.

그는 이 사소한 동작에서 무엇을 남기고자, 자기 자신에게, 또 남은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자신이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삶을 향해 산을 오르는 것이라는 것을, 삶의 포기가 아니라 다만 새 길을 떠나는 것임을, 그러니 벗들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

죽음의 결행 앞에 선 그가 바위 위 가장 높은 곳에 섰던 것은 죽음에로의 투신이 아니라 실은 삶을 완결 짓고자 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죽어서 산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오히려 죽었던 것이다. 최소한 우리 몸의 일부가 죽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죽음은 분명 하나의 패배였을지언정 그러나 그 패배가 어떤 승리보다 드높은 승리로서 남은 이들을 난타하게 된 것이다.

제주4·3범국민위원회, 노무현재단 제주위원회 등이 제주4·3 75주년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년을 맞아 4월 1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추념식을 거행했다. 2023.4.1. 연합뉴스.

지상에서의 마지막 담배 한 개비를 물고 그의 눈은 무엇을 응시했을까. 산 아래 자신이 나고 자랐던 마을, 자신이 지나온 격렬하고 치열했던 63년의 생애, 가난했던 소년이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이렇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구나’라고 처연히 되뇌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늘 그 처음이었다. 그 처음의 소년, 그 처음의 결의가 그로 하여금 한 시대를 이끌게 했고, 그 전에 없었던 시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것이 우리가, 내가, 그를 사랑한 이유였고, 또 그것이 그를 미워하기도 한 이유였다.

그가 마지막 담배 연기를 내보낼 때 봉화산의 부엉이는 그를 지켜봤을까. 황혼이 저물어야 부엉이는 날아오른다, 고 했던가. 부엉이의 그 예지라야 우리는 그를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와 함께 그 의결과 지혜를 찾으러 부엉이 바위 위로 올라야 한다. 그의 삶의 완결을 함께하기 위해 그와 함께 그 바위로 올라야겠다. 그것이 무언가 우리를 우리 삶의 좀 더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려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를 더욱 깊은 곳으로 내려가게 해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를 위해 흘리는 눈물 한 방울과 함께 노무현의 그 고독과 결단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의 육신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를 생각할 때 슬픔이 가시지 않는다. 눈물의 수원(水源)이며 회한의 수원인 그를, 그러나 우리는 또한 어떤 의결의 원천으로 삼을 때 남은 우리는 그의 죽음과 함께 삶을 함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어떤 죽음보다 더한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니, 그것이 그에 대한 눈물과 추모가 또한 축제이며 환희이기도 한 이유다. 그것이 ‘바보 노무현’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우행(愚行)’, 죽음의 길에서 몸을 굽혀 잡초를 뜯었던 그 최후의 우행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희망이다. 지금 우리에겐 그 희망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리가 그 희망을 찾을지를 그는 부엉이 바위 위에서 생전에 늘 그랬듯 너그러운 웃음과 함께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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