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대중국 전략 결정 초읽기…불꽃 튀는 미‧중 외교전

유럽-중국 분리, 미국 2배 타격…주요 기업들 '위기'

EU '디리스킹' 공감…대만 유사시 대중 제재는 신중

화두는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결국 프‧독이 판정

미국, 수천 억 달러 보조금 무기로 EU에 탈중국 압박

2023-05-17     이유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럽연합(EU)  비공식 외교장관 이사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맨 오른쪽) 2023 05.13 EPA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대중국 전략 결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EU가 27개 회원국의 다양한 입장을 추슬러 어떤 '단일전략'을 채택하느냐가 국제질서의 향방을 가를 가능성이 큰 만큼 EU를 향한 미국과 중국의 외교전은 자못 격렬하다.

외신을 종합하면 지난 12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EU 외교장관이사회에서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EU의 "일관된" 대중국 전략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날 EU 외교부 격인 대외관계청(EEAS)은 회원국 외교장관들에게 대중국 전략문서 초안을 돌렸다. 6월에 열릴 EU 정상회의에서 이 전략문서의 채택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반도체 장비(CG). [연합뉴스TV 제공]

미국, 수천억 달러 보조금 무기로 EU에 탈중국 압박

뭣보다 EU에 대한 미국의 '줄서기' 요구가 거세다. 미국은 패권 도전 의사를 드러낸 중국의 부상을 용인할 수 없다고 보고 경제와 군사 등 전방위로 대중 포위망을 구축 중이다.

경제 측면에선 그동안 EU에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압박해왔다. 인플레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에 규정한 수천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당연히 EU는 미국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민의 지점은 대중 경제 의존도를 낮추되 미국이 원했던 '결별' 수준의 디커플링으로 갈지, 그렇지 않다면 어느 분야에서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할지의 문제다.

그래서 일종의 절충안으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제시한 개념이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이다. 말하자면 '선별적 디커플링'인 셈이다. 그는 "중국과 분리하는 것은 실행할 수도 없고 유럽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독일 겔젠키르헨에 위치한 독일의 2대 BP 정유공장 2023 01. 30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유럽-중국 분리, 미국 2배 타격…주요 기업들 '위기'

이것을 뒷받침하는 통계들도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실제로 디커플링을 통해 공급망이 파괴되면 유로존의 국민총지출은 미국의 약 2배인 2% 넘게 떨어진다고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다. 중국 의존도가 심한 독일의 하락은 훨씬 더 심하다.

또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난 4월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서구와 중국 간 투자가 단절되면 유럽의 국내총생산(GDP)은 2%가 줄면서 역시 미국의 두 배 넘는 타격을 받게 된다.

특히 유럽과 중국 경제가 '분리'되면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와 프랑스 럭셔리 기업, 영국 은행을 비롯해 중국에 의존하는 상당수 유럽 기업들이 위기에 처할 것으로 이 매체는 내다봤다.

이런 배경에서 디리스킹은 유럽의 대중 관계를 표현하는 기본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 등 미국 고위 인사들도 이 개념을 받아들였다. 당장은 그 이상 EU를 밀어붙일 수 없다고 판단했음 직하다.

그러나 그 개념에 실제로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대체로 △ 공급망 다각화 △ 양자컴퓨팅이나 첨단 반도체, 인공지능(AI), 우주기술과 같이 군사적으로 활용할 우려가 있는 첨단 핵심 기술들에 대한 선별적 통제 △ 강제노동 등 인권침해 관련 상품의 공급망 배제 등이 거론된다.

디리스킹에는 또한 '전략적 기반 시설'을 위시한 중국의 대유럽 투자에 대한 심사를 더욱 강화하는 방안도 있다. 안보 리스크 심사를 도입한 2013년 이후 중국의 대유럽 투자는 2022년 최저로 떨어졌다. 유럽의 대중국 투자 통제 문제도 논의 중이나 도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EU가 진짜 부담스럽게 여기는 미국의 주문이 있다. 중국의 침공 등 대만 유사시 EU의 적극적 가담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단일 대오'를 과시하는 것과 같이 대중국 제재와 대만 군사 지원에 나설 것이란 통일된 입장을 천명해달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유럽 경제는 미국보다 훨씬 더 '교역 집중적'이어서 중국에 대한 노출도가 미국의 약 두 배에 이른다. 대중 제재 시 유럽은 미국보다 훨씬 더 큰 경제적 타격을 받고 미국 기업보다 더 많은 수의 기업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EU가 대만 문제와 관련해 선뜻 미국의 손을 들어주지 못하는 까닭의 하나라고 하겠다.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소속 해군 함정들 훈련 모습. 2023 02 10. 시민언론 민들레

EU '디리스킹' 공감…대만 유사시 대중 제재는 신중

EU는 단일한 대중국 전략문서 초안을 일단 내놓았다. 14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입수한 전략문서 초안은 디리스킹에 해당하는 선별적 디커플링 입장을 밝혔다.

특히 대만 문제와 관련해 초안은 "대만해협에서 단계적으로 고조될 위험은 파트너국과 협력해 현상의 침식을 저지할 필요성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긴장이 고조되는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EU가 대만 유사시 '관여'하겠다는 공동의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또한 초안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인하면서도 "일방적 현상 변경과 무력 행사는 세계 경제, 정치, 안전 보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명시했다.

초안에는 "특히 최첨단 반도체를 공급하는 대만의 주요 역할을 고려할 때 일방적 현상 변경과 무력 사용에 거대한 경제, 정치, 안보적 후과가 있을 수 있다"는 진단이 담겼다. EU가 수입하는 반도체의 90%가 대만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중국이 러시아에 철수를 요구하지 않으면 "(중국과) EU의 관계는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명시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의 태도마저 문제 삼았다.

다음 달 EU 정상회의에서 초안 그대로 통과된다면 미국은 완승, 중국은 완패에 가깝다. 양국 사이에서 '완충지대'로 기능했던 EU가 확실히 미국 편에 섰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총리와 만나는 한정 중국 국가부주석(왼쪽).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EU, 대중국 전략 결정 초읽기…불꽃 튀는 미‧중 외교전

미국의 공세는 전방위적이다. 당장 19일부터 사흘간 진행될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겨냥해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에 반대하고 대중 투자 통제 등을 담은 성명 채택을 추진하는 한편, 대만 관련 공동의 입장도 모색 중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적 강압' 대책으론 중국에 대한 징벌적 관세, 중국을 뺀 리튬·희토류 등 주요 광물 공급망 재편 등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EU의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중국은 다급해졌다. 중국 외교라인의 '3인방'인 한정 국가부주석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 친강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11~12일 이례적으로 동시에 유럽에 머물며 주요 EU 회원국을 상대로 미국 주도의 대중국 디커플링에 가담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안보에선 미국과의 협력이 불가피해도, 경제에선 중국과의 교역 유지가 실익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15일부터는 중국의 우크라이나전쟁 평화 협상 중재 특사 역할을 맡게 된 리후이 유라시아사무 특별대표가 우크라이나·폴란드·프랑스·독일·러시아 등 5개국을 잇달아 방문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EU 내부의 자세는 온도 차가 적지 않다. 과거 소련권에 있었던 동유럽 국가들은 중국에 매우 강경한 데 반해, EU를 이끄는 쌍두마차인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는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중국에 상대적으로 유화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양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숄츠 독일 총리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화두는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결국 프‧독이 판정

EU의 향방은 결국 27개 회원국 중 경제 규모가 가장 크고 대중국 의존이 가장 심해 교역 관계 단절을 꺼리는 프랑스와 독일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역설하고 있다. "동맹이 곧 속국은 아니다"라는 폭탄 발언을 하며 미국과 중국, 특히 미국으로부터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 유럽을 '3대 초강대국'으로 만들자고 호소한다. 대만 문제 개입도 '남의 일'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의 중국 두둔하기 행보는 지난달 5~7일 중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작년 11월 먼저 방중했던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마크롱만큼은 아니다. 그는 안나레나 배어복 외무장관을 포함해 연립정부 내의 세력들이 서로 갈등을 빚는 데다 산업계의 로비도 만만치 않아 아직 독일의 대중국 전략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이런 맥락에서 엘리제 조약 60주년을 기념해 이뤄지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독일 국빈 방문(7월 2~4일)과 프‧독 정상회담 이벤트가 특별히 눈길을 끈다. 두 나라가 미‧중 사이 어디에 포지션을 정할지, 중국에는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가 EU의 향방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EU가 멀지 않은 시기에 통일된 대중국 전략문서를 채택할 수 있을지, 채택에 성공한다면 어느 정도 수위에서 중국과의 '갈라서기'를 결정할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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