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1년] 위험한 공간으로 국민을 밀어넣는 무모함

윤석열 정부 1년을 말한다 : 환경 분야

후쿠시마 시찰단·용산어린이정원 불신 자초

기승전'원전'·재생에너지 축소 등 막무가내

'녹색성장 기본계획' 사실상 기후위기 대응 포기

2023-05-11     윤정숙 녹색연합 공동대표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 시민언론 민들레는 창간사 첫 마디에서 윤석열 정권 6개월을 '거대한 퇴행의 시대'라고 규정했습니다. 다시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 악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현 상황을 집중 분석하는 '윤석열 정부 1년을 말한다' 기획 기사를 8일부터 닷새간 연재합니다. 12일에는 마지막으로 전문가 좌담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환경기후정책은 예상보다 더 낡고 위태로워 보인다.

자칭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윤대통령의 영업 전략은 퇴행과 역행의 길을 향해 있다. 지난 1년간 펼쳐진 환경기후정책들의 면면을 보면 손에 진땀이 솟는다. 며칠 전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은 “변화의 속도가 느린 부분은 속도를 더 내고, 방향을 수정해야 할 것은 수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더 속도를 내겠다는 신호인가.

‘기승전원전’으로 직진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 윤대통령은 원전업계를 “탈원전이라는 폭탄이 터져 폐허가 된 전쟁터”라며,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리라”고 했다. ‘기승전원전’으로 직진하겠다는 속내를 이렇게 두서없이 뱉어내다니, 본인은 이 말에 담긴 퇴행과 위태로움을 짐작이나 했을까. 이 설화를 수습하는 듯,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 국민들이 안심하실 때까지 “끝까지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오래된 길 무딘 창 들고 돌진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결연한 약속을 지키려면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철학과 정책이 얼마나 치열하고 섬세해야만 한다는 것쯤은 알았어야 했다. 후쿠시마 원전오염수의 해양투기를 ‘원전처리수와 괴담’으로 덮으려는 것과 오염된 땅을 흙과 잔디로 덮어 공원으로 개방한 것은 닮았다.

덮어서 해결하려는 발상은 후쿠시마 오염수와 ‘용산 어린이정원’의 개방과 함께 윤 정부 스스로 불신을 자초한 결정임은 분명하다. 재난영화의 시나리오를 보는 듯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많은 일들, 그 장면들이 서늘하게 그려진다.

외국 군대 주둔 120여년 간 중금속과 발암물질로 오염된 땅을 흙, 잔디와 자갈로 덮어놓고, “국토부와 환경부 공동 환경 모니터링을 통해 안전함을 확인”했다는 정부의 보도자료를 어떻게 믿고 안심하라는 것인가. 이미 수년 전 환경부는 해당 부지들이 토양환경보전법상 공원이 들어설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오염되었다고 공개하지 않았는가.

너무도 뻔한 편법을 써서라도 어린이 날에 맞추어 공원을 개방한 정부를 두고 ‘위험한 공간으로 국민을 초대하는 위험한 정부’라고 한 말은 누가 봐도 적절하지 않은가.

‘기승전원전 정책과 재생에너지 축소, 국립공원과 그린벨트의 개발의 장애물을 걷어내기 위해 조건부 협의와 동의, 제한 완화가 남발되고 있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탈탄소 녹색전환, 지속가능한 사회시스템 등의 개념과 언설은 물론 진부한 수사적 표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낡은 개발주의의와 성장주의 길을 벗어나 전환적 길을 모색하는 거대한 세계적 흐름이 시작되었는데, 정부의 환경기후 정책은 오래 된 길을 따라 무딘 창을 들고 돌진해가는 모양새다. 막다른 골목을 만나기 전에 돌아나와야 한다.

 

414 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14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인근에서 에너지 공공성 강화로 에너지 수요 대폭 감축, 에너지 기업들의 초과 이윤 환수 및 탈석탄·탈핵 추진, 신공항·케이블카·산악열차 건설 추진 중단 등 6대 핵심 요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2023.4.14. 연합뉴스

정부정책으로 한국기업 수조 달러 투자기회 놓칠 것

글로벌 주류 전략이 된 탈원전,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를 정부가 모를 리 없다. EU(유럽연합)와 미국, 일본 등의 산업전략의 기저는 탄소중립이라는 것, 이들 나라 정부가 탄소감축을 위해 대규모 재정투입 등 녹색산업정책을 주도한다는 것, 국제원자력기구(IEA)가 내놓은, 2025년까지 중국, 유럽연합, 미국, 인도 주도로 전 세계 총 전력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38%에 육박하게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모를 리 없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탈탄소기반의 산업전환을 위한 법, 정책과 예산 등을 확보하는 일에 미국 등의 정부는 속도를 내고 있다.

놀랍게도,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보급을 위해 우리 정부가 세운 목표는 기존 30.2%에서 21.5%로 하향되었다. 퇴행과 역행의 회로에 속도가 얹혀진 것이다. ‘에너지 안보 및 탄소중립 수단으로 원전을 적극 활용’ ‘원전생태계 경쟁력 강화’, ‘한미 원전동맹 강화 및 수출을 통해 원전 최강국 도약’이라는 선언은 120개 국정과제 중 3번째로 올려져 있다.

2022년 세계원전산업 현황보고서(WNISR)는 전 세계 핵발전이 10% 미만으로 줄고, 풍력과 태양광은 10.2%로 늘어 핵과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이 역전되었다고 발표했다. 핵과 재생에너지 비중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지표가 정부에게는 무척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축소한 한국 정부의 결정으로 인해 한국기업들은 수조 달러의 투자를 놓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 글로벌 RE100 캠페인 총괄자인 클라이밋그룹 대표 샘 키민스 대표의 경고는 또 어떤가.

화석연료 퇴출, 원전 폐쇄, 재생에너지 확대, 그리고 생태계 보전 등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이 수정되지 않으면 우리들의 삶은 급격히 위태로워질 것이다. 맨 먼저 이를 가장 고통스럽게 겪게 될 사람들은 가난과 불평등의 절벽 위에 선 사람들이다. 이 정부의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23-42)이 ‘기후위기 대응 포기선언’이고, ‘산업계 민원해결계획’이라는 평가를 아프게 들어야 한다.

연도별 탄소감축 목표는 이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27년에 급격히 늘어난다. 현 정부는 임기중 총 감축량의 25%만 감축하겠다고 한 반면 다음 정부는 3년(28-30) 만에 75%를 감축하도록 계획을 짜 놓았다. 어떤 정부라도 해낼 수 없을 이런 비현실적이고 염치없는 계획에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녹색전환과 순환경제, 시민과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없다. 1.5도의 경고와 거버넌스의 기본마저 거의 잊혀진 듯하다.

멸종위기종과 고유종 보호도 열악하여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생명종은 이미 OECD 평균보다 빠르게 사라지고, 늘어가는 개발 및 보호지역 해제로 생태자원이 급속히 손실되고 있다는 보고들은 차고 넘친다.

역행하거나 아예 움직이지 않는 정부와 국회를 뒤로 하고, 세대와 지역을 가로질러 기후행동이 넓게 펼쳐지고 있다. 전환을 요구하는 기후시민, 위기의 증인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퇴행으로 만나게 될 막다른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해 줄 중요한 전제임이 더욱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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