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하버드대 연설장에서 하버드생이 쫓겨난 까닭

김명서 씨, UAE외교참사 비판 전단 돌리자

대통령실 경호처 직원들, 전단 뺏고 내보내

김씨 "윤석열 실험적 외교 계속한다면 고립될 것"

"한국 군사적 접근…노동 인권 유린 우려돼"

2023-05-03     김성진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보스턴 인근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2023.4.29.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보스턴 인근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연설을 하던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하버드대 학생이 윤석열 정권의 '외교 참사'에 대해 비판하는 전단을 행사장에 배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하버드대생은 대통령실경호처 소속 직원으로 추정되는 남성들에게 전단지를 압수당하고 행사장에서 쫓겨났다.

3일 현지 동포들과 하버드대생 등에 따르면 하버드대 수학과 4학년 학부생 김명서(23) 씨는 지난달 28일 윤 대통령의 연설이 예정됐던 하버드 케네디스쿨 JFK 주니어 포럼에 오후 4시쯤부터 입장해 전단을 배포했다. 김 씨가 배포한 전단은 윤 대통령이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당시 아크부대에서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그는 행사장 위층부터 준비한 전단지 50장을 돌렸는데, 대통령실경호처 직원으로 추정되는 관계자들이 다가와 전단을 보고 싶다며 접근했다. 이에 김 씨가 무시하고 계속 전단을 돌리자 이동을 제지하고 밖으로 내보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김 씨의 옷깃과 팔을 잡았지만, 김 씨가 자진해서 나가겠다고 밝혀 별다른 충돌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남은 전단지도 모두 압수해갔다.

김 씨는 이후 케네디스쿨 앞 거리에서 동포들이 진행하는 '윤석열 퇴진 집회'에 즉석에서 참가해 전단 내용을 발표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UAE 적은 이란' 발언과 관련해 "중동 지역 국가의 위험성 또는 공격성을 공표하는 것은 냉전 시기 미 정부와 언론이 참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흔히 사용해온 반공 선전과 유사한 수법"이라며 "한국과 북한의 관계를 적국 관계로 단순화하는 것도 염려된다"고 밝혔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보스턴 인근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주제로 연설하던 중 단상에서 내려가 6·25 참전용사인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유족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2023.4.29. 연합뉴스

집회에는 뉴잉글랜드한반도평화캠페인, 보스턴촛불행동, 매사추세츠평화행동 등 3개 시민 단체에서 동포 50여 명이 참가했으며, 미국 시민들도 동참했다. 김 씨를 비롯한 집회 참가자들은 윤 대통령이 케네디스쿨을 떠날 때까지 "Warmonger 윤석열(전쟁광 윤석열), Union Buster 윤석열(노조 파괴자 윤석열), Shame Shame 윤석열(윤석열은 부끄러워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김 씨는 이날 <시민언론 민들레>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전단을 배포한 계기에 대해 "이번 학기에 '이슬람과 현대 무슬림 사회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고 있다"면서 "이 수업에서 미국이 중동 지역에 끼친 정치적 영향에 대해 공부하며 처음으로 미국의 냉전, 프록시전(대리전) 체제를, 한국인으로서 익히 들어온 한국전쟁 또는 베트남전쟁 밖의 맥락에서 보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전단 내용을 통해 가장 알리고 싶었던 것은 윤 대통령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은 중동 국가들 간의 종교, 인종 등 다양한 문제가 얽힌 복잡한 맥락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고 이들의 자주적 정치·외교를 무시한 냉전 체제 미국의 외교·군사 정책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라며 "대통령이 이 모든 맥락을 알고 의도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의 정치적 맥락에서 이러한 발언이 전달하는 메시지와 이런 형태의 외교의 역사적 뿌리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전단을 함께 준비한 한국인 친구는 따로 없었다. 이 때문인지 전단을 돌릴 당시 자신감이 부족하기도 했다"면서도 "시위 중인 동포 분들께서 윤 대통령이 미국의 '퍼핏'(puppet·꼭두각시)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으며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것을 보고 느끼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28일(현지시간) 보스턴 인근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앞 거리에서 진행된 동포들의 윤석열 항의 시위에 참가한 하버드대생 김명서(오른쪽) 씨가 발언하는 모습. 2023.5.3. 매사추세츠평화행동 사회관계망서비스 갈무리

또한 김 씨는 "자국의 핵 무기 언급이나 군사 개입 등은, 미국이 오바마를 기점으로 지난 십여 년간 보여준 군사정책과 그 방향이 동떨어져 있다"며 "윤 대통령이 이러한 실험적인 외교를 계속한다면 미국 외의 국가들로부터 고립될 뿐 아니라 미국조차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데 주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세계대전 징병 당시 흑인들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 자신들의 지위와 인권이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귀환 이후의 생활고가 전쟁보다 더 괴로웠다는 증언이 있을 만큼, 그 기대는 만족되지 않았다"며 "이에 (미국에서는) '영토 밖의 전쟁 말고 국민들의 삶의 질에 집중하라'는 목소리가 모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맥락으로, 군과 관련된 역사적, 사회적 상처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군의 전사적 목적에만 집중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노동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현 시국에는 더욱 그렇다"고 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미국은 핵공유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점에서 이번 회담의 실효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윤 대통령 방미 기간 미국 현지에서는 보스턴뿐만 아니라 워싱턴DC에서도 동포들의 윤석열 퇴진 시위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기성 언론에는 단 한 줄도 소개되지 않았다. 미국 현지 동포들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오후 4시 윤 대통령 부부가 방문한 워싱턴DC 콘래드 호텔 앞에서 '매국정권, 가짜보수 윤석열 정권 퇴진 워싱턴 집회'를 열었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26일 오전 10시에는 백악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김명서 씨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이 예정된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배포한 전단 내용. 2023.5.3. 김명서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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