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대법판결 무시한 윤 정부, 일본과 한통속' 비판

이코노미스트 기고, 일본두둔 미국도 경고

일본의 만행에 대한 한국인 집단기억 무시

그런 일본 끼워넣으면 원한 불러 판 깰 것

일본 과거 인정하고 사죄해야 새 길 열려

2023-04-26     한승동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2023.04.26. AP 연합뉴스

강경화 전 외무장관이 과거 침략과 식민지배의 만행을 덮어 둔 채 진행하는 한일관계 ‘정상화’는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런 일본을 사실상 두둔해 온 미국이 주도하고 윤석열 정부가 앞장서고 있는 한미일 3각 안보협력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시했다.

일본 두둔 미국에도 경고

강 전 장관은 25일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기고문(‘한국은 미국·일본과의 관계에서 시험에 직면해 있다고 전직 장관이 말한다’)에서 과거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그대로 둔 채 맺는 한일관계나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는,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한국인들의 일제 만행에 대한 집단기억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는 “순진하고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강경화는 국가가 더 단호한 입장을 취할 권리를 얻었다고 믿는다’는 부제를 단 이 글에서 강 전 장관은 ‘신뢰’라는 말을 연결고리로 삼아 최근 폭로된 한국 국가안보실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사건과 한일관계 변화를 거론하면서, 특히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에 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한 정부의 조치를 비판적으로 언급했다. 강 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양국 정상이 도청문제로 불거진 신뢰손상을 무마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재선을 겨냥한 바이든 정부의 차별적인 보호무역주의 조치로 인한 양국간 경제적 알력도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한국정부가 더 분명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고 ‘K팝 현상’에서 보듯 활기찬 문화강국이 된 한국은 그럴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서, 민주주의 국가 한국의 그런 자신감과 성장하는 하드 및 소프트 파워를 인정하고 활용하는 것이 한미동맹 강화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 범죄사실을 인정하지도 사죄하지도 않는 일본을 그 대로 둔 채 새 판을 짜려고 하면 원한을 불러일으켜 그 판이 깨질 수도 있음을 시사하면서, 그런 일본의 문제를 지적하고 배상을 명한 대법원 판결을 무시해 버린 윤석열 정부를 ‘한통속’이 됐다고 강 전 장관은 비판했다. 그는 그런 일본을 두둔해 온 미국에 대해서도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일 제12차 안보 정책협의회 이른바 '2+2(외교·국방) 외교·안보 대화'에 일본 측 대표 후나코시 다케히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안도 아츠시 방위성 방위정책 차장이 참석해 있다. 우리 측 대표는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우경석 국방부 국제정책 차장이 참석했다. 이날 한일 안보정책협의회는 지난 달 한일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5년 만에 재개된 것이다. 2023.4.17. 연합뉴스

강 전 장관의 그런 생각들이 잘 드러나 있는 <이코노미스트> 기고문 뒷 부분을 그대로 번역해서 싣는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여전히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분열이 있고 반대자들은 소란스럽다. 일본을 그 판에 끼워 넣으면 반드시 원한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한미일 3각 안보협력 강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군사적 힘의 과시와 관련된 모든 것은 잔인무도한 식민지배자이자 침략자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여전히 펄펄 살아 있는 집단기억에 주의해야 한다. 이 깊은 민심의 저류를 외면한 채 한일‘동맹’을 이야기하는 것은 순진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미국은 일본이 과거(의 잘못)를 사실대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대체로 묵인해 왔다. 일본의 지금 세대 정치 지도자들은 역사 수정주의에 빠져 진심으로 사과하기를 꺼리거나 할 수 없는 것 같다. 과거 한국에 대해 저지른 잔인무도한 만행의 흔적을 조직적으로 지우면서, 살아남은 희생자들의 고통과 한국 국민들이 옳지 못하다고 느끼는 감정을 계속해서 악화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한일 간의 신뢰는 기껏해야 깨지기 쉬운 상태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일본이 성숙한 민주주의와 책임 있는 글로벌 리더로 진화하는 것도 가로막고 있다. 최근 대법원 판결을 무효화하려 한 한국정부의 움직임은 불행하게도 이런 패턴에 한통속이 된 것이다.

유감스런 일이다. 많은 가치와 문화적 코드를 공유한 이웃이자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일본은 협력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 그 잠재력이 역사에 의해 짓눌리고 있다. 일본이 과거를 완전히 그리고 정직하게 받아들일 때 그 압박은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두 이웃 간에 그리고 아시아 전체에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신뢰를 조성할 것이며, 이는 틀림없이 미국과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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