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최대 무역적자' 기로에 선 일본 경제…한국은 다를까

작년 일본 무역적자 215조 원…한국도 폭증 추세

근본 원인은 제조업 경쟁력 약화…적자 지속될 듯

한국, 쇠락한 일본 제조업 전철 밟지 않을까 우려

일본 정부 전략 부재, 판단 미스…윤 정부 닮은꼴

2023-04-22     한승동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일 일본 도쿄 아모이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수출품을 채운 컨테이너들을 대형 컨테이너선에 싣고 있다. 이날 일본 재무성은 지난해 일본의 무역적자가 21.7조 엔으로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23.04.20. EPA 연합뉴스

일본의 지난해 무역적자는 21조 7284억엔(약 215조 7천억 원. 같은 기간 한국의 무역적자는 약 60조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월별 무역적자도 지금까지 20개월 연속 적자 기조를 이어가며 일상화하고 있다. 해외로부터의 송금 등 소득수지가 늘어 전체 경상수지는 여전히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무역적자 증대의 밑바탕에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가 자리잡고 있어서 경상수지 흑자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전망과 함께 일본 경제가 큰 기로에 서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아사히신문 4월 21일)

지난해 일본은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나 수입액 역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출액은 전년도에 비해 15.5% 늘어난99조 2264억엔이었다. 자동차 수출액이 28.0% 늘어나는 등 수출도 크게 늘었으나 수입이 더 많이 늘어, 전년도 대비 32.2% 늘어난 120조 9549억 엔을 기록했다.

원전 사고 뒤 무역적자, 우크라전쟁으로 폭증

일본은 제2차 석유파동(위기) 뒤인 1981년부터 계속 무역흑자를 이어오다가 적자로 돌아선 것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등의 원자력발전소 가동이 중단되고 그 대체수단인 화력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높아지면서다. 그 때문에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이 많이 늘어 2013년도까지 무역적자도 크게 늘었다. 2013년도의 무역적자액은 13조 7563억 엔으로 그때까지 사상 최대였으나 지난해 무역적자액은 이보다 약 8조엔(약 79조 원)이나 더 늘어난 것이다.

이런 구조는 에너지 자급률이 낮은 일본에서 계속 이어졌으며,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치솟은 세계적인 인플레로 에너지 수입대금이 급증하면서 무역적자 폭을 크게 벌렸다. 지난해 원유 수입은 양적으로는 6.8% 늘었으나 금액은 70.8%나 늘었다. 약세화한 엔 기준 원유수입 단가가 사상최고치였다. 물량 기준으로는 약간씩 줄어든 석탄과 액화천연가스 수입이 금액 기준으로는 각각 139.5%, 77.6%씩 늘었다.

 

 20일 도쿄 아모이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수출 컨테이너들을 선적하고 있는 타워 크레인 아래로 크레인 운전자가 걸어가고 있다. 2023.04.20. EPA 연합뉴스

생산거점 해외 이전 등으로 제조업 수출 약화

수출은 일본 산업구조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큰 폭의 무역흑자가 이어졌던 1980년대에는 수출로 너무 많은 흑자를 내는 일본에 대한 미국의 비판 때문에 자동차업체 등을 중심으로 생산거점을 해외로 대거 이전했다. 거품경제가 무너진 뒤인 1990년대에는 수출에 불리한 엔 강세 때문에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했다. 같은 시기에 가전업체 등 일본의 주력 제조업의 쇠퇴도 시작됐다.

2022년도 수출품목들을 환율수준이 비슷했던 1991년도와 비교하면, 자동차 수출금액은 7조 5021억 엔에서 13조 7351억 엔으로 늘었으나 수출대수는 611만 대에서 516만 대로 오히려 줄었다. 텔레비전 등 음향, 영상기기 분야 수출은 특히 많이 줄어 당시의 2조 8353억 엔에서 지난해는 7795억 엔으로 4분의 1정도로 줄었다. 이는 한국, 중국 등 이웃 나라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탓이 크다.

2015년을 100으로 놓고 산출하는 수량지수를 보면 2022년도 수출은 97.7, 전년도 대비 신장률은 –3.9%였다. 여기에는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의 제로 코로나정책과 반도체 부품 공급망의 혼란 등이 영향을 끼쳤다.

"당분간 큰 폭 무역적자 이어질 것"

이에따라 ‘수출로 돈 버는 일본’은 옛말이 돼 가고 있으나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소득수지’ 등을 더하면 전체 돈의 입출을 나타내는 ‘경상수지’는 아직도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도요타, 혼다 등 자동차 업체와 상사 등의 해외 자회사에서 들어오는 이익과 배당금 등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큰 폭의 무역적자가 일상화하면 경상수지 흑자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다이이치 생명경제연구소의 오시바 지사토는 “자원 가격 강세, 엔 약세는 이제 어지간히 가라앉았으나 향후 구미의 금융 긴축정책 영향으로 세계경제 감속이 예상되는 만큼 수출은 계속 늘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당분간은 큰 폭의 무역적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0일 일본 도쿄의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장에 나온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타이 대표는 미국은 중국과의 경제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23.04.20. AP 연합뉴스

무역수지 적자 근본 원인은 제조업 경쟁력 약화

그러나 경제평론가 가야 기이치의 분석과 전망은 더 어둡다.

그는 엔 약세가 진행되는 가운데 에너지 등 자원 가격이 치솟고, 원전마저 가동 중단돼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이 증대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니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락한 것을 일시적인 요인이라고 보는 견해를 흔히 듣는다면서, “확실히 일련의 사태들이 돌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를 주요 원인으로 보는 그의 다음과 같은 진단은 설득력이 있다.

“그 배경에는 일본 업체들의 경쟁력 저하가 자리잡고 있고, 이제까지 국내(일본)에서 생산해 오던 제품들도 많은 것을 수입에 의존하게 된 영향이 있다. 가장 알기 쉬운 예로, 스마트폰을 들 수 있는데, 지금은 거의 모두를 해외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에서 소비되는 가전의 다수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이것은 일시적인 요인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는 구조적 변화다. 무역수지에 대해서도 이런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최종적인 수지인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하고 있으나 경상수지의 약 절반은 해외로 옮겨간 현지법인에서 얻는 이익이나 배당이다. 따라서 형태를 바꾼 수출이니만큼 영속성이 없다.

경상수지 적자가 되면 국내의 자금부족을 해외에서 빌린 돈에 의존하게 되므로 일본경제의 상황은 일변한다. 우리는 큰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아사히신문 4월 21일)

냉철한 진단이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에서 바이어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2023.4.12. 연합뉴스

한국은 다를까

일본에 비하면 한국의 가전 등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아직까지는 일본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어서, 한국 역시 피하지 못하고 있는 대규모 연속 무역적자의 원인을 일본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는 없으나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상대적 우위를 보이고 있는 제조업 분야에서도 중국이나 동남아 쪽의 추격이 거세 이대로 가면 시차를 두고 일본과 비슷한 경로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 한국이 상대적 강세를 보이는 분야도 중국의 추격속도가 빨라지는데다 미국과 일본, 유럽의 자국 우선주의 풍조와 견제가 강해지면서 쇠락한 일본 제조업의 전철을 밟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일본 가전과 반도체의 쇠락에는 기업들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의 전략 부재와 판단 미스, 늑장 대응 등도 한몫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그런 일본을 본받아야 할 모델로 여기는 듯한 행태를 보여 온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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