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몽니에…46년 숙원 간호법 또 상정보류

고령화 따른 지역 간호수요 시급한데

의사협회 입법반대 총파업 예고에

여야 3당 동시발의, 합의안인데도

김진표 의장 "추가 논의" 명분 처리미뤄

2023-04-14     민병선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간호협회 회원 등이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4.13 연합뉴스

의사들이 반대하면 진전은 없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이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하겠다고 예고했던 간호법 제정안이 보류됐다.

명목은 김진표 국회의장의 반대였다. 김 의장은 “정부와 관련 단체 간 협의가 진행되고 있어서 여야 간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간호법 대안은 다음 본회의에서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장석에서 김 의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항의의 뜻으로 본회의장에서 일제히 퇴장했다. 간호법 처리는 4월 여야가 합의한 다음번 국회 본회의 날짜인 27일로 넘어갔다.

의협, 간호법 반대 명분 빈약해

간호법은 그동안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된 사안이다. 더 미룰 이유가 없다. 대한간호사협회(간협)로서는 46년 된 숙원이다. 간협은 1977년 법제정에 시동을 걸었다. 1998년 법 제정을 위한 연구용역 거치고 2003년 서명 운동을 진행해 2005년 17대 국회에서 법이 발의됐다. 열린우리당 김선미 의원, 새누리당 박찬숙 의원 등이 발의에 참여했다. 2019년에는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 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각각 발의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폐기됐다. 그러다가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3당이 법 제정 추진을 약속했고, 2021년 3월 여야 3당이 동시에 법안을 발의했다.

입법 취지를 보면 법의 필요성에 수긍이 간다. 인구 고령화 추세에 따라 필요성이 제기됐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우리 사회는 2026년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고령인구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의료 및 간호 서비스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의료 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21만 5817명에 이른다. 장기요양기관·학교·지자체 등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도 3만 5000여명이다. 하지만 현재 의료법에는 이들이 지역사회 등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간호행위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간호법은 이런 문제를 법으로 정립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들과 다른 보건의료 단체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의협과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16일 오후 2시 서울시청 일대에서 간호법 반대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어 실력행사에 나설 예정이다. 법 통과 시 집단 휴진도 예고하고 있다.

법의 내용을 보면 의협의 반대를 납득하기 어렵다. 간호법은 주요 내용으로 △간호사·전문간호사·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국가·지자체 지원 △간호사의 권리와 책무 △병원급 의료기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등을 담고 있다.

의협 등 의사단체들은 이 법의 1조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문제 삼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간호사가 지역에서 의사 없이 병원을 차리는 단독 개원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간협은 의사들의 주장을 일축한다. 간호법 어디에도 간호사가 단독 개원할 수 있는 조항이 없으며, 현행 의료법에도 간호사가 의료 기관을 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입법 과정에서도 의원 발의안은 10조에서 간호사 업무 범위에 대해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고 규정했지만,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현행 의료법과 같은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바뀌었다.

 

의사들의 파업 당시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환자가 의사들이 벗어놓은 가운 앞을 지나고 있다. 2020. 8.26 연합뉴스

보건의료 정책, 매번 의사들 눈치보기

의협 등이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간호사들이 의사들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싸움의 이유는 이익 다툼이고, 이에 따라 국민의 보건의료 서비스 확대라는 시대적 요구는 뒤로 밀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협 관계자는 시민언론 민들레와의 통화에서 “간호법이 통과돼도 의사들의 수익에는 지장이 없다. 의사들이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을 간호사들이 맡아주면 국민의 의료혜택이 늘어나는 것은 자명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보건분야에서는 유독 정부와 정치권이 정책 조율과 입법 등 기능을 못한다”며 “이는 이 분야의 가장 강력한 집단인 의사들의 로비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의사들 눈치를 보고 있다. 여당은 11일 법안 내용 가운데 ‘지역사회’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중재안으로 제안했으나 민주당이 거부했다. 여당이 입법 발의 과정에서 참여하고도 의협의 반대 이유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의협은 법이 통과되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호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기간에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에 힘을 싣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거부권 행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보건복지부도 간호법에 반대한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올해 2월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간호법은 의료법 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협의했으면 한다”라고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보건의료 정책을 결정, 조정할 때마다 복지부와 정치권은 의사들 앞에 작아졌다. 문재인 정부도 의대 정원 확대를 시도했지만 의사들에게 완패했다. 17년째 동결된 의대 정원을 2021년 3058명→2022년∼31년 3458명으로 늘리려고 했다. 전체 의사 중 60대 이상 비율이 14%일 정도로 의사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2035년이면 의사 수가 2만7000명 넘게 부족할 것이라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의사들의 집단 진료 거부로 계획은 중단됐다. 의대생들은 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의사 국가고시(국시)를 집단 거부했다. 정부는 더 이상의 추가 접수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2021년 초에 국시를 상, 하반기로 나눠 두 차례 시행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슬그머니 물러섰다.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 2700여 명에게 추가 시험의 기회를 준 것이다. 당시 의대생들의 재시험에 대해 “이익을 지키는 투쟁수단으로 포기해 버린 권리와 기회를 또 다시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특혜 요구”라는 강한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의협의 집단 행동 사례는 여러 차례다. 2000년에는 의약분업에 반대해 9차례의 전국 집회와 5차에 걸친 파업을 벌였다. 2007년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해 대규모 휴진과 집회 등을 벌였다. 개정안은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 17대 국회에서 회기 종료로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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