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도청] 미국의 뿌리깊은 한국관 ‘불신과 경멸’

〈환구시보〉 "첩보활동 최대 피해자는 한국"

민감한 지정학적 지위와 불평등관계 탓

파이브 아이즈 중심, 한국은 주변부 등급

〈가디언〉 "확인된 유출문건은 빙산의 일각"

2023-04-11     한승동 에디터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10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밀 문건 온라인 유출 의혹에 관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앞서 지난 6일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매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과 관련된 기밀 문건이 온라인상에서 유출되면서 국방부가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2023.04.11. EPA 연합뉴스

지금까지 드러난 한국 등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정보수집 첩보활동 온라인 유출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으며, 이로 인해 미국이 입게 될 손실은 예상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고 <가디언>이 10일 보도했다.

 

11일 오후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안전사회시민연대 등이 우리 정부를 도청한 미국을 규탄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레드카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4.11. 연합뉴스

워싱턴의 뼛속 깊은 한국 불신과 홀대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미국의 불법적인 감시도청이 드러났음에도 한국정부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면서, 이는 한미 간의 불평등한 관계와 함께 “한국의 자주적 의지와 권리에 대한 워싱턴의 뼛속 깊은 불신과 홀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또 ‘한국이 감시당하는 느낌을 좋아할 리 없다’는 제목의 사평(사설)에서 양지에서 발견된 바퀴벌레 한 마리는 보이지 않는 음지에 1천 마리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는 속담까지 인용하면서 이번에 드러난 동맹국에 대한 감시도청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아래에 <환구시보> 사설 전문 번역문 붙임)

 

11일 오후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안전사회시민연대 등이 우리 정부를 도청한 미국을 규탄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레드카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4.11. 연합뉴스

확인된 유출 문건은 ‘빙산의 일각’

<가디언>은 지난 2월 23일 날짜가 적힌 유출 기밀문건 가운데 하나는 지금과 같은 탄약소비가 계속될 경우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옛 소련제 S-300 방공미사일이 5월 2일쯤에 고갈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번 유출로 미국이 입게 될 손실이 훨씬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 속에, 지난 주말 유출 사실을 알게 된 바이든 대통령이 계속 상황 보고를 받고 있다고 존 커비 미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유출된 문건 내용의 정확성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나, 미 국방부는 9일 성명을 통해 “민감하고 기밀 등급이 높은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문서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문서가 처음 유출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라며, 올해 3월 초까지 유출된 것으로 확인된 문서들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자료는 원래 20명이 사용하는 ‘터그 셰이커 센트럴’이라는 서버에 올려졌으나, 2월부터 루카라는 10대 유튜버가 필리핀인이 운영하는 ‘와우마오’라는 더 큰 서버에 107건의 문서를 포스팅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서버 사용자들은 원래 업로드된 문서들에 비하면 와우마오에 포스팅된 파일들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커비 조정관은 “우린 무엇이 유출됐는지 모른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애초에 포스팅하려 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지켜보면서 모니터링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최종 조율을 위해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김 1차장은 이날 출국 전 기자들과 만나 "오늘 아침에 양국 국방장관이 통화를 했고 양국 견해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2023.4.11. 연합뉴스

파이브 아이즈 동맹의 악몽

아래에 <환구시보> 4월 10일 사평(社評) ‘한국이 감시당하는 느낌을 좋아할 리 없다’의 전문을 번역해서 싣는다. 한국정부가 미국의 불법 감시도청에도 속수무책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는 이유를 한미 간의 불평등 관계, 한국에 대한 워싱턴의 뿌리깊은 불신과 경멸에서 찾고 있는 <환구시보> 사설은 단순명쾌하지만 편히 읽히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이 같은 앵글로색슨계의 중심부 이너서클인 ‘파이브 아이즈’와 주변부인 한국의 신뢰도(국격)에 등급을 매기고 차별적인 대우를 하고 있다는 대목은 더욱 그렇다. 사설은 이번 미국 국방부 기밀문건 유출사건이 동맹국일지라도 주변부인 한국 같은 낮은 등급의 국가에는 공유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던 핵심적인 기밀정보가 새어나가 일반에 공개돼 버리는 바람에 큰 피해를 보게 될 집단이 이너서클이라며 이를 “파이브 아이즈 동맹(연맹)의 악몽”이라고 했다. 하지만 동맹국 중에 가장 큰 피해를 볼 나라는 한국이라고 사설은 지적했다.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관영 매체가 평소 친미적이라고 비판해 온 한국정부와 미국을 겨냥해 쓴 글이어서 편향이 없을 수 없겠지만,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국이 감시당하는 느낌을 좋아할 리 없다

미국 국가안보와 관련된 새로운 기밀문서가 한 무더기 유출돼 워싱턴은 지난 이틀 동안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미국 간첩(첩보)활동의 내밀한 운영은 뜻밖에도 이 보기 드문 창이 열리는 바람에 미국이 러시아에 깊숙이 침투해 있을 뿐만 아니라 동맹국에 대해서도 감시 와 도청을 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온라인에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적어도 두 건의 한국 내부 토론이 미국 정보요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도청됐다. 속담에 이르기를, 밝은 곳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발견됐다면 어두운 곳에는 발견되지 않은 바퀴벌레 1천 마리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밀 유출은 미국의 "본체"(眞身)가 매우 불결해서 조금만 노출되면 더러운 오물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올 것임을 말해준다. 이것은 미국 한 집안의 꼴불견이요 떳떳하지 못한 도덕성일 뿐만 아니라 미국 동맹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사귀어야 할 것인지와 관련된 중대한 ‘공적인 일’(公事)이다.

한국 대통령실은 9일 오후, 선례와 다른 나라의 상황을 참고해 대책을 강구하기로 하고, 도청 문제에 관해 미국과 '필요한 소통'을 하겠다고 밝혔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여론에 대해 얼버무리는 것에 가깝고, 동시에 미국의 불법 감시행위에 대한 한국정부의 속수무책의 무대책과 무력을 반영한다.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한국은 미국 간첩(첩보) 감시활동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한국의 민감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관계에서 한국이 불평등한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한국의 자주적 의지와 권리에 대한 워싱턴의 뼛속 깊은 불신과 홀대(경멸)를 반영한다.

1년여 전인 2021년 10월 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한국에 대한 첩보수집을 위해 서울에 비밀 사무소를 설치한 사실이 드러나 한국 사회가 떠들썩했고, 한국민중은 미국에 크게 분개했다. 하지만 그 일은 결국 흐지부지 됐다.. 지난 몇 년 간 미국이 동맹국들과 심지어 세계를 불법적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다양한 폭로뉴스가 끊임없이 나왔고, 그 중 많은 부분이 분명한 근거가 있었지만, 미국은 조금도 자제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해명하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오늘날 미국은 이른바 자국의 '국가안보'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으로 대응하지만, 다른 나라의 안보를 해치는 데에는 갈수록 전혀 개의치 않게 됐다.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이런 무지막지한 태도는 복잡한 고려 끝에 나온 내버려 두기 또는 눈감아 주기에서 비롯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제멋대로 굴면 모든 사람의 이익을 해칠 것이다. 반대로 국제 질서와 정의를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동맹국이 반대하고 항의하는 것은 여전히 미국에 유효하다. 원칙을 지키면 존중을 받지만, 호랑이의 앞잡이가 되면 결국 호랑이한테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국제 관계의 역사와 현실은 그런 경험과 교훈을 이미 많이 제공했다.

습관적으로 정보기관을 이용해 다른 나라를 감시하는 것 외에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이후 점점 더 진위를 구별하기 어려운 정보를 유통시키거나 아예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고의적으로 이용해 다른 나라들을 전략적으로 협박해 왔다. 올해 2월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믿을 만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언론에 대해 최신 뉴스라며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고, 바이든 정부도 G7 동맹국들이 중국에 대한 제재를 논의하도록 하는데 이를 이용했다. 그러나 3월 말에 블링컨은 "중국이 모스크바에 치명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전혀 근거 없는 협잡 행위는 미국이 정보공작을 할 때 무제한의 조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층 더 분명하게 폭로했다.

미국 고위 정보 관계자는 이번의 기밀정보 유출이 "파이브 아이즈 동맹의 악몽"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는 숙고해 볼만한 많은 뒷얘기들이 있다.

첫째, 미국은 패거리를 짜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큰 원과 작은 원에 만들었는데, '5안(五眼, Five Eyes.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앵글로색슨계 5개국)연맹'은 핵심적인 작은 원에 속하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속한다. 미국이 매기는 신뢰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주변부로 갈수록 단계적으로 낮아진다.

둘째, 까놓고 얘기하면 핵심적인 작은 원(이너서클)이 함께 더러운 일(궂은 일)을 할 수 있는데, 그들이 하는 더러운 일과 이 작은 서클에서만 공유하는 비밀이 유출됐기 때문에 "파이브 아이즈 연맹의 악몽"이라고 했다.

셋째, 유출사건으로 미국 동맹체제의 신뢰성에 난 균열이 더 커졌다.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반응은 무덤덤하지만, 감시당하는 느낌을 좋아하거나 즐길 리는 없다.

힘의 원칙을 신봉하는 미국이 정보를 협박과 협잡의 도구로 이용할 때 동맹국에 대해서보다는 이른바 강대한 '적대국'에 대해 더 마음이 관대해지고 부드러워진다는 사실이 다시한번 입증됐다. 악명 높은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이 정보기관의 거짓말, 기만, 도둑질을 "미국의 영광"이라고 칭찬한 것에서부터 동맹국, 적대국, ‘적’ 스캔들에 대한 미국의 무제한의 도청이 다시 폭로된 것에 이르기까지, 정보기관은 이미 미국식 패권의 가장 사악한 표지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것은 국제사회를 분노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들도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것처럼 고통스럽게 했다. 어느 쪽이든 대미(對美) 인식에 필요한 일종의 각성과 업그레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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