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유엔사] 일본 후방기지, 가공할 군사력 동원 가능
핵심 전력, 주일 유엔사와 7개 후방 기지에 집결
'두 얼굴’ 유엔사, 정전 관리와 전쟁 준비 동시에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유엔군 SOFA’
유엔사 일본 잔류는 미국의 기지 영구 사용 장치
UNC 법적 성격, 미국 주도 다국적군 통합사령부
전쟁 전야를 방불할 만큼 한반도 정세가 악화하고 있다.
한미의 역대급 연합연습, 뒤이은 군사훈련들과 북한의 반발성 무력 시위가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급기야 27일 미국의 니미츠 핵추진 항공모함이 동해에 출격했고, 북한도 기다렸다는 듯 동해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두 발을 또 발사했다.
한반도 전쟁 우려가 확산되면서 '일본 주둔 유엔사령부'(UNC-Rear‧후방 유엔사)가 새로이 조명받고 있다. 평택 캠프 험프리에 본부를 둔 유엔사(UNC)의 하부 조직인 '주일 유엔사'는 한반도 유사시 한국전 참전국인 파견국들(Sending States)의 병력과 장비를 원활하게 유엔사에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이 지켜지는 평시에는 일본 내 후방 기지에 파견국 병력의 이동과 작전을 지원한다. 전쟁 준비를 하는 하부 조직이다.
핵심 전력, 주일 유엔사와 7개 후방 기지에 집결
주일 유엔사는 전략적 가치가 높은 7개 후방 기지를 관할한다. 일본 본토에 요코다(공군)와 요코스카(해군), 자마(육군), 사세보(해군) 등 4곳이 있고, 오키나와에 가데나(공군) 화이트 비치(해군) 후텐마(해병대) 등 3곳이 자리 잡고 있다. 본부는 요코다 공군기지에 있다.
평택 유엔사 본부가 미국과 호주 등 8개국 요원들로 이뤄진 합동참모 조직과 군사정전위원회(MAC),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 의장중대 등 소규모인데다가, 평시에는 정전협정 관리에 치중하는 등 그동안 역할이 축소돼온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유엔사는 '북한군 격퇴와 한반도 평화회복'을 권고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83호와 84호에 근거해 1950년 7월 27일 도쿄에서 창설됐다. 법적 성격을 두고 여러 견해가 있지만 그 본질에서 유엔의 공식 조직이 아닌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 통합사령부(The Unified Command)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까지 총 22개국이 전투 병력과 의료부대를 지원했다.
1954년 일본 주둔 유엔군 지위협정, 9개국 서명
유엔사는 1957년 7월 본부를 도쿄에서 용산으로 이전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잔류 부대를 가지고 하부 조직인 주일 유엔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일본 내 7개 후방 기지 관리와 작전, 그리고 파견국 정부들과의 협력 등의 임무를 맡겼다.
유엔사에 따르면,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서명할 당시 일본은 유엔사를 주도하는 미국과 한국 방어를 위한 일본 주둔 유엔사 병력에 대한 지속적 지원을 허용하는 각서(요시다-애치슨)를 교환했다.
각서 교환 과정을 거쳐 1954년 2월 19일 도쿄에서 미국 등 유엔사 파견국들과 일본 간에 주둔군지위협정(SOFA)이 체결됐다. 정식 명칭은 '일본 주둔 유엔군 지위 협정'(the Agreement Regarding the Status of the United Nations Forces in Japan)이다. 이 협정에 서명한 유엔사 파견국은 호주, 캐나다, 프랑스,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튀르키예, 영국, 미국(알파벳순) 9개국이다. '주일 유엔군 지위 협정' 체결 때 유엔사 후방 기지 관련 내용도 담겼다.
이 협정은 유엔사에 다섯 가지 의무를 부과한다. △ 유엔사는 일본에 주둔해야 한다 △ 주일유엔사(UNC-Rear)는 다국적이어야 한다 △ 미국과 일본은 상호 협의를 통해 유엔사 파견국이 사용할 기지들을 지정해야 한다 △ 유엔사 지정 기지들은 유엔기를 달아야 한다 △ 주일 유엔사는 유엔사 파견국이 사용할 수 있도록 기지를 가동하고 있어야 한다 등이다.
유엔사 일본 잔류는 미국의 기지 영구 사용 장치
유엔사의 일본 주둔이 가장 핵심적 요건이다. 미국이 유엔사 본부를 한국으로 이전하면서 몇 명에 불과한 주일 유엔사 조직을 남겨 놓은 것도 그래서다. 주일 유엔군 SOFA 제15조에는 “이 협정과 개정협정은 모든 유엔사 병력이 일본에서 철수한 그날 종료된다”라고 돼 있다. (위키피디아 참조) 일본 내 7개 후방 기지를 계속 사용하려는 미국의 궁여지책이다.
주일 유엔사는 일본의 후방 기지들을 미국이 영구적으로 사용하는데 필요한 SOFA의 요건을 맞추려는 법적 장치란 얘기다. 협정 만료 시 7개 기지는 모두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다.
미국이 유엔사 해체에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이 문제와 연관시키는 시각도 있다. 다 알다시피 유엔총회는 1975년 유엔사 해체를 결의였다. 이듬해인 1976년 1월 1일이 시한이었다. 안보리가 권고했던 '북한군 격퇴와 한반도 평화회복'이라는 유엔사의 초기 임무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로 실현됐다고 볼 수 있어서다.
미국, 유엔사 해체 거부…군사적 실체 복원 주력
그러나 유엔사를 주도해온 미국은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CFC)를 창설하고 유엔사의 작전통제권을 CFC에 넘겼을 뿐이다. 유엔사가 해체되어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주한미군의 주둔과 한미연합사의 작전통제권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데도 역할을 축소하고 규모를 줄이면서까지 유엔사 고수 입장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유엔사를 해체한다면 일본 내 후방 기지에 주둔할 법적 근거가 없어진다는 점을 고려했음 직하다.
전작권 전환 문제와 맞물려 2014년 버락 오바마 정부 때 미국이 본격화한 '유엔사 재활성화'(UNC Revitalization) 작업은 유엔의 군사적 실체를 다시 복원하려는 시도였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미국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유엔사 강화 작업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 간, 북미 간 화해 무드가 확산되면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작업의 첫걸음으로 종전선언을 검토하고 이와 맞물려 시민사회 중심으로 유엔사 해체 목소리가 분출됐을 때도 미국은 매우 부정적 태도를 견지했다. 그런 행동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유엔사 후방 기지, 가공할 군사력 동원 가능
'치외법권 지대'인 유엔사 후방 기지의 전략적 가치는 특히 전시에 급격히 올라간다. 한반도에 전개될 유엔사 파견국 병력의 병참기지와 이동 및 잠정 주둔지로 역할을 하게 된다. SOFA에 따르면 주일 유엔사는 전시에 한국으로 이동할 파견국 병력을 일본 정부와 협의 없이 7개 후방 기지에 전개할 권한을 지니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엔 핵추진 항공모함과 항모강습단, 전략폭격기, 전략핵잠수함, 스텔스 전투기 등 최첨단 전략자산과 증원군 등 대규모 미군 전력과 함께, 주일 유엔사의 동원 작업을 통해 유엔사 9개 파견국의 전력이 한반도에 투입된다.
더욱이 한미는 오는 11월 한국전 참전국 등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를 소집해 대상을 대폭 확대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주일 유엔사의 동원 전력은 가공할 수준으로 진화할 공산이 크다.
또 다른 핵심 요건은 7개 후방 기지를 유엔사 파견국이 실제로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들 나라가 유엔 깃발을 달고 정기적으로 함정과 항공모함, 병력을 후방 기지에 보내는 것도 그런 규정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파견국들은 유사시 임무 수행에 필요한 절차들을 사전연습하고 주일미군이 일본을 통해 이동하거나 일본에서 작전하는 파견국 병력 지원을 위한 준비 태세를 강화한다. 주일미군은 주일 유엔사의 핵심 파트너이자 조력자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유엔군 SOFA’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셀리그 해리슨에 따르면, 미국은 1961년 1월 19일 맺은 미일 신안보조약에 근거해서도 일본영토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주일 유엔군 SOFA와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미일 신안보조약은 미군 전력의 일본 진출시 일본 정부와 사전협의를 해야 하지만 주일 유엔군 SOFA에는 일본 정부의 승인을 안 받아도 된다. (위키피디아 참조)
다른 SOFA 서명국 병력들도 마찬가지다. 일본 진입 시 통보를 해주는 게 예의지만 사전 통지가 필요 없다. 유엔사라는 깃발 아래 일본 내 후방 기지에서 병력을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셈이다.
다시는 얻을 수 없는 이런 특권을 미국이 포기할 리 만무하다. 주일유엔군 SOFA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협정인 셈이다.
전작권 전환과 함께 미래연합사가 창설되기 전까진,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사령관을 겸직하게 된다. 미국은 주일 유엔사가 '미군 조직'이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사령관에 미국이 아닌 다른 회원국 출신들을 배치해왔다.
처음에는 태국(1957~1976년), 영국(1976~1978년), 필리핀(1978~1987), 그리고 호주(2010~2023 현재) 등이 차례로 맡았다. 미국은 일본에 7개 유엔사 후방 기지를 두고 '제2의 한반도 전쟁'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 누굴 위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