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원전 '오염수' 방류 비판에…일, '처리수' 라며 강변
시-푸틴 "심각한 우려" "주변국과 협의해야"
일본정부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확신"
4~5년 뒤면 트리튬 오염수 제주해역 유입
피지 비상경계태세 발령, 일본 안전주장 비판
일본정부는 24일, 중국과 러시아 정상들이 지난 21일 모스크바 회담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후쿠시마 사고원전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데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며 반박했다.
일본 '오염수' 아니라 '처리수' 주장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이날 각료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중-러 정상회담 뒤 발표한 공동성명이 지적한 내용에서 “사실관계에 오인도 있다”며, 공동성명에 표기된 '방사능 오염수'는 '처리수'를 잘못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안전하다면서 "(오염수) 방류가 어떤 해도 끼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한 IAEA(국제원자력기구) 그로시 사무국장의 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이에 앞서 지난 21일 시진핑 중국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회담한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류 계획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일본은 주변국 등 이해관계국이나 관련 국제기관과 충분한 협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처리수’에도 삼중수소 등 방사성물질 다수 포함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사고원전에서 지금도 매일 100톤 이상 흘러나오고 있는 핵연료 방사능에 오염된 지하수 등을 모아 다핵종 제거설비(ALPS) 등을 통해 방사능 핵종을 제거한 뒤 탱크에 저장하고 있는데, 이 ALPS로 처리한 오염수를 “처리수”라며 방사능 오염수와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원전 오염수는 ALPS로 처리하더라도 트리튬(삼중수소)은 제거할 수 없다. 그리고 처리된 오염수에는 다른 방사성 물질들도 다수 포함돼 있으며, 방사능이 인체에 해를 주지 않을 만큼 완전히 제거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는 사고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을 비롯한 일본인들 다수도 반대하고 있다.
중-러 정상들의 공동성명의 지적과 우려는 올해 봄과 여름 사이에 132만 톤이 넘는 탱크 저장 오염수를 사고원전 앞바다로 흘려 보내겠다고 밝힌 일본정부의 계획에 두 나라가 반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경제산업상이 반박한 것은 중-러 정상의 이런 공식입장 발표가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류 계획을 강행하려는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 준 결과로 보인다. 도쿄전력은 문제의 오염수들을 바닷물로 희식시킨 뒤 사고원전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앞바다까지 해저 터널을 뚫어 하루 약 500톤씩 30여 년에 걸쳐 흘려 보낼 예정이다.
중-러 정상 공동성명의 지적은 이 두 나라뿐만 아니라 한국 등 오염수 방류로 직접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큰 일본 이웃나라들과 태평양 섬나라들, 연안국들의 우려와 반대를 대변하는 것이다.
피지, "안전하다면서 왜 방류하나?"
<신화통신>은 지난 3일 태평양 섬나라 피지가 후쿠시마 사고원전 방사능 오염수 방류계획에 반대하면서 비상경계태세를 취했다고 보도했다. 카미카미자 피지 총리대행은 이날 “태평양의 건강한 생태환경은 피지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다핵종 제거설비로 처리한 핵 오염수가 그렇게 안전하다면 왜 일본은 그것을 재사용하거나 자국의 제조업과 농업에 사용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중국 외교부도 후쿠시마 사고원전 오염수 처리가 전 세계의 해양환경과 환태평양 국가의 공중보건과 관련이 있다면서 결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고 <인민망> 등 중국 매체들은 보도했다. 중국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일본이 정당한 국제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핵 오염수를 과학적이고 개방적이며 투명하고 안전한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며 해양방류 강행계획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 정부도 일본의 규제당국이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류를 승인한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한편 지난 17일 일본을 방문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일한의원연맹의 누카가 후쿠시로 회장과 총리를 지낸 스가 요시히데 차기회장 내정자 등과 만났을 때, 그들이 후쿠시마 사고원전 오염수 해양방류와 관련한 '이해'를 구하자 "객관적, 과학적인 분석으로 일본정부가 책임을 가지고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이날 전했다.
방류하면 4~5년 뒤 제주해역에 유입
<한겨레>에 따르면,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면 오염수에 함유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트리튬)가 4~5년 뒤 제주해역에 유입되기 시작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와 있다. 다만, 한국 해역의 배경농도(현재 상태에서의 기본 농도)의 100만분의 1에 못 미치는 저농도로는 방류 2년 뒤 해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유입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 공동연구팀은 2월 16일 제주에서 열린 한국방재학회 학술발표대회에서 이런 내용의 후쿠시마 오염수 속 삼중수소 확산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했다. 삼중수소가 인체의 디엔에이(DNA)를 구성하는 수소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헬륨으로 변하면서 디엔에이에 영향을 미쳐 세포 사멸, 생식기능 저하 등 인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한겨레> 2월 16일)
<한겨레>는 이번 시뮬레이션 분석이 삼중수소의 확산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방류되는 다양한 방사성 물질(핵종)들이 생물체 먹이사슬을 타고 축적되며 이동하는 과정은 고려되지 않았다면서, 따라서 이번 분석은 오염수 방류가 환경에 끼치는 전체 영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일본이 방류하려는 오염수 속에는 삼중수소 이외에도 다양한 방사성 물질들이 함유돼 있다.
한편 도쿄전력은 이번 봄부터 방류를 시작한다는 계획을 밝혀왔지만, 오염수 모니터링 계획 변경에 대한 일본원자력규제위원회의 심사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토가 길어지면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