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해법'은 한미일 삼각동맹 위한 각본이었나

윤정부 한미동맹 강화로 가는 첫 단추 '한일유착'

'제3자 변제' 핵심은 일본요구 다 들어주기

배상문제가 아닌 배상문제가 만든 문제 해결

발표 90분 만에 나온 바이든 환영 성명

다음날 '4월 윤석열 국빈방미' 발표도 그 맥락

2023-03-08     한승동 에디터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해결을 위한 제1586차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지난 6일 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관련 정부안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2023.3.8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에 관한 이른바 ‘해결책’을 발표한 뒤 불과 1시간 반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대적인 환영성명을 발표했다. “오늘 한국과 일본의 발표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들 간의 협력과 파트너십의 획기적인 새 장을 열 것이다.”

8일의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이렇게 빨리 성명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도 사전에 한일 합의내용을 알려 놓은 주도면밀한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정부 관계자가 그렇게 말했다. 주도면밀한 준비는 한국과 일본 내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필요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즉각적인 환영성명이 “한국과 일본 내의 반발을 억누르는 데에 한몫”했다는 것을 <아사히>도 인정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8일 도쿄에서 열린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교도통신은 이날 회의에서 2023회계연도 예산안의 일반회계 세출 총액이 사상 최대 규모인 114조 엔(약 1천100조 원)으로 편성됐다고 전했다. 이중 방위비는 전년 대비 26% 늘어난 6조8천억 엔(약 66조 원)으로 이 또한 사상 최대 규모다. 2023.02.28 AP 연합뉴스

‘사죄와 반성’ 표명조차 피해간 술책

이 신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발표 뒤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한일공동선언’을 포함해서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른바 일본 역대 내각이 한 ‘사죄와 반성‘ 표명의 재천명이다.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표현에는 “역사인식을 둘러싼 ‘부(負)의 연쇄’를 피하려는 일본정부의 노림수가 들어 있었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원래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정부 쪽이 요청한 것은 “일본이 이미 표명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성실하게 유지,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쪽은 이를 기시다 총리가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서 계승하고 있다”고 표명하는 것으로 바꿨다. 이 표현은 2015년 8월에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를 공표하면서 거듭 써먹은 표현이었다. 그 표현에다 “한일공동선언을 포함해서”라는 구절을 추가했다. 1998년 한일공동선언에서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오와비 おわび)”를 표명했다. 기시다 총리가 굳이 이 한일공동선언을 추가한 것은 ‘반성과 사죄’를 표명하지 않고도 내용상 표명했다는 인상을 한국 쪽에 주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아사히>는 썼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7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및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긴급 시국선언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3.7 연합뉴스

대법원 판결 무효화, 무효화됐던 12·28합의 소생

일본에게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은 일본 내에는 이 표현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의 ‘해결책’이 발표되기 전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자민당의 대표적인 우익 정치가로, ‘콧수염 대장’으로 불리는 사토 마사히사 의원이 기시다 총리에게 “‘반성과 사죄’를 한일관계의 문맥에서 지금 이 시점에서 얘기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아베 전 총리가 2015년의 위안부 합의(12·28 합의) 때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위안부로 고통을 경험하시고, 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가 보수파(우익)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말하자면 일본정부는 일본 우익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성과 사죄’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그런 말이 들어 있는 ‘1998년의 한일공동선언’이라는 말만 추가함으로써, 한국 쪽에서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고, 한국은 실제로 그렇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양쪽 다 적당히 수용할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치적 결탁이 이뤄졌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로써 일본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배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한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확정판결은 일본정부의 요구대로 무효화됐고, 무효화됐던 12·28 합의는 되살아나는 역전이 일어났다.

한일 정치결탁의 핵심은 일본요구 들어 주기

이 정치결탁의 핵심은 일본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제까지 한국 쪽에 요구해 온 모든 것을 성취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첨단 소재장비 수출를 규제하고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압박한 것은 2018년 10월의 한국 대법원 판결, 즉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가해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에 명한 확정판결을 번복하거나 폐기하라는 것이었다. 지난해 3월 대선이 끝난 직후의 당선자 시절부터 윤석열 대통령 정부가 서둘러 온 것은, 결과적으로 강제동원 배상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 일본정부의 대법원 판결 폐기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들어주되 어떻게 하면 반발, 즉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느냐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대의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23.3.8 연합뉴스

백악관 바이든에게 들고 갈 ‘선물’

돌이켜 보면 윤석열 정부 집권구상의 핵심은 한미동맹 강화였다. 그냥 동맹 강화가 아니라 미국 일변도, 미일동맹 일변도의 한미동맹 강화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필수적인 한미일 삼각공조 내지 삼각동맹을 추구하는 미국이 그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한일관계 ‘회복’, 즉 한일유착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 강화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할 첫 관문이 한일유착이었다.

이를 위해 집권 초기에 서둘러 일본과 협상을 벌였으나 일본 자세가 완강했다. 이를 확인한 한국정부는 결국 일본정부 요구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6일의 ‘해결책’ 발표 바로 다음날인 7일 대통령이 4월에 미국을 ‘국빈방문’한다고 발표한데서도 볼 수 있듯, 일본과 장기간 협상을 벌이며 해결책을 찾는데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집권구상의 핵심인 한미동맹 강화와 그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미국 국빈방문 일정이 코앞에 다가왔고, 방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한일관계 ‘회복’이라는 ‘선물’을 바이든 정부에게 들고가야 했다. 집권 이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최악의 지지율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반전’을 위해서도 미국방문 성과는 중요했을 것이다.

미국도 그 ‘선물’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는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의 ‘해결책’ 발표 직후 대대적인 환영성명을 발표함으로써, 그 발표로 인해 거세질지도 모를 한국과 일본 내의 반발을 무마하고 억누르기 위해 짠 시나리오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강제동원 배상문제 ‘해결’은 목적아닌 수단

그렇게 본다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 ‘해결’ 노력은 이를 위한 수단이었지 목적이 아니었다. 배상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목적이었다면, 일본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바람에 오히려 근본적 해결을 더 멀어지게 만든 최악의 결말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기 때문에, 해결을 위한 정면승부가 아니라 가능한 한 매끄럽게 다방면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피해가는 편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여러 차례의 상호방문과 협의회 구성, 간담회, 지원재단을 활용한 ‘제3자 변제’안 짜기, 피해자 면담 등 요란해보였던 움직임들이 그것을 위한 장치였을까.

표정관리하는 일본

<산케이>나 <요미우리> 등 보수우익 매체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사히신문>이 전하고 있는 이 문제와 관련한 일본 분위기만 봐도, 일본 조야는 지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표정관리에 신경 쓰면서, 한편으로 한국 여론의 반발로 이 기대 이상의 ‘성과’가 혹시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오히려 전전긍긍하며 조심스러워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일본에서는 왜 배상문제 해결의 ‘불가역성’에 대해 확실히, 명시적으로 못을 박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7일 열린 자민당 외교부회 참석자 중 한 사람은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배상은 해결이 끝났다는 것을 한국이 인정하도록 했어야 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불가역성에 대한 담보까지 요구했다가는 한국 국내(사정이) 지탱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한국정부가 한 걸음 내디뎠으니, 일단은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괜히 욕심 더 부렸다가 판을 깨선 안 된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으레 목청을 높이는 우익들이 즐비한 자민당 외교부회에서도 앞서 말한 참석자 한 사람의 불만 외에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바라던 것을 다 얻었기 때문이다. “안전보장이나 경제 등의 분야에서 제휴를 강화해서 한국 국민들이 그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기를 바라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는 외무성 간부의 얘기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총리 관저의 한 간부는 “모처럼 찾아 온 윤석열 정권 동안에는 양호한 관계를 쌓고 싶다”고 했단다.

윤정부가 풀려던 건 배상문제 아닌 배상문제가 만든 정치문제

윤석열 정부가 고민하며 풀려고 애쓴 것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가 아니라 그 배상문제로 인해 불거진 정치문제였다. 즉 정치적 계산 때문에 촉발된 사상최악이라는 한일관계를 어떻게 돌려 놓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정부 고관들이 한일 간을 오가며 협의를 거듭한 것은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면서 한일간 과거사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묘안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적당한 선에서 덮고 양국 내의 반발을 가능한 한 최소화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느냐는 것이었다. 다음 단계는 미국에게 더 바싹 다가가는 것, 그리고 일본이 동아시아 중추를 담당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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