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외교를 '결단'으로 칭송하는 신문들… '한국의 산케이'인가
강제동원 배상 외교 참사, '대승적 결정' 칭송 일색
'제2의 을사늑약'으로 비판하는 국민여론과는 상반
연합 조선 중앙 동아가 앞장서고 다른 매체들 따라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국내 기업 배상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굴욕 외교에 대해 한국의 유력 언론들이 일제히 '결단'으로 칭송하고 나섰다. 국민들의 분노와 규탄과는 동떨어진 것을 넘어 상반되는 국내 유력언론들의 보도로 정부의 굴욕외교 참사는 ‘언론 참사’로 이어지고 있다.
7일 아침 국내 주요 조간신문들은 한겨레와 경향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이를 ‘결단’ ‘미래로의 돌파구’ ‘획기적 전기’ 등의 우호적 표현을 써 가며 환영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가 이에 앞장섰다. 세 신문의 지면을 보면 마치 일본 극우매체인 산케이 신문의 한국어판을 보는 듯했다. ‘친일(親日)’에다 “국력에 걸맞는 대승적 결단”이라는 대통령실의 입장을 그대로 전해 윤 대통령의 그릇된 판단과 결정을 거드는 ‘부윤(扶尹)’ 논조 일색이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릿기사에 ‘윤 대통령의 결단’과 ‘일본 기시다 총리의 화답’이라는 제목을 달았다(尹, "미래 위한 결단" 기시다, "건전한 관계 회복"). 그뿐 아니라 이번 참사를 비판한 것에 대한 질타까지 함으로써 반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이 ‘제2의 경술국치이자 대일 굴종외교’라고 평가하고 이재명 대표가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치욕’이라고 한 것에 대해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25년 만에 되살아난 것을 ‘친일’ ‘굴욕’이라고 하는 셈”이라고 해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취지를 왜곡하면서까지 이번 발표를 옹호했다.
중앙일보는 한일 간의 돌파구가 될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3각 동맹의 새 장을 연 ‘용단’으로 칭송했다(한일돌파구-바이든 동맹 "획기적 새장").
동아일보는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 배상과는 무관한 청년 지원 자금을 대는 것을 두고 마치 강제징용 배상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도했다("日기업들, 韓징용재단 참여가능성 커져").
다른 신문들도 이 같은 3개 유력매체의 논조를 따라간 듯 별 차이가 없었다. 세계일보는 사설 ‘강제동원 반쪽 해법’ 미흡하지만, 이제 미래·국익 봐야 할 때’에서 “정부는 우리의 현실적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과거사를 잊자는 얘기가 아니라 이제는 미래와 국익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정부안을 사실상 ‘승인’했다.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편이라고 평가받는 <한국일보>도 ‘한국정부 결단’이라는 표현을 써서 사실상 이번 결정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사설에서도 ‘징용 해법, 납득할 후속 조치 있어야 실패 반복 않는다’면서 “정부는 일본의 조치를 이끌어내는 외교적 노력과 더불어 대국민 설득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해 이번 발표에 대한 비판보다는 후속 조치를 주문하고 있다.
그나마 <한겨레> <경향신문>만 비판적 논조였다. <윤석열 정부, 최악의 굴욕외교>(한겨레) <'책임' 빠진 3자변제...대일외교 '족쇄' 찼다>(경향)
미디어비평을 하고 있는 고광헌 전 서울신문 사장은 7일 조간 신문들의 보도에 대해 “ 해석과 주장이 21세기식 '이완용 버전'이랄 만큼 매판(買辦, 외국 자본과 결탁해 제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일)적‘이다”고 비판했다. 고 전 사장에 따르면 이완용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을 휩쓸자 깜짝 놀란 나머지 일왕과 총독부에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한일합방은 조선의 유일한 활로였고, 조선독립 선언은 텅 빈 외침이요, 망동"라는 취지의 글을 3차례 연속 기고했다.
고 전 사장은 “중앙일보는 의도적으로 기사 본문에 한 음절도 나오지 않는 바이든과 미국정부의 시각을, '바이든, "동맹 획기적 새장’이라고 떡 하니 보태고 있다. 단 한 문장이라도 관련 사실이 기사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독자를 속이는 기만적인 편집이다”라고 지적했다.
‘결단’이라는 표현은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의 1보에서부터 비롯됐다. 발표 전날인 5일 오후 이 사안에 대한 첫 소식을 전한 연합뉴스는 “강제징용 문제를 한국 주도로 풀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평가되며 문제해결의 전기가 마련될지 주목된다”고 썼다. ‘한국 주도’ ‘결단’ ‘전기’라고 정부안을 평가한 셈이다.
민간뉴스통신사인 뉴시스의 보도는 그나마 기사 앞 부분에 “하지만 피해자 단체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 해 ‘논란’ 전망을 제시했지만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는 최소한의 균형마저 보이지 않았다.
이 같은 국내 언론들의 보도는 정부의 발표안을 제2의 을사늑약으로까지 규정하며 성토와 규탄이 빗발치고 있는 국민 여론이나 피해자들, 시민사회의 기류와는 상반되는 논조다. 많은 시민들로부터 ‘한국 속의 산케이 신문들’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한 한국 언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