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무력화 노려 주 단위 근로관리 '70년 철칙' 없애나

정부, 근로시간제 개편안…연장 단위 '월·분기·반기·연' 확대

일 몰리면 주 69시간까지 늘어날 가능성 배제 못해

양대 노총 "장시간 노동만 늘고 휴식권 보장 안돼"

관련법 고쳐야 하고, 야당 반대해 국회통과 쉽잖아

2023-03-06     유상규 에디터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3.6 연합뉴스

정부가 연장근로의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하기 위해 지난 1953년 이후 70년간 지켜온 '1주 단위' 근로시간 관리제도를 없애려는 게 아니냐며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했다.

이날 정부가 확정한 방안의 핵심은 '주 최대 52시간제'로 대표되는 근로시간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이다. 근로자들이 1주일에 52시간까지만 일하도록 하는 현행 제도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변경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우리나라 노동법이 제정된 1953년 이후 70년간 유지된 '1주 단위' 근로시간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근로자 한 명이 1주일에 1시간만 초과해 53시간 일하면 사업주는 범법자가 된다는 얘기다.

때문에 실제 근로 현장에서는 근로자가 실제로 더 일하고도 52시간만 일한 것으로 허위 기록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게 정부 쪽의 설명이다.

이에 정부는 '주 52시간제'(기본 40시간+최대 연장 12시간)의 틀을 유지하되 '주' 단위의 연장근로 단위를 노사 합의를 거쳐 '월·분기·반기·연'으로도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럴 경우 '월'은 52시간(12시간×4.345주), '분기'는 156시간, '반기'는 312시간, '연'은 624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장시간 연속 근로를 막고 실근로시간을 단축한다는 명분을 붙여 분기 이상의 경우 연장근로 한도를 줄이도록 설계했다. 즉, '분기'는 140시간(156시간의 90%), '반기'는 250시간(312시간의 80%), '연'은 440시간(624시간의 70%)만 연장근로가 가능하게 했다.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전체 근로시간을 관리하게 되면 주 단위로는 근로시간이 매주 달라질 수 있다. 일이 몰리는 주에는 근로시간이 많아지고, 일이 적은 주에는 반대로 줄어드는 식이다. 이 경우 1주에 최대 69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다.

정부의 개편방안에는 일을 마치고 다음 일하는 날까지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기로 했다. 하루 24시간 중 11시간 연속 휴식을 빼면 13시간이 남는데, 또 근로기준법 상 4시간마다 30분씩 휴게시간이 보장되므로 13시간에서 1.5시간을 빼면 남는 근무시간은 11.5시간이다. 1주일에 하루는 쉰다고 가정하면 1주 최대 노동시간은 69시간(11.5시간×6일)에 이를 수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3.6 연합뉴스

연장근로 관리 단위와 함께 정부가 개편하려는 주요 항목은 포괄임금제이다. 포괄임금제는 노사간 약정으로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을 미리 정한 뒤 매달 일정액의 수당을 기본임금에 포함해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정부는 포괄임금제가 '공짜 야근', '임금 체불'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비상경제장관회의를 마친 뒤 연 브리핑에서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많은 기업이 포괄임금제를 오남용해 장시간 근로와 공짜 야근을 야기하고 있다"면서 "근로자와 기업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제약하고 날로 다양화·고도화하는 노사의 수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정부 개편 방안에 대해 노동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면서 노동자의 휴식권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아침 9시 출근해 자정까지 일해도 합법이 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라면서 "여기에 노동자의 건강과 휴식은 없다. 오직 사업주의 이익만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6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부산본부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 성차별 고용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3.6 연합뉴스

한국노총도 "노동자 선택권이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개편안의) 본질은 장시간 집중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휴식권도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노동부 장관은 더는 노동자를 기만하지 말라"고 성토했다.

한국노총 유정엽 정책2본부장은 "연장근로 단위를 확대하면 근로시간이 특정 주에 몰릴 수 있다"라며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규칙적인 휴식을 보장하지 않으면 건강과 산업안전에 큰 문제가 생긴다"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내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오는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 개편안이 실제 시행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부 개편안 내용 중에는 상당수가 관련법 조항을 개정해야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이 정부 개편안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어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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