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 맞나?…'3·1절 기념사' 국내선 성토, 미·일 반색
시민단체들 "치욕적인 망언" "친일 본색 드러내"
"일본에 면죄부" 사과 요구…일부선 "물러나라"
일본 언론 "친일정권 기회 잡아라" 기시다에 촉구
미국 "매우 지지"…한국 내 여론과 동떨어진 인식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한 시민사회의 성토가 잇따르고 있다.
윤 대통령은 3·1절 104주년을 맞은 1일 기념사를 통해 군대 위안부와 강제징용(동원) 등 일제 식민지 과거사나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한국민을 비하하고 일본의 군국주의 움직임에 면죄부를 준듯한 발언을 했다.
이에 시민사회에서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하고 ‘친일 본색’을 드러냈다고 규탄하는 한편, 대국민 직접 사과를 요구했으며 일부 단체는 하야를 촉구하기도 했다.
국내선 윤석열 규탄, 일본·미국선 칭찬 ‘촌극’
그러나 일본과 미국은 학수고대한 듯 ‘반색’하고 나섰다. 일본 언론들은 윤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를 일절 거론하지 않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호소한 데 대해 높이 평가했다. 미국도 ‘일본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환영했다.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위임받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원수가 몰역사적 발언으로 인해 한국 내에선 ‘규탄’받고 일본·미국에선 ‘칭찬’받는, 그야말로 웃지 못할 촌극이 연출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의 2일 자 사설이 일본 내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사설은 “민족주의가 고조되는 자리에서 굳이 일본과의 협력 중요성을 국민에게 설명한 것은 의미가 있으며 평가할만하다”라고 윤 대통령을 칭찬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일제의 철권 통치에 맞서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쳤던 선열들을 기리는 3·1절 기념사에선 여태껏 보수, 진보를 불문하고 반일 정서가 담겨 있었는데, 이번 기념사에선 그런 부분이 없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닛케이 ‘친일’ 윤 정권 있을 때 신속 해결 촉구
그러면서 사설은 "일본 정부는 윤 정권과 협력해 징용공 문제 해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 정권이 보란 듯이 친일 본색을 드러낸 이 순간을 절대 놓치지 말라는 얘기다. 특히 사설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향해 “일본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검토해 줬으면 한다. 총리가 지도력을 발휘할 때다”라고 일본 정부의 행동을 촉구했다.
다른 일본 언론도 윤 대통령이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부르며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의미 있게 평가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이 오랫동안 호소해온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로 중심을 옮기는 자세를 선명히 했다”라고 했고, 마이니치신문은 징용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대일 관계 개선을 호소했다고 소개했다.
일본 정부도 반색했다.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1일 회견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라며 “한일관계를 건전한 형태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긴밀히 의사소통하겠다”고 화답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 “윤석열과 기시다에 박수”
대중 포위망 구축을 위해 한·미·일 ‘3국 연대’가 절실했던 미국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미 국무부의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1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가치를 바탕으로 일본과 더 협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에 대한 비전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이 비전을 매우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한국 국내 여론과 얼마나 동떨어진 인식을 지니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국 내에선 윤 대통령의 ‘친일 기념사’에 경악하면서 규탄 성명이 잇따랐다.
독립선열 선양단체 모임인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회장 함세웅)은 2일 성명을 내고 “사과와 반성, 배상과 보상을 거부하고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행태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대통령의 3·1 독립선언기념사는 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부정하는 행위이며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망각하는 행위"라면서 윤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선열단체연합은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등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25개 독립선열 선양단체의 연합체다.
시민단체들 ”치욕적 망언“ 성토…사과·하야 촉구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가세했다. 민변은 2일 성명을 통해 “대통령이 3·1운동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우리 역사를 비하하며 왜곡된 역사관을 드러냈다”며 “역사에 길이 남을 치욕적인 망언”이라고 규탄했다.
민변은 “윤 대통령은 당당하고 분명한 어조로 우리 민족이 잘못된 선택을 해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는 듯 이야기 했다"며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
‘촛불행동’도 가세했다. 촛불행동은 성명에서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앞장서 미화하고 선전한 3.1절 기념사이자 노골적 친일 망언“이라고 주장했다. 촛불행동은 “일본에 아부하고 이 나라 국민에게 굴욕을 안기는 것이 ‘우리 선열들의 정신과 결코 다르지 않다’니, 참담하기 그지없다”면서 “친일매국 윤석열은 당장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시민모임 독립’(이사장 이만열)도 성명을 내고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도발을 방치하고 한쪽 진영에 스스로 귀순하는 무지몽매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매장하는 악행”이라며 “역사의 수레바퀴가 역행하고 있고 조상들이 무덤에서 일어날 일이 백주대낮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윤 대통령 기념사의 문제점과 관련, 성명은 △ 일제의 점령과 착취, 징용과 군 위안부 등 식민지 전쟁 범죄 등 과거사 언급 배제 △ 3.1운동의 배경과 3.1운동의 역사적 의의 도외시 △ 피해자에 책임 전가하는 식민사관 등을 거론한 뒤 “군국주의 침략을 합리화한 일본 역사 수정주의자들과 이들을 추종하는 국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진화하는 일본 군국주의 행태 조목조목 비판
특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라는 부분에 대해선 일본의 군국주의 행태가 거의 바뀐 게 없고 더 심해지고 있는 점을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하면서 질타가 이어졌다.
성명은 대표적인 사례로 △ 일본 각의 결정의 영향을 받아 2022년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에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연행’과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이 사라진 점 △ 2018년 개정된 문부과학성 학습지도요령에 따라, 독도와 관련해 ‘일본 고유 영토’ 또는 ‘한국이 불법 점거’라는 표현이 강화된 점 △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전쟁범죄 현장인 사도 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재추진 등을 들었다.
성명은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과 도발의 중심에는 아베 신조(2022년 7월 피살)로 대표되는 일본 극우 세력이 있으며, 3대 안보문서 개정으로 평화헌법을 무력화했다”면서 “선제공격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의 부활은 한반도를 전쟁의 참화에 밀어 넣을 수 있는 위험한 도발이자 선린 우호의 한일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퇴행적인 시도”라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