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 아들'이 된 유기견

이스탄불의 '셀럽견' 보쥐의 '무임승차 출세기'

인간과 동물, 원주민과 타자가 공존하는 도시

2025-11-26     이혜승 튀르키예 통신원

수십만 팔로워 거느린 인플루언서 

보쥐(Boji)는 이스탄불의 셀럽이다. 그와 마주친 사람들은 저마다 그의 매력에 사로잡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사진과 영상은 바람처럼 퍼져나갔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계정이 열리며 보쥐는 어느새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가 됐다.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시엔엔, 로이터 등 국제 뉴스에 등장하고, 위키피디아에도 기록이 되었다. 결국 그의 이름은 튀르키예 최고 재벌인 코치(Koç Holding) 그룹의 둘째 아들 오메르 코치의 귀에까지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2022년, 그가 보쥐를 입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근본도, 족보도 불분명한 보쥐가 자본주의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있는 재벌가의 막내 아들이 된 것이다. 인터넷에는 축하의 메시지를 비롯해 자신들도 보쥐처럼 코치 그룹에 입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쏟아졌다.

대체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무임승차였다. 최소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트램, 지하철, 버스, 그리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오가는 여객선까지 보쥐는 이스탄불의 모든 대중교통을 돈 한 푼 내지 않고 섭렵했다. 그가 타보지 못한 유일한 수단은 택시뿐이었다. 과연 무임승차로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혹여 그런 꿈을 꾸는 이들이 있다면 단념하시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쥐가 지하철이나 버스에 올라타 자리를 차지하고 뻔뻔한 표정으로 다른 승객들을 쳐다볼 때마다 쫓겨나기는커녕 찬사를 받은 것은 녀석이 유기견이기 때문이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Ce0zoTLI_T4

정확하지는 않지만 보쥐는 2017년생으로 알려져 있다. 튀르키예 토종견인 캉갈의 피가 섞인 혼혈종으로 몸무게는 42킬로그램에 달하는 대형견이다. 덩치만 놓고 보면 사람들에게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줄 법도 하다. 다행히 보쥐는 유기견에 너그러운 이스탄불에 산다.

 

출처 : 이혜승

2021년에 촬영된 몇몇 영상을 보며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승객들이 스스럼없이 보쥐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며, 자리를 함께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 그때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성기였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고, 서로 악수조차 꺼리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질병을 옮길지도 모르는, 아무리 깨끗해 보여도 개벼룩 몇 마리쯤은 품고 있을 법한 유기견과는 거리낌 없이 접촉하고 있었다. 인간과 개가 몸을 맞댄 그 순간, 사회적 거리두기같은 규칙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출처 : https://www.theatlantic.com/photo/2021/10/travels-with-boji-istanbuls-commuter-dog/620493/

길고양이는 여러 나라에서 환영을 받는다. 튀르키예는 그 가운데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유기견들이 도시를 자유롭게 활보하며 풍경의 일부로 자리 잡은 곳은 드물다. 유기견에 관한 한, 튀르키예는 특별하다. 도심의 광장과 거리는 말할 것도 없다. 화장품 가게, 옷가게, 슈퍼마켓, 관공서, 버스터미널, 항구, 공항, 심지어 약국과 병원의 입구마저도 유기견들의 발길을 막지 않는다. 더우면 에어컨 바람을 찾아 들어가고, 추우면 난방이 잘 되는 가게 구석에 몸을 뉘인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태연하게 하품을 하며 늘어져 시간을 보내는 게 그들의 일상이다. 물론 그 개들을 신경쓰지 않는 튀르키예 사람들도 특이하긴 하다.

 

출처 : 이혜승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도심의 유기견들은 귀에 녹색, 흰색, 빨간색 표식을 지니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성화 수술과 예방 접종을 마쳤다는 증표다.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굶고 살지 않을까.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거리 곳곳에는 사료가 차고 넘쳐 난다. 개들은 오히려 뼈다귀나 소시지, 햄 같은 더 고급스러운 먹거리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값싼 사료는 대개 바퀴벌레나 개미들의 몫이다.

먹사니즘의 문제를 그럭저럭 해결한 유기견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공을 던져주는 주인도 없는데. 그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보쥐처럼 도시 곳곳을 방랑하는 녀석들은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 아니 견생은 짧고 세상은 넓다. 시시한 공 따위보다는 마음 내키는 곳으로 떠나자.

 

출처: https://www.theatlantic.com/photo/2021/10/travels-with-boji-istanbuls-commuter-dog/620493/

 

사진 출처 https://edition.cnn.com/interactive/2021/10/travel/dog-istanbul-boji-cnnphotos/

 

사진 출처 https://edition.cnn.com/interactive/2021/10/travel/dog-istanbul-boji-cnnphotos/

여행을 좋아하는 개, 혼잡 시간대 피해

각종 대중 교통을 타고 다니는 사진들 덕에 보쥐가 이스탄불 대중 교통의 홍보 대사급으로 인터넷에 회자되자 시청에서도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제 보쥐는 평범한 유기견들과는 다른 존재로 취급받았다. 마이크로칩이 부착되었고, 그의 발걸음을 추적하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마련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보쥐는 하루 평균 서른 개의 역을 오가며, 삼십에서 사십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어느 날은 프린스 섬에서 목격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프린스 섬은 이스탄불 도심에서 25킬로미터 떨어진, 오직 여객선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섬이다. 그가 가지 못할 곳은 없었다. 보쥐에게는 이스탄불의 대중교통망이 무한한 가능성의 지도였다. 보쥐는 진짜 여행에 진심인 개다. 게다가 짖거나 사람들을 위협하지 않고 점잖게 차를 타고 내릴 줄도 안다. 거리에서 음식을 훔쳐 먹어서 개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짓도 하지 않는다. 눈치도 꽤 있어서 차를 탈 때도 출퇴근 인파가 몰리는 혼잡한 시간을 피해, 오전 열 시쯤 느긋하게 나타나고 밤 아홉 시쯤 하루를 마무리한다.

 

출처 : twitter Hasan Ersan

차를 타고 보쥐는 대체 어디를 가는 걸까? 특별히 갈 곳도, 만나야 할 사람도 없어 보인다. 그저 차 안에서 승객들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함께 찍는 것을 즐기고, 때로는 창밖 풍경에 넋을 놓는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무작정 내려 쉬다 또 다른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 오전에는 이스탄불의 유럽 지구에 있다가 또 오후에는 아시아 지구의 공항에서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온 몸으로 도시의 흐름을 타고 다니는 여행자 보쥐.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발걸음을 옮기며 도시와 교감하고 유랑의 의식을 치르는 보쥐에 이스탄불 사람들은 환호했다.

 

출처 : https://tr.linkedin.com/posts/yurtsevensecil_g%C3%BCzel-haber-bojiyi-ko%C3%A7-holding-y%C3%B6netim-activity-6887320739641458688-FFOY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보쥐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눈에서 꿀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2021년 11월 20일, “이스탄불 시청 소속 보쥐가 트램에서 실례했다”는 제목과 함께 트램 좌석 위에 배설물이 놓인 사진이 소셜 미디어에 퍼졌다. 이에 시청 공무원들은 CCTV 영상을 샅샅이 확인했고, 그 결과 누군가 배설물을 일부러 좌석에 놓는 장면을 포착했다. 명백한 모함이었다. 게다가 그날 보쥐는 하루 종일 시청 보호소에 있었다. 알리바이는 입증되었다. 누명을 벗은 보쥐의 명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입양이 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지하철에서 더이상 보쥐를 만날 수 없게 되어 섭섭하다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이스탄불을 흠모해 마지않는 외로운 방랑 시인의 발걸음을, 삶의 의미에 대해 묻는 철학자의 깊은 시선을 사람들은 보쥐에게서 보았거나 투영하는지도 모르겠다. 섬으로 향하는 여객선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갈매기를 바라보는 보쥐는 묻는 듯하다.

“삶은 목적지에 닿는 것인가, 아니면 끝없이 돌고 도는 수레바퀴 같은 것일까.”

이천만 명이 넘는 시민과 지방 도시에서 올라온 노동자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관광객들, 전쟁통에 쫓겨온 이민자들, 수백만여 마리의 유기견과 길고양이들, 하늘을 가르는 새들이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놓인 이스탄불에 산다. 이곳은 자연과 문명, 인간과 동물, 원주민과 타자 등이 뒤엉키고 변하지 않는 것들과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들이 부대끼는 거대한 무대다. 보쥐는 갖가지 바퀴에 몸을 싣고 이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자신만의 서사를 쓴다.

 

출처 : https://www.theatlantic.com/photo/2021/10/travels-with-boji-istanbuls-commuter-dog/620493/

보쥐 boji는 터키어로 bogie에서 따왔는데, bogie는 바퀴를 잇는 축을 뜻한다고 한다.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보쥐는, 불법의 수레바퀴를 의미하는 법륜으로 번역을 할 수도 있을 듯하다. 보쥐는 인간 세계의 주변부를 떠도는 동물-타자라기보다는 그 문화의 한 가운데로 파고 들어와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삶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그럭저럭 재미진 삶을 살아갈 만큼의 지혜는 있어 보인다. 그러니 보쥐는 최소한 견공계의 법륜이라 부를 만하지 않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https://tr.wikipedia.org/wiki/Boji_(k%C3%B6pek)

https://www.youtube.com/watch?v=QnksifeLHF0

https://www.youtube.com/watch?v=D5SuaBmk1gc

https://edition.cnn.com/interactive/2021/10/travel/dog-istanbul-boji-cnn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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