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다니-트럼프, 첫 백악관 만남에서 '윈-윈'

'이념 대신 정치력이 돋보인 만남' 평가

서로 정책의 공통 분모 찾는 데 성공해

덕담으로 과거의 대립과 긴장감 극복

뉴욕시에 대한 애정이 대화의 물꼬 터

예상 밖의 정치적 성공이 둘의 공통점

2025-11-23     이길주 시민기자

 

미국 시간 2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자가 워싱턴DC의 백악관에서 만났다. 두 사람이 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맘다니 당선자 뒤로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조각상이 보인다. (UPI/연합뉴스)

"맘다니 정부의 뉴욕시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가? "

"그렇다. 그럴 것이다. 정말 그럴 것이다. 특히 만나고 나서는 절대적이다.(Yeah, I would, I really would. Especially after the meeting, absolutely.)"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답이다.

정치력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만남이었다. 21일 오후(현지 시간)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자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하 존칭 생략) 백악관에서 비공개로 만났다. 회동 후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맘다니와 트럼프는 뉴욕 시장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둘 사이의 반감과 긴장감을 극복하고 '위대한 도시' 뉴욕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거 기간에 트럼프는 맘다니를 '작은 공산주의자'로 불렀고, 뉴욕시에 대한 연방정부의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맘다니는 트럼프를 '독재자', '폭군'이라고 비난하면서 트럼프 없는 뉴욕을 만들겠다고까지 했다. 이런 불편한 관계가 이번 회담에서 다시 드러날 것이란 추측이 있었지만, 트럼프는 맘다니와 생각의 차이보다는 동의하는 점이 많다며 맘다니 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돕겠다고 말했다.

이날 회동 후 기자회견에서 맘다니와 트럼프는 '윈-윈' 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맘다니는 과거 트럼프가 폄훼하고 조롱했던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 트럼프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자신이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임을 간과하거나 희석하지 않은 맘다니는 정책 비전의 일관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자신의 진보적 시정 어젠다가 트럼프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다.

 

맘다니 당선자는 지난 선거기간 동안 자신을 작은 공산주의자로 폄훼하며 적개심을 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도 뉴욕 시민들의 삶을 향상하기 위해서라면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는 약속대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위대한 도시 뉴욕을 위한 협력하기로 했다. (Fox 5 New York 유튜브 화면 캡처)

맘다니는 지난 2024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절대다수인 뉴욕시에서 트럼프의 지지가 올라갔던 사실을 여러 번 언급했다. 맘다니는 뉴욕 유권자들이 예상 밖으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이유는 감당할 수 없는 주거 비용의 무게를 덜어달라는 외침이라며, 자신과 트럼프의 정책 비전은 방향성이 같다고 강조했다. 맘다니 어젠다의 핵심인 보통 사람이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는 뉴욕시를 위해 두 뉴요커가 의기투합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트럼프는 뉴욕시장이 자신의 꿈이라며 뉴욕시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번 만남에서 맘다니-트럼프 '윈-윈' 성공은 서로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읽은 결과이다.

트럼프는 영웅주의적 인물이다. 미국을 위대하게 하고 세계를 구했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밖으로는 전쟁 종식과 평화 정착, 안으로는 고용 창출과 민생경제 활성화다. 이를 위해 이데올로기의 경직성과는 거리가 먼 사업가 마인드를 앞세운다.

구체적 예를 들면, 맘다니는 주거비용을 줄이기 위해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위한 공공주택 건설 확장을 약속했고 부동산 개발업자 트럼프는 이를 일종의 개발 정책으로 해석해 둘이 뜻을 합친 모양이 됐다. 이미 트럼프는 뉴욕시가 소위 질식 수준의 생활 부담을 줄이면, 자신(연방 정부)의 도움으로 뉴요커들이 다시 숨 쉴 수 있게 되었다고 선전할 태세다.

 

맘다니 당선자와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에 앞서 미연방 하원은 사회주의의 공포를 경고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다수의 민주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 이 결의안은 맘다니 당선자가 극복해야 할 정치적 도전을 예측하게 한다. (CBS New York 유튜브 캡처)

맘다니의 앞길은 평탄하게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와의 회동에 앞서 연방 하원은 사회주의의 공포(horrors of socialism)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285, 반대 98로 민주당 의원 86명도 결의안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다. 두 명은 기권. 공화당의 이탈 표는 없었다. 맘다니 정부의 좌경화에 대한 강한 경고였다.

이런 연방 의회 내의 의구심, 나아가 정치권의 비토 목소리에 대한 가장 강력한 희석제이자 방어벽은 트럼프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이념이다. MAGA 지지층에게도 물가 상승으로 인해 빡빡해진 삶은 부담이다. 편의점 계산대에서 이념의 색깔은 약해진다는 사실을 트럼프도 안다. 기자회견 중에 올해 추수감사절 물가가 지난해보다 25%가량 낮아졌다며 자신도 민생경제에 대해 민감함을 드러냈다.

맘다니와 트럼프를 가르는 이민 정책에 대해서도 이들은 접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강압적인 이민자 체포와 추방에 대한 반감과 비난 수위가 높은 맘다니를 향해, 트럼프는 이민자를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를 솎아 내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뉴욕시의 안전을 더 보장하려는 시 정부와 연방 정부 간의 대립과 마찰 대신 협력의 가능성을 부각했다. 맘다니와 트럼프 사이에 글자 그대로 예상하지 못한 '동침 관계 (strange bedfellow)'가 만들어진 형국이다.

 

거부인 부동산 개발업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상징하는 뉴욕시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 그는 뉴욕시의 안정이 자신의 부와도 직결되어 있음을 안다. (www.trump.com)

맘다니와 트럼프에게는 정치 여정에 공통점이 있다. 정치 전문가들의 예측을 깨고 선거에서 성공했다. 맘다니는 1% 지지율로 시작해 전직 뉴욕주 주지사를 꺾고 당선됐다.

트럼프 또한 흥미의 대상이 되어 주목은 받았지만, 확실하게 기존 정치, 경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엘리트 세력의 베팅을 받은 정치인은 아니었다. 억만장자가 사회 우월 세력에 눌린 보통 사람들의 상징이 되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러니의 산물이다.

이런 트럼프는 맘다니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많은 똑똑한 경쟁자를 상대로 놀라운 선거전을 펼쳤다(ran an incredible race against a lot of smart people)"며 결과가 "감탄스럽다(amazing)"고 했다.

역시 정치는 언어로 하는 것임을 맘다니와 트럼프는 확인시켰다. 이들의 회동은 덕담의 향연 같았다. 다음은 시선을 끄는 트럼프의 발언이다.

"나는 매우 합리적인 인물을 만났다. 뉴욕이 다시 위대해지기 바라는 인물을 만났다. (I met with a man who is a very rational person. I met with a man who wants to see New York be great again.)"

"맘다니 시장이 성공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행복할 것이다. (The better he does, the happier I am.)"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했고, 그가 잘 해내길 바라며, 우리는 그가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we agree on a lot more than I would have thought. I want him to do a great job, and we'll help him do a great job.)"

"우리는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었고, 그의 아이디어 중 일부는 실제로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와 똑같았다. (We had some interesting conversation and some of his ideas really are the same ideas that I have.)"

맘다니도 덕담에서 지지 않았다.

"대통령님과 함께한 시간, 그리고 대화에 감사한다. 앞으로 함께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I appreciated the time with president. I appreciated the conversation. I look forward to working together.)"

"우리가 공유하는 존경과 사랑의 대상인 뉴욕시에 초점을 맞춘 생산적인 회의였다. (it was a productive meeting focused on a place of shared admiration and love, New York City.)"

"대통령과 협력하여 뉴욕 주민들을 위해 생활을 가능케 하는 정책을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ally looking forward to delivering for New Yorkers in partnership with the president on the affordability agenda.)"

맘다니는 꼭 할 말이 있다며 트럼프와 만난 백악관 공간에 서민들을 위한 국가 정책의 상징인 뉴딜을 추진한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상화가 벽에 걸려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 또한 뉴딜의 유산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트럼프는 자신이 창고에서 찾아낸 루스벨트의 초상 앞에서 맘다니가 기념사진을 찍었다며 역시 둘 사이의 보통 사람들의 생활 향상이란 공통분모가 있음을 강조했다.

맘다니와 트럼프의 예상을 뒤엎은 인간적 친밀함은 맘다니가 선거기간에 트럼프를 '파시스트'로 부른 사실을 상기시키는 질문에서도 나왔다. 민감한 주제인 만큼 에둘러 조심스럽게 답하려는 맘다니를 행해 트럼프는 웃으며 별일 아니라며 말을 끊어 긴장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괜찮다. 그냥 '그렇다'라고 하면 된다. 그게 설명하는 것보다 더 쉽다. 난 괜찮다. (That's OK, you can just say yes, OK? It's easier. It's easier than explaining it. I don't mind.)"

트럼프는 앞서 자신에 대한 맘다니의 '폭군' 발언에 대해서도 "정치를 하면서 더한 소리도 들었다"며 가볍게 넘긴 바 있다.

 

도전과 난제가 예상되지만, 조란 맘다니 당선자는 내년 1월 1일 뉴욕 시장에 취임한다. 사진은 뉴욕 시청 전경. ( Musik Animal, Wikipedia Commons)

흔히 말하는 '그림'의 측면에서 이번 기자회견 장면은 어색한 면이 있다. 트럼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앉아서 편안한 자세로 질문에 답했고, 맘다니는 트럼프의 오른쪽에 어깨 옆에 서서 회견에 임했다. 백악관 비서관 또는 교장 선생님 옆에 선 평교사의 모습이 연출됐다. 누가 윗사람인가 명확하게 하겠다는 트럼프의 의도가 읽혔다.

하지만 기자회견 그림이 맘다니에게 나쁘지 않았다. 그의 뒤편에는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조각상이 서 있었다. 방송 카메라 프레임에서는 벗어났지만, 그의 앞에는 에이브러햄 링컨 제 16대 대통령의 조각상이 있었다.

맘다니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태어난 남아시아계 이민자로 이슬람교도이다. 이런 출신 배경이지만 미국의 상징 워싱턴과 링컨과 하나인 미국인인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 기자회견 끝까지 유지됐다. 맘다니가 돋보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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