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를 '부동산 갈등'으로부터 해방시키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하는 길

전자산업 옛 중심지, AI·IT 전자박물관 건립을

2025-11-17     윤여형·이종호

윤여형 과학기술교육연구센터(S&TERC) 대표,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

작년 서울의 사무실로 프랑스의 한 젊은이가 찾아왔다. 그는 세계의 유네스코문화유산을 취재하고 있는데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다루고 있다며 종묘를 방문하고 들렸다고 한다. 그는 세운상가를 한국인처럼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의 성장신화로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하는데 한국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IT의 산실인 세운상가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 프랑스 청년과 이야기 중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세운상가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고 한 것이다. 한국 IT발전의 진원지이자 세계 IT발전의 역사적 공간이면서도, 그 위치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와 마주보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은 것이다. 놀라운 조언이었다.

 

세운상가. 2020.8.20. 연합뉴스 자료사진

기실 세운상가(世運商街)는 한국현대사 그리고 서울의 발전사 가운데에서도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세운상가는 종로3가와 퇴계로3가 사이를 잇는 주상복합형 상가 단지이다. 일제강점기에 폭격에 대비한 공터로 남았던 이곳에, 전쟁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과 월남한 이주민들이 판잣집을 지어 살기 시작하였고, 종삼(鐘三) 또는 서종 삼종삼이라는 사창가도 들어섰다. 그러던 것이 1966년부터 무허가건물 철거하고 대규모의 상가 건물을 짓는 계획이 세워졌고, 서울시는 점포 2,000개, 호텔 915개를 수용하는 맘모스 상가아파트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세운상가 중에서 현대상가가 1967년 7월 최초로 준공되었다.

세운상가 일대는 크게 ①세운전자상가 ②청계상가 ③삼풍상가 ④진양상가 4개 상가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상가 건물의 명칭에도 불구하고 연결된 건물들은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되기도 한다. 특히 건물 주변에는 소규모 제조업체들, 금속 조립, 전기 전자, 인쇄업, 건설 기자재, 조명 등 다양한 업종의 건물들이 세운상가 건물군을 중심으로 밀집해 있는데, 이러한 주변부까지 통칭해서 ‘세운상가’ 로 부른다. 당시 상층부에 건설된 아파트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이런 변화와 더불어 세운상가는 서울의 유일무이한 종합 가전제품 상가로도 발전했다. 특히 1980년대 말 개인용 컴퓨터의 발전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한국의 8비트와 이후 16비트 컴퓨터, 그리고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세운상가에서 거래되었다. 1987년 저작권법이 도입되기 전 한동안 소프트웨어를 카피하는 카피점이 성행했는데 세운상가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2주일 시간만 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이다.

이에는 세운상가의 신화가 한몫 한다. 세계를 석권한 ‘가라오케’는 물론 ‘서바이벌 게임’이 바로 세운상가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연상만 해도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이후 1987년 정부가 용산역 서부 청과물시장을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용산전자상가를 조성해 세운상가의 전자상을 이전하여 상당수가 세운상가에서 빠져나갔다.

 

세운상가에 개관한 세운전자박물관. 2018.4.10.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운상가의 변화는 이것만이 아니다.

국민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강남 개발이 진행되고 도심이 정비되면서, 상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서울시도 1995년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그 부지를 공원화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막대한 보상비를 해결하지 못하여 계획은 진행되지 못했고 1998년 IMF 외환 위기, 2000년대 초 인터넷 거래 활성화 등의 위기를 겪으며 더욱 쇠락해 갔다.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이 진행되면서 청계천 주변 상가의 대규모 정비가 이루어졌다.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종로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잇던 공중 보행 데크가 철거되었고, 뒤이어 을지로를 지나던 보행 데크도 철거되었다.

2006년 오세훈 시장은 세운상가의 철거와 일대의 공원화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상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8년 12월 북쪽에 있는 현대상가는 철거되었고 이곳에 ‘세운 초록띠 공원’ 이라는 이름의 시멘트공원이 태어났다.

당초 계획은 이어서 2010년 청계천 남쪽의 청계상가 철거에 들어가 2012년까지는 퇴계로까지의 모든 상가를 철거할 계획이었으나, 금융위기의 여파로 철거되지 않았고 결국 현대상가 이외는 기존의 철거 계획이 백지화되어, 영업을 정상화하게 되었다.

2011년 취임한 박원순 시장은 2014년 세운상가를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보존형 개발'을 발표했다. 이후 2017년 9월, 세운상가가 정식 재개장되어 청년 창업· 벤처 기업이 입주하는 것은 물론 도심 제조업의 전진기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 진행되던 중 박원순 시장의 퇴진으로 사장된 상태이고 최근 오세훈 시장이 세운상가 옆 제 4지역 개발 문제로 이슈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17년 촬영한 세운상가 건물군. 오른쪽 뒤로 보이는 숲 한가운데 종묘가 보인다. 서울시 자료사진

세계적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

세운상가가 남다른 명성을 갖는 것은 세운상가의 기본 설계가 건축가 김수근(金壽根, 1931~1986)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건물의 지상 1층은 자동차 통로와 주차공간, 3층에 인공 데크를 건설하여 주변에 상가를 배치, 보행자 전용의 통로로 하여 철저한 보차도 분리를 적용하고, 종묘에서 필동 사이 1km에 이르는 공간은 보행자통로를 연결하여 입체화 하도록 했다.

그런데 프랑스 청년은 세운상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는 점이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는 큰 덕목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건축가 김수근은 자유센터(1963), 국립부여박물관(1967),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본관(1969) 등을 설계했다.

IT박물관이 만들어진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될 가능성이 큰 이유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등재 기준의 핵심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입증하는 것으로 다음의 3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1)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탁월한 가치 : 인류의 창의성이 빚어낸 걸작이거나, 인류 역사상 중요한 단계의 증거로서 독보적이고 대표적인 가치를 갖는 것.

보편적 가치 : 한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 전 세계인이 함께 보존해야 할 인류 공동의 가치를 지닐 것.

2) 등재 기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의 등재는 기준 ⅰ∼ⅵ에 하나 이상 부합해야 한다고 설명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6개 기준 중에서 하나 이상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은 이들 모두를 적용한다면 문제가 많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준 ⅰ: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기준 ⅱ :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 조경 디자인 등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

기준 ⅲ :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 문명 또는 유산의 독특하고 뛰어난 증거를 보여줄 것

기준 ⅳ :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들)를 예증하는 건축물 유형,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 또는 경관의 탁월한 사례일 것

기준 ⅴ : 특정 문화(들)를 대표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토지 이용, 또는 해양 이용의 탁월한 사례일 것

기준 ⅵ : 역사적 사건이나, 살아있는 전통, 사상이나 신념, 예술적 및 문학적 성과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탁월한 사례일 것

3) 진정성 및 완전성

진정성은 유산의 원형이 보존되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과 증거를 왜곡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완전성은 유산의 본질적인 부분들이 온전하게 보존될 것을 요구한다.

 

세운상가에서 내려다본 종묘와 그 뒤쪽으로 보이는 북한산 전경 @이종호

프랑스 청년은 위 기준에 세운상가가 과연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는지 연구해보기 바란다, 라는 제안을 주었다. 물론 세운상가가 서울에 등장한 것은 60여 년에 불과하여 역사성이 있느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원형이 지속될 수 있다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특히 청년은 덧붙여 세운상가 안에 한국의 신화를 보여줄 수 있는 전시관 즉 박물관이 설치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견을 듣고 우리는 나름의 토론을 하여 세운상가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방안으로 AI, IT 전자박물관 건립으로 방향을 찾았다. 앞으로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AI, IT로 산업의 주도권을 쥐는 나라가 세계 제4차산업을 제패할 수 있다는 것은 구문이다.

최근 정부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며 매우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한국이 세계 인공지능(AI)에 집중하여 한국을 아시아의 인공지능(AI) 허브 즉 인공지능(AI) 3대 강국에 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 먹거리 산업 중 대만과 세계 1위를 다투는 산업이 반도체 산업으로 대한민국의 독보적 첨단기술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전자공업 박물관이 없다.

우리나라의 선진화 연구개발의 상징이었던 세운 상가에 AI, IT 전자박물관을 설립하는 것은 매우 뜻있는 사업으로. 신정부도 AI산업 육성을 국정 우선 과제로 선정하고 추진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인재 육성과 국민의 공감대 형성이다. 청소년들은 AI, IT관에서 전자 산업의 과거, 현재를 일목요연하게 보고 미래를 설계하여 AI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터전을 만들어 주고 국민에게는 차세대에 펼쳐질 시대에 공감대를 형성, 국가 정책지지를 얻는 의미 있는 박물관이 될 것이다.

더구나 청계천의 복원 성공은 도시 환경 복원에서 세계적 모범 사례로 꼽히며 벤처 마킹의 대상으로 관광객이 매년 증가하고 있어 이들을 박물관 관람객으로 유치하여 한국의 전자산업의 성공을 홍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토론하여 아이디어를 취합하던 중 세운상가 안에 특별한 부지 구입을 하지 않고도 박물관을 설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어 현장을 돌아보는 중 세운상가와 대림상가 사이의 청계천 위가 좋겠다는 장소도 확인하였다.

세운상가에는 지하주차장이 없다는 점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는 큰 이점이라고 한다. 당시 세운상가가 건설될 때 자동차가 많지 않았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건물 부설 주차장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세계적도시 뉴욕 맨하튼은 주차장 설치가 의무가 아니다. 워낙 비싼 땅을 주차장으로 만드는 것이 비효율적인 것이다 세운상가 건너편 종묘 앞 지하에 대규모 주차장이 있어 박물관이 설립되어도 관람객의 주차 문제는 크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산업 발전의 메카인 세운상가에 지금과 같은 부동산 문제로 갈등을 일으킬 게 아니라 IT분야의 우리의 성취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흐름을 만드는 일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더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면 한국의 신화를 승화시키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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