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 잠수함, 전력 증강 아닌 부담될 가능성 없나

원잠은 설계와 제작보다 검증 기술과 주권 문제

2025-11-08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정부는 최근 핵추진 잠수함(원잠) 관련 “미국이 완제품 핵연료를 공급하고, 한국은 원자로와 선체를 자체 설계‧제작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전까지 논쟁이 되었던 우라늄 농축 문제를 우회한 것처럼 보이고, “드디어 원잠이 가능해졌다”는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연료가 들어온다고 해서 원잠이 완성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핵연료의 핵심은 수락 기준과 성능 검증 데이터

핵연료는 단순한 자재가 아니라, 기술·검증자료·안전기준·운용절차가 체계적으로 결합된 정보이다. 미국이 공급한다는 ‘완제품 연료’는 연료봉 또는 연료집합체 자체를 의미하지만, 핵심은 그 주변에 따라오는, 원잠에 사용될 때 적용이 가능한 수락 기준(acceptance criteria)과 성능 검증 데이터이다. 즉, 연료의 ‘형태’가 아니라 ‘입증된 신뢰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다음 네 가지 노심설계 자료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➀ 연료의 핵·열수력 성능 상관식- 임계예비도, 연소도 분포, 출력 평탄성, 열전도 특성 등 ➁ 제조·소결·피복 처리 과정에 대한 품질보증(QA)∙추적 문서 ➂ 조사 후 시험 데이터(PIE) - 조사 후 핵연료를 절단·측정·분석한 결과(한국 금지된 행위) ➃ 비정상·사고 조건에서의 피복 균열·가스 팽창·PCI/PCMI 거동에 대한 실증자료이다.

이 네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제공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연료가 안전하게 작동할 것이라는 근거를 가질 수 없다. 즉 ‘연료가 온다’는 것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현실적 제약이 등장한다. 미해군 핵추진 기술과 관련된 데이터는 미국의 NNPI(해군 원자력 추진 정보) 및 FRD(Formerly Restricted Data) 범주에 속한다. 이는 단순한 최고 보안등급(Top Secret) 수준을 넘어서는, 국가 최고등급(Restricted Data) 군사 기밀이며 미국 내에서도 법으로 정해진 극소수 외에는 접근이 제한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연료를 공급하더라도, 전시 경험 포함 70년 이상 축적된 미국의 검증 데이터 전체를 법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으므로 한국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법 개정이 불가피하다.

 

미국 해군의 버지니아급 원자력 잠수함.   나무위키

고장 수리나 사고 대응, 연료 교체 등 철저히 공급자 의존

그렇지 못할 경우, 한국은 미 의회의 동의를 거쳐 블랙박스 연료를 받아 운용해야 한다. 문제는 블랙박스는 고장 진단, 사고 대응, 성능 개선, 정비 계획 수립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원잠은 만들었으나 마음대로 고칠 수 없고, 연료교체와 정비는 미국 승인 아래서만 가능한 군사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운용 주권과 성능 신뢰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연료는 소모품이다. 교체주기 8~15년, 혹은 밀봉형일 경우 한 번의 수리·재장전 과정 자체가 공급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만약 연료 공급이 정치적 요인으로 중단되거나 지연된다면, 원잠은 움직일 수 없는 기동 불능 자산이 된다. 한 번 들여온 뒤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운용할 능력과 권한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 순간부터 원잠은 전력 증강이 아니라 전력 인질이 된다. 즉,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조건이다.

이를 감안할 때, 우리가 공급자에게 던져야 하는 핵심 질문 또는 요구사항이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미국은 연료 성능 검증 데이터(PIE·시험 결과 등)까지 제공하는가?
둘째, 한국은 연료의 수락검사·샘플 시험·실증 운전을 수행할 권한을 갖는가?
셋째, 원자로 고장 또는 연료 교체 시, 정비 주권은 한국에 있는가, 미국에 있는가?
넷째, 사용후핵연료의 반환·폐기 책임은 누가 지는가?
다섯째, 공급 중단 또는 지연시, 사고시 책임소재와 대체 공급·비상 운용 계획은 존재하는가?

이 질문들이 명확해지기 전까지는, “원잠이 가능해졌다”는 표현은 정보가 생략된 정치적 언어일 뿐이다. 원잠은 기술적 상징이 아니다. 국가전략의 지속성과 주권의 시험대이다. 연료는 단순히 ‘주는’ 것이 아니라 원자로 성능에 적합하도록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우리 바다와 영토에 상륙할 이 원잠의 연료 공급 계약의 부속 문서, 검증 자료 접근권 범위, 연료 교체 및 정비의 주권과 관련한 조건을 국회와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서둘지 말고 냉철하게, 명확하게, 투명하게 하라

원잠 전력화는 할 수 있다. 국민의 찬성 여론도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검증 없는 원잠, 주권 없는 원잠은 국가안보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게 오히려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냉철한 관점, 명확한 질문과 정확한 답변 요구이다.

결론적으로 핵잠은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전시에 믿고 쓸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설계와 건조는 시작일 뿐, 진짜 과제는 신뢰할 수 있는 검증 인프라(PIE·LBR), 법제화된 수락 기준, 전주기 비용 투명성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치적 선언으로 밀고 나가기 보다, 이 다섯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계획을 먼저 제시하길 촉구한다. 막대한 국가예산이 허장성세에 실속없이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PCI/PCMI : Pellet Cladding Interaction/Pellet Cladding Mechanical Interaction(연료 피복관 상호작용/연료 피폭관 기계적 상호작용)
+ PIE : Post Irradiation Examination(조사후 시험)
+ LBR : Land Based Reactor(잠수함에 넣기 전에 장기간 육상에서 돌려보는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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