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2호기, 생명 앞에서 멈춰야 한다

가동 43년 노후 원전 계속 운전 '위험 천만'

세계 원전 사고 대부분 수명 연장 이후 발생

생산 중단된 주요 부품 '역설계' 복원 '꼼수'

설비 교체 비용만 7000억원…경제성 없어

검증된 재생 에너지로 핵발전 한계 넘어야

값싼 전기 구실로 생명·미래 걸어선 안된다

2025-10-19     박철 시민기자(시인)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고리2호기는 맨 왼쪽. 연합뉴스 자료사진

바다 위 거대한 불씨

부산 기장 앞바다를 따라 달리다 보면, 해무 사이로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리핵발전소다. 바다를 향해 웅크린 듯 서 있는 그 구조물은 멀리서 보면 단단하고 견고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 도사린다. 바다는 늘 출렁이지만, 원전 앞의 바다는 이상하리만큼 정적이다. 파도는 철책 아래서 부서지고, 갈매기들은 그 위를 돌지만, 그 풍경 속엔 인간이 만든 불씨가 쉼 없이 타오르고 있다. 그 불씨는 전기를 만드는 기계이자, 문명이 생명과 위험을 맞바꾼 상징이다.

원전은 인간의 과학이 만든 가장 거대한 실험실이다. 그 안에서는 핵분열의 에너지가 전기로 바뀌지만, 그 에너지는 언제든 폭발적 재앙으로 변할 수 있다. 고리2호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양가적이다. 한쪽에서는 산업 발전의 증거로 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을 문명의 불안으로 본다. 우리가 편리함의 대가로 무엇을 잃어왔는지를 묻는 자리, 그것이 바로 고리 앞바다다.

고리의 역사, 그리고 질문의 시작

고리1호기는 1978년 처음 가동됐다. 그 시절, 한국은 산업화의 열풍 속에 있었다. '원자력은 근대화의 상징'이라 불렸고, 정부는 핵발전소를 국력의 증거로 선전했다. 그 시절에는 안전보다 속도가, 생명보다 개발이 앞섰다. 1983년 고리2호기가 문을 열 때에도, 사람들은 '위험'보다 '진보'의 단어를 들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진보'의 결과 앞에 서 있다. 고리1호기가 마침내 멈춘 것은 2017년이었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부산과 울산의 시민들은 "이제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고리2호기 수명 연장 논의가 시작됐다.

우리는 다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이 낡은 원전을 계속 돌려야 하는가?"
그 질문은 단순히 전기 공급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다.

노후 원전의 현실

고리2호기는 이미 40년을 넘겼다. 원전의 평균 설계수명은 30~40년이다. 인간으로 치면 환갑을 훌쩍 넘은 노년의 몸이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이 노후한 시설을 다시 수명 연장해 10년, 20년을 더 돌리려 한다. 그 결정의 위험은 숫자보다 깊다. 원전의 핵심 부품은 금속의 피로와 열화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 취약해진다. 고온과 방사능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배관과 격납용기는 미세한 균열을 품는다.

게다가 고리2호기의 주요 부품 중 상당수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한수원은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로 부품을 복원해 사용한다. 과거 기술을 복제하며 생명을 담보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안전의 기준은 기술의 한계 안에서 설정된다. 설계수명은 단순히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의 범위가 아니라, ‘이 이상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간의 경계선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경계선을 지우고 있다. 

마치 노후한 비행기가 정비 없이 다시 하늘로 오르듯, 낡은 원전이 다시 가동된다. 그 불안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통계가 이미 경고하고 있다. 전세계 원전 사고의 대부분이 '수명 연장 이후'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제222회 원자력안전위원회 방청 피케팅. 2025.9.25. [사진. 최인화]

경제 논리의 그림자

고리2호기의 계속운전을 추진하는 가장 큰 명분은 '경제성'이다. 정부와 사업자는 전력공급의 안정과 비용 절감을 내세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 전문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고리2호기를 10년 연장 가동할 경우 안전성 강화와 설비 교체 비용만으로 7000억 원이 필요하다. 반면 설비 이용률은 이미 떨어지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신규 원전이 늘어나면 고리2호기의 경제적 효율은 더 떨어진다. 경제 논리는 언제나 눈앞의 숫자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생명의 가치는 회계장부에 기록되지 않는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이 감당한 피해액은 700조 원이 넘는다. 그러나 더 큰 피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졌다. 이주는 물론, 공동체의 붕괴, 토양 오염, 아이들의 질병,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그 모든 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따라서 고리2호기의 수명 연장은 이윤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다. 경제성으로 생명을 재단하는 사회는 결국 자신을 파괴한다.

부실한 심사, 무시된 경고

지난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심사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는 대기확산 인자가 국제 기준보다 지나치게 낮게 산정됐고, 해양 방사선 영향 평가도 누락됐다. 안전성 평가의 절차상 문제, 부품의 내진성 검토 미비, 사고관리계획서의 불완전한 제출 등이 시민사회에 의해 지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이런 부실은 단지 기술적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적 절차의 붕괴다. 원전 안전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결정의 문제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이루어지는 결정은, 과학의 이름을 빌린 폭력이다. 부산·울산·양산의 시민사회는 지난 수년간 끊임없이 외쳤다. "생명보다 값싼 전기는 없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실험대에 올리지 말라." 그러나 그 외침은 '비전문가의 감정'이라며 묵살됐다. 그러나 진실은 기술보다 생명의 편에 있다. 시민의 경고는 언제나 역사의 예언이 되어 왔다.

인구 밀집 지역의 위험

고리 원전 반경 30km 안에는 3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살고 있다. 부산, 울산, 양산, 경남의 산업단지와 항만, 공항이 그 안에 있다. 이곳은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다. 만약 고리2호기에서 단 한 번의 사고라도 일어난다면, 그것은 지역적 재난이 아니라 국가적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고리 원전은 세계에서도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 위치한 원전 중 하나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일본 정부는 반경 20km 이내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그러나 고리 주변은 이미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사고 시 대피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도로는 막히고, 시간은 없다.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불면, 부산 전역은 순식간에 피난 불능 지대로 변할 것이다. 사고의 확률이 낮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핵사고의 본질은 확률이 아니라 규모의 문제다. 단 한 번의 실패가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제222회 원자력안전위원회 방청 피케팅. 2025.9.25. [사진. 최인화]

기후 위기와 지진 위험

기후위기는 핵발전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킨다.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은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증명했다. 당시 고리 원전은 진동 감지로 일시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설계 기준이다. 고리2호기의 내진 설계는 1970년대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 현재의 지진 규모와 빈도를 반영하지 못한다. 또한 해수면 상승과 폭풍, 집중호우는 원전의 냉각 시스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냉각수가 막히거나 펌프가 정지되면, 원자로는 순식간에 과열된다. 후쿠시마의 교훈은 단 하나다. 자연의 변수 앞에서 완벽한 안전은 없다. 핵발전은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기술이다. 우리는 그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루며' 살아간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미룸이 돌아온다.

재생에너지와 핵발전의 한계

핵발전이 탄소중립의 해법이라는 주장은 이미 설득력을 잃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이미 경쟁력을 확보했다. 독일, 덴마크, 스페인 등은 2030년까지 원전 없는 전력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원전은 여전히 중앙집중형 구조에 묶여 있다. 사고가 나면 피해도 중앙집중적으로 몰린다. 무엇보다 핵폐기물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사용 후 핵연료는 수만 년 동안 냉각과 격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전기의 이면에는, 먼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방사능의 짐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핵발전의 가장 큰 부채다. 재생에너지는 단지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의 질서다. 분산형 에너지, 지역 자립, 생태적 순환의 철학이 깔려 있다. 반면 핵발전은 여전히 국가 권력과 대기업 중심의 중앙집권적 체제를 유지한다. 고리2호기의 연장은 단순히 낡은 원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다.

도덕적 선택과 생명의 윤리

고리2호기의 수명 연장은 기술적 판단이 아니라 도덕적 선택이다. 과학기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원전정책은 기술이 인간 위에 군림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멈추는 법을 잊는다. 그러나 문명의 진보란 더 많은 것을 짓는 데 있지 않다. 멈출 줄 아는 데 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인간이 자연의 경고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과학이 윤리를 잃으면 그것은 폭력이 된다. 고리2호기를 계속 돌리겠다는 것은 단순히 한 발전소를 유지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보다 효율을 우선한다"는 사회의 도덕적 선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진보한 사회라면, 그 선언을 거부해야 한다.

생명을 지키는 결단

부산의 바닷바람은 언제나 짠내가 난다. 그 바람에는 바다의 숨결, 세월의 기억, 그리고 인간의 선택이 섞여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전기가 아니라 생명이다. 값싼 전기를 얻기 위해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다면, 그것은 이익이 아니라 파멸의 거래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의 시대에, 노후 원전은 이미 과거의 유물이다. 지금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단순한 전력 수급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미래 세대의 존엄에 관한 선택이다. 멈추는 것은 퇴보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예의다.

 

2021년 10월 고리2호기 앞에서 피켓기위를 하는 필자 [사진. 장영식]

시민의 목소리, 희망의 씨앗

고리 앞마을에는 수십 년째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마을을 지켜주세요." 그 문장은 정치 구호가 아니라, 생명의 언어다. 지역 주민들은 방사능 검사를 직접 하고, 아이들의 급식 재료를 살핀다. 그들의 일상은 이미 ‘탈핵 운동’ 그 자체다. 한 어머니는 말했다. 

"우리 아이가 자라서 이 바다를 보며 '여기 원전이 있었대요'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있었어요', 과거형으로요."

그 소망은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다. 생명을 지키는 일은 거창한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 작은 결단들이 모여 역사를 바꾼다.

멈출 줄 아는 용기

이제 우리는 다시 묻는다. 값싼 전기를 위해 과연 생명과 미래를 걸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인류는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된다. 진정한 진보는 멈출 줄 아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멈출 줄 아는 용기,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덕목이다. 그 용기는 두려움이 아니라 책임의 이름이며, 문명이 성숙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다. 우리가 멈출 때, 생명은 다시 숨을 쉰다. 고리2호기를 멈추는 일은 단순한 반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생명의 편에 서겠다는 선언이다. 그 선언이 부산의 바다 위에, 한반도의 미래 위에,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빛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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