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투기 '중국 풍선' 격추…미·중 대립 격화
스텔스기 미사일 발사…중국 "민간용에 무력 사용"
미국 수거 잔해 분석 '정찰용' 결론 나올지에 촉각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중국 풍선’ 사태가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미국 국방부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4일(현지시간) 영공을 침범한 “중국 정찰 풍선”(Spy balloon, 미국 주장)을 F-22 스텔스 전투기 등을 동원해 격추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기상관측용 민간 풍선”이라고 거듭 해명했는데도 미국이 무력을 동원해 격추한 것은 국제 관례에 배치된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미·중 관계에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수거한 잔해를 분석해 ‘정찰용 풍선’이라는 결론에 이른다면 그야말로 양국 관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된다.
바이든 “빨리 격추” 지시…스텔스기 미사일 발사
중국의 “정찰용” 풍선이 격추된 곳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해안 영공이었다. 약 6만∼6만 5000ft(약 18∼20km) 고도에 있던 풍선을 버지니아주 랭글리 기지에서 출격한 F-22 스텔스 전투기가 이날 오후 AIM-9 공대공미사일 한 발로 격추했다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바다에는 해군 구축함과 순양함, 상륙선거함 등이 잔해 수거 등을 위해 대기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포착한 지 일주일만이다. 풍선은 지난달 28일 알래스카 서쪽 끝의 알류샨 열도에 진입하면서 포착된 이후, 캐나다(1월 30일)와 미국 아이다호주(1월 31일)에 이어 몬태나주(2월 1일) 상공을 차례로 떠다녔다.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격납고가 있는 몬태나주 상공에 도달했을 때 격추를 검토했다가, 지상 피해를 우려해 계획을 접었다.
풍선 격추 직후 바이든 대통령은 메릴랜드주 해거스타운에서 “수요일(2월 1일) 브리핑을 받을 때 최대한 빨리 격추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연방수사국(FBI)과 함께 풍선의 잔해와 정찰용 장비 등 정보 가치를 지닌 모든 물체를 최대한 수거할 방침이어서 그 분석 결과가 주목된다. 미국은 중국의 또 다른 풍선이 최근 중남미에서 포착됐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아시아와 유럽 등 5개 대륙에서 풍선들이 발견됐다면서 중국이 “정찰용 풍선 선단”을 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앞서 미국은 이번 사태를 중국의 “정찰 풍선”이 영공을 침범한 심각한 안보 사안으로 규정짓고 5∼6일로 예상됐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을 출발 직전 연기했다. 이는 미·중 관계의 악화를 막고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등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거시경제와 기후변화, 북핵 등 공동 현안을 협의할 기회였으나 뜻밖의 사태로 무산됐다.
중국 “민간 무인 비행선에 무력 사용” 반발
중국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영공 침범에 유감을 표하고 “민간용” 풍선이라고 거듭 해명했는데도 미국이 굳이 무력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었냐는 게 중국의 시각이다.
중국 외교부는 5일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을 통해 “미국이 무력을 사용해 민간 무인 비행선을 공격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과 항의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중국은 검증을 거쳐 이 비행선이 민간용이고 불가항력으로 미국에 진입했으며 완전히 의외의 상황임을 이미 여러 차례 미국에 알렸다”고 했다. 나름 성의를 다했는데, 미국의 대응이 과도하다는 항변이다.
중국 외교부는 문제의 풍선이 지상에 군사적으로나 신변 차원에서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했던 미 국방부 대변인의 발언을 거론한 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무력을 동원해 과잉 반응을 보인 것은 국제 관례를 엄중히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중국은 관련 기업의 정당한 권익을 단호히 보호할 것”이라고 말해 미국의 동향을 봐가며 추가 대응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중국 외교부는 미국을 향해 “냉정하고 전문적이며 자제하는 방식으로 적절히 처리할 것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미국이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에둘러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듯 이번 중국 풍선 사태를 보는 미국과 중국의 시각이 워낙 달라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전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중국 외교라인 최고 책임자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의 통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그대로 노출됐다.
블링컨은 “국제법뿐만 아니라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고, 왕이는 “중국은 책임지는 국가로, 일관되게 국제법을 엄격히 준수해왔다. 어떤 근거 없는 억측과 허위 선전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앞으로 관건은 수거한 풍선 잔해에 대한 미국의 분석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다. 양국 관계에 최악의 상황은 미국이 ‘정찰용’으로 결론짓고, 중국은 ‘허위 분석’이라고 맞설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