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찰 3500억 달러가 무슨 ‘애 이름’인가?
트럼프 미국이 한국을 졸로 보고 있다
최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의 ‘관세협상’을 빌미로 한국더러 미국에 ‘3500억 달러(491조 원) 선불’을 요구했다는 뉴스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2/3에 이르는 거액이다. ‘강탈’과 다름없는 트럼프의 요구에 이재명 대통령은 점잖은 말로 ‘상업적 합리성’이 필요하다며 에둘러 거부 의사를 표현한 바 있다. 여당인 민주당 안의 ‘더민주혁신회의’도 트럼프를 향해 “동맹의 탈을 쓴 도둑질을 멈춰라”고 노골적으로 외치고 나섰다. 조국 비대위원장(조국혁신당) 역시 한국의 대미 투자 3500억 달러를 선불로 하라고 한 데 대해 “투자 협정의 외피를 두른 불평등 조약”이라 맹렬히 비판했다. 사태가 급속히 험악해지자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마치 산불 진화에 나선 듯, “현금을 내는 건 가능하지 않다”거나 “오버 플레이하지 않아야 된다”면서도 트럼프의 ‘선불’ 발언이 얼마나 정확한지 “진의를 확신할 수 없다”며 우왕좌왕한다.
직접투자 이름 아래 벌어지는 자본 약탈, 고용 약탈, 기술 약탈
9월 초, 조지아 주 공장에서 수백 명 한국인 노동자들을 마치 도망 노예나 위험한 현행범 취급하듯이 다룰 때부터 수상했다. 아니, 실은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1990년대 이래의) ‘신자유주의’ 아래 무관세 자유무역 체제가 강요될 때부터 수상했다. 그 당시는 마치 자유무역체제(FTA)가 세계 모든 나라의 삶을 향상시키고 행복한 세계를 앞당길 듯이 선전하더니, 2025년 트럼프 재등장 이후 느닷없이 무관세 자유무역 체제를 버리고 고관세 보호무역 체제를 강요하고 있다. 미국 눈치만 보며 실익만 살살 챙기려던 나라들(대표적으로 일본과 한국)을 ‘졸’로 보더니, 그걸 지렛대 삼아 이제는 보호무역을 넘어 직접투자라는 이름 아래 자본 약탈, 고용 약탈, 기술 약탈을 노리고 있는 것이 현 사태의 본질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아직 한국을 모른다. 아니, 트럼프는 아직도 한국이 윤석열 식의 무개념 정치를 하기에 얼마든 농락 가능한 수준이라 믿고 있는 듯하다. 하기사 윤석열은 2022년 5월, 미국의 ‘날리면’(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과거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책상에 뒀던 것과 동일한 명패를 선물했을 때, 마치 자기가 미국 대통령이 된 듯 착각했는지 모르나, 그것은 실은 미국이 식민지 총독에게 어깨 한 번 두드려주는 모양새에 불과했다. 그 명패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을 가진 “The Buck Stops Her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지만, 왕(王) 놀이에 정신을 못 차리던 윤석열은 국가 전복적인 12·3 계엄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기는커녕 지금까지 어리광만 부리고 있다. 바이든 뒤에 들어선 트럼프는 윤석열 정권 뒤에 들어선 이재명 정권까지 그런 장기판의 졸만도 못한 수준으로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한국의 대통령도, 민중도 만만하게 보지 말라
그러고 보면, 미국 공화당의 트럼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민주당의 바이든조차 한국을 ‘우방’이 아니라 마름 내지 막내동생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일본이 마치 일제가 없었다면 한국의 산업화는 불가능했다고 믿듯이, 미국은 마치 미제가 없었다면 한국의 민주화는 불가능했다고 믿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걸 전제로 이제는 한국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니 미국의 요구대로 ‘팡팡’ 내놓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이제 한국은 과거와 다르다. 민도도 높아졌고 대통령도 다르다. 물론, 얼마나 ‘근본적으로’ 다를지는 열린 변수다. 여하튼 한국은 미국의 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생각해 보라. 2008년 이명박 시절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관련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시위 행렬을! 그 뒤 17년이나 흐른 지금, 촛불시위 내지 응원봉 시위 행렬은 더욱 확장되었고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더욱 젊어졌다. 2008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였는데, 2025년 미국 대통령 역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다. 그러나 2008년 당시의 한국 대통령은 미국에 맹종하는 이명박이었지만, 2025년의 한국 대통령은 “미국은 피스메이커, 한국은 페이스메이커”를 하겠다며 당당히 나선 이재명이다. ‘근본적’ 변화는 어려울지 몰라도 ‘상당한’ 변신은 가능할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적 변화의 추이를 예리하게 꿰뚫어보는 풀뿌리 민중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스스로 얼마나 강고한 그물망을 엮어낼 수 있는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 몇 가지 중요한 측면을 짚어 보자.
더 이상 약탈 불가능할 정도로 쪼그라든 자본주의 세계
첫째, 최근 온 세상이 트럼프 식의 극우파가 준동하는 식으로 ‘퇴행’하는 근본 동인은 그간 300년 이상 달려온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저물고 있다는 징후다. 1945년부터 약 30년 간의 자본주의 황금기, 즉 먹을 게 많던 시절, 나눌 게 많던 시절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먹을 게 쪼그라드는 시점에서는 마음씨 좋던 사람조차 날카로워진다. 그런 균열을 파고들며 선전선동에 박차를 가하는 논리가 인종주의, 혐오주의, 차별주의, 배척주의, 극우주의, 파쇼주의, 전쟁주의다. 풀뿌리 민중은 이런 파괴의 움직임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 혐오’ 분위기가 제법 높은 서울 대림동 일대에서 이주민과 원주민, 활동가 등 150여 명이 직접행동에 나선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이주민인 박동찬 경계인의목소리연구소장은 “오늘 대림동이 그들의 표적이라면, 내일은 또 다른 동네, 또 다른 사람이 그 화살을 맞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혐오의 사슬을 지금 여기서 끊어내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둘째, 한국 자본주의 역시 미국이나 유럽 식의 황금기를 꿈꾸어서도 안 되고 꿈꿀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겉으로만 보면 미국과 유럽이 저물고 있는 이 시기가 한국엔 ‘찬스’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제는 아시아의 시대, 이제는 한반도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허황된 꿈을 꾼다. 그러나 이는 한마디로 ‘헛발질’이다. 지금까지 미국이나 유럽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은 지금 트럼프가 보여주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약탈’의 길이었다. 인간 노동을 약탈하고, 해외 식민지를 약탈하고, 전 지구적인 생태계를 약탈한 것이다. 이제 그 약탈도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마치 암세포가 더 이상 뜯어먹을 싱싱한 신체가 사라지면 스스로 죽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풀뿌리 민중은 이런 약탈의 길이 아닌 상생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군사기지라는 빨대 뽑아내는 발상의 전환
셋째, 범위를 좁혀 한반도에 집중해 보자. 한국은 남한과 북한으로 나눠진 분단 상태를 극복함과 동시에 한반도 민초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돈과 사람, 기술을 새롭게 쓰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강요하는 ‘선불금’ 3500억 달러 등을 단호히 거부하고 하나씩 이 방향으로 돌려 보면 어떨까? 수만 명의 미군 부대와 사드 기지, 제주 강정 해군기지 등을 배치하고선 수천 만 남한 민초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빨아가는 미국의 빨대 자체를 걷어 내자. 실은 미국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자본, 심지어 한국 자본조차 세상 민초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쫄쫄’ 빨아 간다.
이 모든 프레임을 다 걷어내고 그나마 억지로 분단되어 서로 적대하는 남북한이 다시 형제자매로 거듭나면 어떨까? (북한 역시 미국이나 남한이 ‘적대’의 눈을 일관성 있게 청산하지 않는 한, 핵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힘으로 영세중립국 내지 비동맹국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자유무역체제(FTA)가 아닌 민중무역체제(PTA)를 구축하면 어떨까? 풀뿌리 민초들도 이렇게 발상의 전환을 많이 해나가면 좋겠다. 삶의 혁명적 변화를 위한 발상의 전환, 이것이 우리의 피, 땀, 눈물을 강도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