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 조례로 분명히 해야
반복되는 지자체 예술 검열 방지 위한 우선과제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대구시, 서울시, 성북구 같은 지자체에서 예술 검열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그때마다 피해 당사자와 시민사회는 다각적으로 대응을 하며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으나, 책임자들은 한결같이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는 논리들을 앞세우며 회피하기 바빴다. 사실 이 같은 광경은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것이었다. 이제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를 파괴하는 이 고질적 문제를 타파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앞서 언급한 사건들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되살피며 실마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
전시장 폐쇄, 상금 철회, 철거… 반복되는 지자체 예술 검열
먼저 대구시의 사례다.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2024 올해의 청년작가전’에 선정된 안윤기 작가가 홍준표 전 시장과 노중기 대구미술관 관장의 카르텔을 은유적 동성애로 풍자했다는 이유로 전시장을 폐쇄하고 상금을 철회했다. 이들은 명예훼손을 운운했지만, 공적 권력을 가진 이들에 대한 풍자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 감시, 견제에 따른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대구시 측은 자의적인 논리를 앞세워 비판적 표현을 억압했고, 이에 대한 피해자의 공론화도 철저히 무시했다. 마찬가지로 최근 대구시 중구청장 류규하는 봉산문화회관의 특별전에 출품된 홍성담 작가의 작품들을 문제 삼으며 전시장을 폐쇄했다. 그 이유는 홍성담 작가의 작품들이 국정을 파탄 내고 내란까지 일으킨 윤석열을 풍자하는 정치적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즈음에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범어지하도 상가에 위치한 오픈갤러리B에서 열린 전시에 출품된 평화통일실천연대 측의 작품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삼아서 정치적이니 철거가 필요하다며 나서기도 했다.
한편, 서울시에서는 두 가지 예술 검열 사건이 불거졌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12.3 계엄령을 비판한 내용이 담겨 정치적 중립성을 벗어났다며 남웅 평론가의 원고를 전시 도록에 수록하지 않았다. 사건이 공론화되자 서울시립미술관은 소통 과정의 오해로 문제를 축소했다. 서울문화재단의 경우는 작년에 웹진 '연극in'의 휴간을 갑자기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연극in'의 2024년 희곡 공모에 선정된 6인의 작품에 대한 웹진 게재와 원고료 지급도 구체적 대책 없이 중단되었다. 이후 재단 측은 1년 넘게 당사자와 예술 현장의 거듭된 문제 제기를 무시했다.
헌법과 법률이 통하지 않는 행정 폭력
서울시 성북구에서는 성북문화재단과 협업해 꾸준히 전시를 진행해 온 ‘고개엔마을 협동조합’이 특정 작가의 배제를 요구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당한 근거도, 절차도 부재한 행정의 표면적 발현지는 역설적으로 조합과 오랜 시간 협업을 이어온 성북문화재단이었다. 이에 조합 측은 다양한 공론화를 통해 항의를 이어갔으나, 재단은 보복성 감사, 관계 주민에 대한 협박, 시위에 대한 폭력적 제지 등을 이어갔다고 알려진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성북문화재단 대표이사 서노원의 연임을 승인하며 이 검열을 사실상 옹호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처럼 권위주의를 내세운 행정 폭력의 고리를 어디서부터 끊어내야 할까. 우리 헌법은 예술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전 검열을 금지한다. 그리고 예술인권리보장법은 국가기관 등에게 예술창작의 자유를 보호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지 말 것과 정책 결정 과정에 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을 명시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준이, 앞서 언급한 사례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행정 영역에서 너무나 쉽게 무시된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헌법, 법률 차원의 보완도 일부 필요하겠지만, 법률 안에서 지역의 구체적 사무들을 규정하는 자치 법규인 조례를 통해 대안을 마련할 지점도 분명 존재한다. 이미 헌법과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시한 가치와 기준을 지방 조례로 더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례 제정, 행정 책임 추궁 등 지방의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우선 서울시립미술관을 포함한 사업소 운영의 근거인 「서울특별시 행정기구 설치 조례」에 문화민주주의적 운영 원칙을 명시할 필요가 있겠다. 이를 위해서 문화·예술에 대한 사전검열이 금지됨을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행정기구의 중요한 의사결정의 과정과 결과는 최대한 공개하는 동시에 시민과 예술가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함도 담을 필요가 있다. 또한 서울문화재단, 성북문화재단,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등과 같은 지자체 출자·출연기관을 규정하는 조례에서도 이 같은 원칙들을 명시해야 한다. 한편 홍성담 작가의 작품들을 검열하는데 동원된 근거인 ‘봉산문화회관 운영 조례’ 제5조에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간주되는 행사는 제한이 가능하다와 같은 기준은 자자체는 물론이고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관성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는 상위법 우선 원칙을 무시하고 있으므로 삭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조례를 제정하는 지방의회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앞서 다뤄진 사례와 같이 명백히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즉시 다루고, 관련 기관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따져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제도적 보완점이 도출된다면 최대한 당사자 단위의 참여와 숙의를 거친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