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희생자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추모제 '이어 이어라'

토벌대 총탄에 없어진 턱 평생 천으로 가려

후손들이 할머니 생가 터 기증 '삶터' 보존

행사 이름처럼 아픔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2025-09-25     한요나 시민기자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21주기 추모 문화제가 6일 제주 한림읍 진아영 할머니 삶터에서 열렸다. 산오락회의 공연 모습.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9월 초 제주 한림읍 월령리 해변공연장에서 '이어 이어라'라는 특별한 이름의 공연이 열렸다. 4.3 희생자 진아영 할머니(1914~2004)의 21주기 추모 문화제다.  '월령리 마을회'와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쉼터보존회'가 주최하는 추모 문화제가 해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9월 8일) 즈음에 열린다.

진아영 할머니는 원래의 당신 이름보다 '무명천 할머니'로 알려져 있다. 할머니는 4.3이 일어난 다음해인 1949년 1월 집 앞에서 할머니를 무장대로 오인한 토벌대가 쏜 총탄에 턱을 맞아 이후 평생을 후유 장애의 고통 속에 사셨다.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총상으로 없어진 턱을 하얀 '무명천'으로 가린채 사셨기에 그런 아픈 별칭이 붙었다. 평생을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셨던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는 2004년 세상을 떠나셨다.

 

제주4.3사건으로 인한 비극과 고통의 상징인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90)씨의 생전 모습. 진 할머니는 경찰이 쏜 총탄에 턱을 잃고 이렇게 천으로 턱을 두른채 55년을 살다가 9일 오전 타계했다. 2004.9.9. (제주=연합뉴스)

공연장으로 가기 전에 진아영 할머니가 사시던 집을 돌아봤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후손들이 집 터를 기부했고, 시민단체들과 마을 주민들은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를 구성해 할머니의 생가를 지킬 수 있었다. 그 곳에는 할머니가 생전에 쓰시던 물품들이 그대로 보전돼 있었다. 할머니가 기르시던 선인장도 남아 있었다.

21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린 지난 6일은 9월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로 무척 더운 날씨였다. 공연을 준비한 스텝과 아티스트들은 추모제 내내 땀을 비오듯 흘렸다.

추모제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노래와 춤, 인형극, 랩과 국악 공연 등이 이어졌다. 역사 모임 답사로 찾았을 때와는 다르게 굉장히 뜨거운 추모 열기에 놀랐다. 개인이나 모임 등에서 나누는 추모와는 다른 느낌이 강하게 각인된 시간이었다.

 

진아영 할머니 21주기 추모문화제 '이어이어라' , 사진 한요나 시민기자

답사가 의미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추모 행사는 1년에 하루이고 남은 364일은 꾸준한 방문이나 답사가 있어야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만나뵙고 기억하지 않겠나.

공연 하나하나에서 진심으로 진아영 할머니에 대한 추모의 눈빛이 보여 더 의미가 깊었다. 초대된 아티스트들은 단순히 관객들에게 즐거움이나 흥미만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추모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꼭 그 자리에 적합한, 진심으로 할머니에 대해 많은 관심과 애정을 지니고 있는 공연진 덕분에 관객들과 서로 추모의 마음을 주고받는 공연이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추모의 한 마음으로 연대가 이어지고, 이 공연을 처음 본 사람들도 내년에는 또 다음 추모 문화제에도 참석하게 될 것이다. 추모와 연대는 더욱 넓고 깊어져 갈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연대가 필수적이다.

민주화 항쟁이나 촛불혁명, 빛의 혁명에서도 노래와 연대의 힘이 있었다. 투쟁의 역사 속에서 예술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 주최측과 참가 시민들이 노래와 연대로 지칠 수 있던 마음들에 큰 용기와 힘을 얻었고 동지라는 소속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진아영 할머니 21주기 추모문화제 '이어이어라' , 사진 한요나 시민기자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서 민주화가 이어지는 내내 꾸준히 지속적으로 투쟁이나 추모를 주최하는 단체들이 존재해왔다. 그들은 힘든 투쟁의 과정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투쟁을 이어왔다. 어쩌면 내란이 종식된 이후는 그러한 단체들의 노고와 정성들에 대해서도 다시 감사와 관심을 가져야하는 시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추모제를 함께 하면서, 도 차원에서 홍보가 다소 부족했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길가 현수막이나 가로수 깃발 등으로 알기쉽게 홍보를 하는 일에 적극적인 행정적인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이어질 추모 문화제에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 기왕 오시는 김에 정란희 작가의 동화 '무명천 할머니'를 읽어보면 더욱 뜻깊은 답사와 공연 관람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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