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특별자치도’가 꿈꾸는 특별한 ‘주민’자치

경기 북부의 성공 위해 자유 발전의 길 열어줘야

2025-09-23     신동진 공정귀촌
신동진 마을활동가

코가 렌조 : “조선의 실력이 충분해진 후에는 자치를 요구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현실은 조선을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몽양 여운형 : “잊지 마십시오! 실력을 양성하는 데는 자유 발전이야말로 최대 요건이요, 최속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자유 발전이야말로 실력 양성의 최대 요건이오”

1920년 11월 20일. 조선의 식민지 사무를 총괄하는 일본의 척식장관 코가 렌조와 몽양 여운형 선생이 나눈 대화 중 일부다. 1919년 3.1혁명이 발발하고 일제는 전 민족적으로 일어난 독립만세 시위, 파리 강화회의 참석, 그리고 임시정부 수립 등의 일련의 과정은 특별한 기획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보고 그 배후세력을 탐색했다. 그 결과 그 배후세력의 핵심 인물로 상해교민단장이자, 신한청년당의 대표인 몽양 여운형을 지목하고 독립운동 세력을 분열시키기 위한 공작의 일환으로 그를 일본으로 불러들였다. 위 대화는 그렇게 일본으로 초청된 몽양 선생이 코가의 저택에서 나눈 대화다.

당시 일제는 코가 척식장관을 비롯해 육군대신,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내무대신, 체무대신 등이 몽양 선생을 만나 권력, 돈, 신문명 등으로 회유, 협박, 매수 등을 통한 굴복을 꾀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당시 33세의 청년 여운형은 나이로 아버지뻘 되는 일제의 고관대작들을 마치 도장깨기를 하듯 모두 논리적인 웅변으로 물리쳤다.

오래전 독립운동의 일화를 소개하게 된 이유는 최근 도올 김용옥 선생이 쓴 「새 시대의 새 지도자 몽양 여운형」을 읽으며, 위 대화가 최근 내가 하고 있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와 관련해서 특별하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위 코가 척식장관의 발언 중 ‘조선’이 내게는 ‘경기 북부’로 읽혔다.

“경기 북부의 실력이 충분해진 후에는 자치를 요구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현실은 경기 북부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바로 지금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반대하는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중앙정부의 논리다. ‘경기 북부는 세수(稅收)가 부족하고 재정이 열악하니 일단 경기 북부의 경제를 발전시킨 후 분리해야 한다’ 라는 논리다. 이른바 시기상조론이다. 이런 반대논리 속에서 경기 북부의 경제는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자치 시기상조론 속에 더 열악해지는 경기 북부 경제

 

자료 :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민관합동위원회

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기 남북부의 1인당 GRDP의 격차는 늘어나고 있다. 경기북부의 1인당 GRDP는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자료 :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민관합동위원회

경기 북부는 접경지역, 수도권, 상수원 등 각종 중첩규제로 경제발전을 일궈 낼 투자가 어려운 지역이다. 결국 특별법으로 합리적인 규제 정비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선 경제발전 후 특별자치도’를 얘기하며 시기상조를 얘기하는 것은, 더 나락으로 빠지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이런 경제적인 조건뿐만 아니라 내가 가평군에 귀촌해서 본 상황은 기본적인 헌법적 권리가 보장되는 곳인가 하는 의문까지도 들게 했다. 가평군에 산부인과 병원, 소아청소년과 병원, 전문의도 전무했고, 경기 남부에 6곳이나 있는 상급종합병원이 경기 북부에는 단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경기 남부에 26곳이나 있는 4년제 대학이 경기 북부에는 단 4곳뿐이었다. 전국적으로 봐도 매우 적은 수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로 인해 4년제 대학을 유치하기가 힘들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민관합동위원회

국가 안보와 수도권 상수원 보호를 위해 특별한 희생을 강요받아온 경기 북부의 균형발전은 국가의 책무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에는 관련 정책이 없다. 과제 49번 ‘5극3특’과 중소도시 균형성장 과제의 주요 내용을 보면, 「ㅇ (특별지자체 출범 지원)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을 위해 5극 초광역권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별 특별지자체 설치·운영」이라고 돼 있어서, ‘수도권’에 묶여 있는 경기 북부는 오히려 ‘특별지자체’ 예외 지역이 돼버렸다. ‘수도권’이라는 등잔의 어두운 밑이 바로 경기 북부인 것이다.

‘담대한 전환’의 삶 통해 ‘잘사니즘’ 구현할 수 있는 지역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범도민추진위는 지난 8월22일 ‘대한민국 대전환을 위한 값진 도전 경기북부특별자치도’라는 주제로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난 범도민추진위의 입장을 대변해 발표를 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국회토론회 - 2025. 8. 22.(금) 국회도서관 대강당

“흔히 지금이 ‘문명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한다. 기존의 삶을 만들어왔던 문명이 전 지구적 공멸의 위기, 대한민국 소멸의 위기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 위기는 크게 ‘지구열대화’, ‘불평등의 심화’, ‘전쟁’으로부터 비롯되고, 그 뿌리에는 서양 근대 이후의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과 약탈적 자본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그래서 대전환은 이 뿌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드높은 문화의 힘’으로 전 세계를 주도하려 한다면 바로 이 대전환의 문화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기존 패러다임에 강력하게 포획된 세계 질서 속에서 그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계속 기존 질서 속에서 ‘거대한 가속’을 하며 공멸을 앞당기는 ‘K-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할까? 나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가 ‘담대한 전환’의 쇄빙선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란다. ‘생태’, ‘순환 경제’, ‘평화’의 가치로 각각 ‘지구열대화’, ‘불평등’,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값진 도전을 할 수 있는 특별자치도이길 바란다. 기존 3개의 특별자치도와 비슷한 또 하나의 특별자치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갖는, 주민자치 권력으로 대한민국 대전환을 이끄는 특별자치도가 되길 바란다. 대한민국이 한 번에 하기 힘든 대전환을 선도적으로 구현해 보는 도전의 땅이 되길 바란다. 마치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연천군 청산면에서 농촌기본소득을 시범적으로 실시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경기 북부는 넓은 생태보전지역이 있고, 평화가 어느 지역보다도 필요한 접경지역이고, 도농 복합 지역이자 땅의 넓이와 약 365만의 인구 규모로 순환경제의 여건도 갖춘 곳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을 얘기해 왔다. 그 ‘보상’이 ‘돈’보다는 연방제 수준의 분권,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값진 도전을 지원하는 것이기를 바란다. 과거 중앙집권적 국가 전략 속에서 ‘먹사니즘’을 위해 ‘무작정 상경’을 했다면, 이제 ‘담대한 전환’의 삶을 통해 ‘잘사니즘’을 구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경기북부특별자치도로 이주하는 새로운 풍조가 생기길 기대한다.”

지방‘행정’ 권한 강화에 멈춰 서있는 지방자치

위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범도민추진위의 주장은 기존 경제성장 트랙에서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특별한 트랙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특별자치도 성격의 자치도를 하나 더 추가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대전환의 쇄빙선 역할을 할, 전혀 다른 지방자치 정책실험의 플랫폼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지난 9월 12일 강원도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한 강원도 춘천시민의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이재명 대통령 강원도민 타운홀 미팅

“대통령님, 강원도는 매년 8조, 9조, 이제는 10조. 사상 최대 국비 확보라며 홍보에만 열을 올립니다. 그런데 도민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많은 돈 다 어디 갔는데? 특별자치도가 출범했지만 도민들은 ‘무엇이 특별해졌는가’라고 묻고 있습니다”라며 “강원특별자치도에 실질적인 권한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자치권한 확대는 다 맞는 말씀이다. 기본적으로 맞는 말씀이셔서 안전장치를 만들어 가면서 지방정부, 자치정부들의 권한은 최대한 확대하고 자율성도 높여가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이 질의 답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특별자치는 주권자에게 효능감을 주는 자치가 아니다. 그래서 지방정부의 권한을 최대한 확대하고 자율성을 높이되 안전장치를 만들어 가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서 ‘안전장치’가 무엇이 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확대하고 높여야 할 것은 지방행정의 권한이 아니라 풀뿌리 주민의 권한, 즉 주권자에게 실권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를 시작할 때 중앙권력은 지방자치로 인해 발생할 폐단을 우려했지만 지방자치로 인해 우리 민주주의가 크게 발전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로 실적을 내며 국회의원과 대통령으로 선출돼 국민주권시대를 연 이재명 대통령이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초지자체에서 살고 있는 마을활동가의 처지에서 보면 지금의 지방자치는 아직 풀뿌리 주민자치의 단계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즉 지방자치는 지방‘행정’의 자치 강화에서 멈춰 서 있다. 이 강화된 지방‘행정’의 자치는 지역 내 지연, 혈연, 학연 등과 얽혀 토착비리와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기초지자체 행정은 주민들에게 권한을 주면 폐단이 우려된다며 과거 중앙권력이 보였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주권정부는 바로 이 멈춰 선 자치의 흐름을 터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안전장치’는 바로 이 역할을 해야 한다.

주민자치야말로 지방정부의 권한 남용 막는 ‘안전장치’

강원타운홀미팅이 열리던 9월 12일 바로 그날, 국회에서는 주민자치회 법제화와 마을공동체활성화 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2025 풀뿌리 자치 전국주민행동 대회’가 열렸다. ‘빛의 혁명’을 거치면서 더욱 높아진 풀뿌리 주민자치와 직접민주주의 확대의 열망을 입증이라도 하듯 예상 참여 인원을 훌쩍 뛰어넘는 1천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이들에게 실질적인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지방정부의 권한 남용을 막는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범도민추진위가 지향하는 특별자치도는 바로 이런 풀뿌리 자치와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 심화를 통해 특별한 ‘행정’의 자치가 아니라 특별한 ‘주민’의 자치가 풍성한 특별자치도다. 자치권한 확대에 동의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주권정부는 이 점을 깊이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 몽양 여운형 선생이 코가 척식장관에게 했던 답변을 지금 이렇게 고쳐 써본다. 국민주권정부는 일제와는 다른 응답을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잊지 마십시오! 경기 북부의 실력을 양성하는 데는 자유 발전이야말로 최대 요건이요, 최속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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