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가 스토킹?…한동훈은 미국 판결문 제대로 보라

법원 "한 장관 집 외 어디든 접근해 질문 가능" 판결

미국의 유사 고소 판례, '취재'와 '스토킹' 명백히 구분

미 학술 논문서도 “저널리즘은 범죄가 아니다” 강조

2023-02-02     김시몬 더탐사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의혹을 추적 취재하다가 ‘스토킹 범죄’로 고소당했던 <시민언론 더탐사>의 김시몬 기자가 시민언론 민들레에 취재기를 보내왔다. 김 기자는 언론 취재에 대한 고위공직자의 대응으로는 한국 언론 사상 최초일 ‘스토킹 고소’로부터 법원의 판결을 받기까지의 전말, 그 과정에서의 심경과 함께 한 장관이 고소의 근거로 삼았을 것으로 보이는 미국에서의 언론에 대한 스토킹 고소와 이에 대한 미국 사법부의 판결, 관련 논문을 면밀하게 조사해 정리했다. (편집자 주)

고소를 당했다, ‘무려’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지난해 9월 고소라는 것을 당했다. 기자가 되면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은 익히 예상했지만, 이런 일부터 겪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나를 고소한 이는 ‘무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었다. 스토킹 혐의였다.

 

한 장관과 관련한 대기업의 뇌물공여나 청담동 술자리 의혹 등을 확인하기 위해 세 차례 그의 퇴근길을 따라가 본 것이 다였다. 그런데 이게 스토킹이라니.

기자가 된 지 1년도 안 된 내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 더 크게 몰려온 건 국민으로서의 실망감 내지는 황당함이었다.

나는 한 장관을 대면한 적도 없다. 그의 신체에 해를 가한 적도 없고 따로 개인적인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무려 법무부 장관이 나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당연히 그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취재 목적으로 따라다닌 것이었다.

누가 봐도 스토킹처벌법의 제정 취지까지 훼손시키면서, 고소 남발을 통해 언론 자유를 훼손하려는 ‘전략적 봉쇄 소송’ 의도임이 명백했지만, 경찰은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수사에 임했다. 나도 한때 경찰이 되고자 꿈을 꾸었던 적도 있었다.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지금의 경찰이 내가 과거에 신뢰해 왔던 그 경찰이 맞는가 싶었다.

한 장관이 고소한 다음날 경찰이 보내온 경고장에는 ‘타인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나 협박 행위는 중대한 범죄행위로서 상대방에 대한 신변위협 행위를 시도·반복할 경우 관련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되니 이런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적혀 있었다. 고소가 들어왔을 뿐이며 아직 수사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마치 혐의가 확정된 듯이 경고장부터 보내온 것이었다.

추가로 이어진 법원의 결정도 당혹스러웠다. 법원은 잠정조치로 '한 장관뿐 아니라, (얼굴은커녕 성별조차 알 수 없는) 한 장관의 수행비서 두 명에게도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언론이야말로 한 장관의 칼춤에 장단을 맞췄다. ‘일국의 법무부 장관이 한 달간 밤길에 미행을 당했다’며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등과 비교하는 등 기자인 나를 범죄자로 몰았다. 굳이 ‘정식 언론사에 근무하는 기자가 아닌 유튜버’라고 칭한 것이나 ‘30대 남성’을 강조해 보도한 것에도 의도가 있어 보였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바로 30대 남성이었다.

짧은 기자 생활이지만, 내가 선배들로부터 배운 기자의 본질적 역할 중 하나는 ‘질문’이다. 질문의 대상을 가려서도 안 된다. 상대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이든 소위 권력자든, 필요하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질문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배웠다.

지난해 11월 4일 서울 수서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 전 기자회견 때 많은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외친 건, 우리 언론계 전체를 향한 나의 한탄이자 호소였다.

“고위공직자가 자신을 취재하는 기자를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면 권력에 대한 감시 견제는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에서 보고 싶은 것만 봤나…판결문은 읽었을까

언론자유의 원칙을 얘기한, 너무나 당연한 호소였지만 고소에 대해서는 법적 논리로 다툼을 시작해야 했다. 국내에서 관련 판결문과 연구 내용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기자의 취재를 공직자가 스토킹으로 몰아서 고소한 사례가 국내에는 없었고, 한동훈 장관이 처음 벌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법계와 언론계 어디에서도 이런 부분을 고민한 흔적이 안 보였다.

눈길을 미국으로 돌리자, 관련 연구 결과를 몇 건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사회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일부 공직자들이 기자의 집요한 취재 활동을 스토킹으로 모는 사례들이 있었고, 이 때문에 미국 언론계에서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관련 연구를 시작하는 분위기이다.

2017년 미국에서 ‘기자의 취재를 괴롭힘이나 스토킹범죄로 몰아가는 사례와 법원 판결’(Chilling Journalism: Can Newsgathering be Harassment or Stalking?) 등을 분석한 연구논문을 찾을 수 있었다. (저자 에린 코일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매스커뮤니케이션 스쿨 조교수, 에릭 로빈슨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저널리즘과 대중매체 스쿨 조교수)

이 논문을 샅샅이 분석했다. 한 장관이 별로 알고 싶어 할 것 같지 않은 내용들이 자세히 들어 있었다. 미국 법원은 그 어떤 사례에서도 ‘공직자의 스토킹 피해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드물게 공직자에 대한 기자의 접근금지 조처가 임시로 이뤄지긴 했지만, 본안 판결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 장관은 미국 유학 당시 ‘공직자의 스토킹 주장’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던 것일까.

이런 사건들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고소를 진행한 것일까. 스토킹 주장만 알고 결국 어떻게 판결 났는지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한 장관이 애써 외면하려 하기에, 미국에선 기자의 취재와 스토킹 범죄를 어떻게 철저하게 구분하는 판결을 해왔는지 자세히 알려주고자 한다.

미국 사례 분석

2001년 뉴욕주 버팔로시의 주택위원 찰스 플린은 프리랜서 기자 리차드 컨을 스토킹 혐의로 고소했다. 찰스 플린의 집과 사무실로 기자가 여섯 차례 전화를 걸어 메시지를 남기거나 열세 차례 팩스를 전송해 자신을 괴롭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미국 법원은 ‘리차드 컨 기자의 행위는 스토킹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뉴욕주의 법률은 스토킹에 대해 ‘합법적인 목적 없이 의도적으로 연락하거나 접촉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사 기자가 반복적인 질문을 했다 하더라도 기자의 활동은 합법적인 목적(공직사회 감시)을 띠고 있기 때문에 스토킹으로 볼 수 없다’는 게 판결의 취지였다. 

또 다른 사례도 비슷했다. 2014년 미국 조지아주 드칼브 지역 후보로 출마한 톰 오웬즈가 자신에 대해서 기사를 쓰고 질문한 지역의 프리랜서 기자 조지 치디를 스토킹 범죄로 고소했다. 치디는 법원으로부터 일단 접근과 통신을 금지하는 명령을 받았으나, 며칠 후 법원은 스토킹 범죄혐의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하고, 접근과 통신을 금지하는 명령 또한 파기했다.

톰 오웬즈는 법정에서 기자가 무례한 말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기자(조지 치디)가 ‘당신을 파괴시킬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거나 불쾌하지 않게 질문했다면 인터뷰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 판사는 단호했다.

신시아 베커 판사는 “사람들은 불쾌할 수 있고, 당신은 공직에 출마하지 않았냐”고 되레 오웬즈에게 반문하며, “불쾌하다는 이유로는 보호 명령을 내릴 가치가 없습니다”라고 접근 금지 명령을 파기했다. “정당한 목적이 있다면, 기자가 정치인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것을 스토킹 행위로 볼 수 없다”는 논리 역시 거듭 강조되었다.

논문에 따르면, 미국 각주의 법원들은 스토킹 범죄와 괴롭힘 여부를 판단할 때 대체로 ‘괴롭히려는 목적임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2006년 뉴저지주 항소법원은 “스토킹 혐의를 판단할 때 오로지 괴롭히려는 목적만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 등이 입증돼야만 한다”고 판결한 바 있고, 아이다호주에서는 스토킹 관련법에서 “다른 사람에게 정신적 불편을 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뉴햄프셔주의 관련 법 역시 “성가시게 하거나 학대하거나 위협하거나 경고할 목적”으로 괴롭힘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한국의 스토킹처벌법도 다르지 않다. 사실 한 장관이 법을 남용해 고소해서 문제가 된 것일 뿐, 국내법도 “명백하게 괴롭히려는 목적의 행동에 대해서만 스토킹으로 분류하도록 못 박아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을 보면, 스토킹 행위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하여 (중략)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너무나 명백하게도 스토킹처벌법의 입법 취지는 스토킹이 살인 등과 같은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한동훈 장관은 단지 언론자유만 위축시키고 있는 게 아니다. 많은 ‘진짜 스토킹 피해자’들에게도 사과해야 할 일이다. 안 그래도 부족한 경찰 인력을 자신을 비호하는 데 쓰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자들은 어떻게 연대했을까

조지 치디는 비록 지역의 프리랜서 기자였지만 그가 겪고 있는 일들에 미국 언론계 전체가 함께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하며 싸웠다. 미국 언론단체 중 가장 오래된 조직이자 대표성이 있는 기자협회 SPJ(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는 “톰 오웬즈는 미국 수정헌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법을 자신의 정치를 위해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 성명을 냈다.

조지 치디는 미국 내 소위 주류 언론사에서 일하던 기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 정치 블로그에 자유롭게 기고를 하고 있었다. SPJ는 블로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언론인 조지 치디를 위해 법률 지원을 더불어 모든 지원을 했다. ‘주류 언론사’의 기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기자협회 등으로부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 나로서는 가장 부러운 일이었다.

상식적인 판단을 받기까지

지난 1월 9일 법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보호하기 위해 취한 잠정 조치 원심을 파기한다”고 결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8-3형사부(장윤선 재판장)는 “항고인의 지위(기자) 및 피해자의 지위(법무부 장관) 등에 비추어 볼 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한동훈 장관의 집을 제외하고 어디서든 더탐사 기자의 접근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씁쓸함이 올라온다. 이는 지난해 9월 한동훈 장관 스토킹 혐의로 고소당한 뒤, 다섯 차례의 항고와 관련 사건으로 <시민언론 더탐사>와 기자들의 자택까지 10여 차례 압수수색이 강행된 후에나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당연한 판단을 이렇게나 세상을 시끄럽게 하며, 몇 사람의 가정을 불안케 한 후에야 받아야 하나.

미국의 사례로 접했듯, 한국의 법원도 향후 고위공직자의 비상식적인 소송 남발에 상식적인 판단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한다. 언론은 이 같은 고위공직자들의 ‘전략적 봉쇄 소송’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절대 위축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시민언론 더탐사>는 작지만 강한 언론매체다. 언론자유는 언론사의 규모에 따른 것이 아닌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일개 블로거’로 불린 미국 프리랜서 기자 조지 치디에게는 함께 연대해 준 미국의 기자협회 SPJ가 있었다면, <시민언론 더탐사>에게는 마음을 함께하는 수십만의 시민들이 존재한다.

끝으로 지난해 11월 4일 수서경찰서에서 수사관과 나눴던 대화를 빌어 한동훈 장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수사관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한동훈 장관이 공무 수행 및 안전에도 위협이 될 우려가 있고 불안감 및 공포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동훈 장관에게 말해 주고 싶다.

“어떤 사람이든 누군가 따라다니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법무부장관직에 있는 이가 그 따라다니는 사람이 기자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공포스럽고 불안해했다면 언론의 감시와 견제를 감수해야 할 장관직을 과연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걸까요. 불안감과 불쾌감을 구별하기를 바랍니다.”

 

<시민언론 더탐사>는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에서 미국 공직자와 기자들 사이 벌어지고 있는 스토킹 논란과 법원 판결 등에 대해 소개했다.

 

■ 그 외 참고

1. Erin Coyle & Eric Robinson (2017) Chilling Journalism: Can Newsgathering be Harassment or Stalking?, Communication Law and Policy, 22:1, 65-122, DOI: 10.1080/10811680.2017.1250571

2. Paul Fletcher, Common sense breaks loose in Georgia, VIRGINIA LAWYERS WEEKLY, (October 16, 2014)

3. Eugene Volokh, The Washington Post, Georgia county commission candidate gets restraining order against journalist (and city councilman), October 9, 2014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volokh-conspiracy/wp/2014/10/09/georgia-county-commission-candidate-gets-restraining-order-against-journalist-and-city-councilman/

4. Bill Torpy, The Atlanta Journal-Constitution, First Amendment survives DeKalb candidate’s assault, Oct 17, 2014

5. Bill Torpy, The Atlanta Journal-Constitution, And you thought DeKalb politics couldn’t get any crazier? Oct 10, 2014

6. Ernie Smith, Associations Now, Blogger Who Fought Restraining Order Wins—With Journalists Group’s Backing, Oct 16, 2014

https://associationsnow.com/2014/10/blogger-fought-restraining-order-wins-journalists-groups-backing/

7. SPJ(SPJ 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보도자료, Oct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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