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김정은 원포인트 판문점 정상회담 시급"
북한학자 김진향 "단 5분간 만나도 충분"
종전선언부터 해서 남북경협 재개해야
"호시탐탐 남한 적화 노리는 북한은 없어"
“이재명 대통령이 남북 간 종전선언을 위한 원포인트 정상회담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해야 합니다. 원포인트 회담인 만큼 판문점에서 5분만 만나도 돼요.”
북한학자인 김진향 전 개성공단지원재단 이사장(한반도평화경제회의 상임의장)은 “지난해 적대적 두 국가를 선포한 북은 이제 서로 만나자는 말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가 평화의 환경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종전 선언은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1953년 맺은, 남측은 배제된 휴전협정 체제에 의존하지 말고, 남북 당사자가 종전 선언을 통해 전쟁 체제를 끝내고 명실상부하게 동포가 되자고 제안하는 겁니다. 북측만 결심하면 돼요. 전쟁 체제는 우리 국민 불행의 구조적 원인이에요.”
한국전쟁 휴전 협정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체결됐다.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미국),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북한),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중국)이 서명했다. 남한 당국자가 참여하지 않았을뿐더러 공식적인 평화 조약도 아니다. 엄밀히 말해 남북은 지금 군사적 정전 상태에 있다.
-남북 종전 선언을 한다고 해도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게 아닌 만큼 말 그대로 선언적인 거 아닙니까?
“그 선언으로 실질적인 평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평화의 완성은 물론 아니죠. 분단을 넘어서려면 우선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북이 우리의 적인 이유는 남북이 여전히 전쟁 중이기 때문이에요. 72년 지속된 전쟁 체제만 끝내면 그때부터 남북이 화해·협력이 가능한 형제자매가 될 수 있습니다.”
-북에서 4세 세습이 이뤄질 거로 보나요? 그 경우 후계자가 김주애입니까?
“지난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 때 시진핑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섰는데, 우리는 김주애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김주애의 세습은 김정은만 결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조선노동당 차원에서 엄청난 토론의 과정을 거쳐야 해요.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김주애가 세습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예단할 수 없다는 건가요?
“진짜 가능성은 확률이 51%는 돼야 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4세 세습 이야기를 하는 건 잘못된 프레임일 수 있습니다.”
-남북한이 공동으로 조성한 경제특구 개성공단은 남북 경협의 상징이었습니다. 우리의 자본과 기술, 북의 노동력과 토지를 결합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거뒀죠. 개성공단지원재단 이사장을 지내셨는데, 개성공단에 대해 우리가 미처 또는 제대로 몰랐던 게 뭡니까?
“우선 평화를 위한 경제협력의 마당이었습니다. 우리는 경제적 관점을 앞세웠지만 북은 경제적 가치보다 평화를 더 중시했어요. 우리 국민 다수가 내막을 잘 모르고 개성공단에 대해 대북 퍼주기라고 했지만 실은 엄청난 퍼오기였습니다. 2015년의 경우 1억 달러도 들이지 않고 30억~50억 달러어치를 생산했어요. 둘째, 개성공단 부지를 북이 무상으로 제공했습니다. 서부 전선 최정예 3개 사단 6만 명의 병력과 무기 체계가 있던 곳이죠.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 병력을 10~15㎞ 후방으로 물린 거예요. 이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정에 북의 군부가 엄청나게 반대했습니다.”
-퍼오기라고 했는데 어느 수준이었나요?
“부산에 있는 두 신발 회사가 각각 개성공단과 베트남에 진출했습니다. 투자 규모도 비슷했어요. 그런데 개성 쪽이 10배 이상 더 번다고 했습니다. 싼 노임 덕이었죠. 2015년 기준으로 경기도의 기업이 외국인 노동자 한 명 고용하는 경비로 개성공단에서 북측 노동자 15명을 쓸 수 있었습니다.”
-저임인 것은 알겠는데 북한 노동자의 인력의 질이랄까 노동 생산성은 어땠나요?
“대한민국 사람은 전 세계에서 일을 가장 잘하는데 북측 노동자가 우리보다 생산성이 높습니다. 우리와 같은 민족이지만 이직률 0의 거의 완벽한 숙련공이기 때문이죠.”
-개성공단을 닫은 건 그러니까 일종의 자해였군요.
“2016년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했을 때 제가 자해 행위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렀습니다.”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 경협은 올스톱 상태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치르는 기회비용이 얼마나 될까요?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규모죠. 개성공단 같은 경제특구를 북에 최대 10개까지 만들자는 게 당시 남북의 구두 합의였습니다. 개성공단의 모델이 우리 창원공단입니다. 상당 규모의 기계공단인 창원공단 5개 정도가 사라진 것과 맞먹는 기회비용을 날렸다고 볼 수 있죠.”
-지금 우리나라가 제조업 위기에, 성장잠재력 저하 등으로 인한 저성장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내수 부진에, 통상 전쟁까지 덮쳤죠. 남북경협이 이들 문제에 대한 장기적 해법이 될 수도 있었는데요?
“남북경협은 완벽한 블루오션입니다. 당시엔 단순 임가공에 머물렀는데 만일 기술 경쟁력이 있는 우리 중견 기업이 지금 북측과 함께 AI 산업을 일으킨다면 그 성과는 상상을 초월할 거예요. 남북경협을 고도화할 수 있었다는 거죠. 아마 한국 경제가 폭발적 성장을 했을 겁니다.”
-개성공단을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이 뭐라고 보나요?
“개성공단에서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 만나 생활하면서 평화가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이런 과정 자체가 통일로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전쟁 체제 하에 적대적 관계의 기조에서 분단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보니 오해가 많이 쌓였는데 서로 만나 대화를 하면서 그 오해가 풀린 거예요.”
-남북경협을 재개하는 조건이 뭐라고 보나요?
“당장은 불가능하죠. 적대적 두 국가를 평화적 두 국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남북한이 하루빨리 종전 선언을 해야 돼요.”
-남북 종전 전에 북미 간 종전이 돼야 하는 거 아닙니까?
“53년 휴전 협정을 대체하는 북미 종전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연내 종전 선언을 하자고 했는데 저는 기만이었다고 봅니다. 미국은 종전을 하지 않습니다. 종전이 되면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미국 믿지 말고 남북이, 주권자인 우리가 종전 선언을 하자는 겁니다. 형식적으로 남과 북은 휴전을 한 적도 없어요. 그러니 전쟁 중인 게 맞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에 반대해 미국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휴전 협정에 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미중 대립이 더 심해졌지 않습니까?
“그래서 미국은 더 종전을 안 하려 들죠.”
김 전 이사장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경북대 정치학 박사이다.
-분단 체제의 질곡이 얼마나 심각하다고 보나요?
“대한민국 총체적 비정상과 저발전의 근원이자 국민 불행의 진원입니다. 분단 체제는 곧 전쟁 체제입니다. 휴전협정 체제는 국제법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죠. 사실 우리는 온전한 평화, 진짜 평화 시대를 단 하루도 살아본 적이 없어요. 분단을 극복한다는 건 바로 전쟁을 끝내는 거예요. 75년 간 이어진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겁니다. 전쟁 상태에서는 나라가 정상성을 회복할 수 없고, 국민이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오랫동안 대북 협상에 참여하셨죠? 나름의 노하우가 뭔가요?
“협상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진정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죠. 사실 모든 협상은 상호공존, 윈윈이 목적이에요. 그런데 남북이 윈윈하는 길은 평화예요. 북을 극복하고 흡수하려는 협상은 100% 깨집니다.”
-우리가 북에 대해 모르는 게 뭔가요?
“세계적으로 핵 전략 국가의 지위에 있는 나라는 넷밖에 없습니다. 바로 미국, 러시아, 중국 그리고 북한이죠. 미국이 북한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종전은 하지 않은 채 북에 비핵화를 계속 요구한 후과입니다. 어쨌거나 핵을 보유한 나라는 어느 나라도 군사 공격을 못합니다. 북한은 이제 전 세계 어디든 핵 미사일을 날릴 수 있는 역량이 있습니다.”
그는 개성공단에서 4년 간 북한 사회를 들여다 보니 호시탐탐 적화를 노리는 북한은 없었다고 말했다.
“매일 진짜 북한 사회에서 진짜 북쪽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막상 만나 보면 왜 우리가 한 민족, 같은 동포인지 저절로 알게 돼요. 분단 체제가 주입한 적대와 혐오의 북은 현실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북은 평화와 통일을 진심으로 원했고, 어쩌면 우리보다 더 절절히 바랐습니다.
북녘 동포들은 참 맑고, 생각보다 밝고, 순수했습니다. 무엇보다 정과 눈물이 많았어요. 저로서는 분단 곧 전쟁 체제 하에 우리가 북을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는지 민망하게 성찰하는 시간이었죠. 북을 관념적으로 이해하기보다 그냥 만나야 합니다.”